넘치는 것보다 부족한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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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을 하나 꼽으라면 ‘과잉’의 문제가 아닐까. 과잉육아, 과잉보호, 과잉교육이 결국 아이를 힘들게 하고, 부모를 지치게 하고, 가족과 사회를 멍들게 한다.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어느 날, 부모 특히 엄마는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가 약이 아니라 독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옴을 깨닫고 자아망실에 빠져든다. 자녀도 우울증에 걸리고 엄마도 우울증에 걸린다. 그러다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어떤 엄마는 끔찍이도 싫어하던 애완견을 기르며 억눌린 모성본능을 애완견에 쏟기도 한다. 또 어떤 엄마는 종교를 찾아 자녀 스트레스를 달랜다. 자녀에게 다치고 배반당한 마음을 이제 자신이 스스로 치유하러 나선 것이다. 

체념 중에서 자녀에 대한 체념만큼 비참하게 하는 게 또 있을까. 결국 우리 사회의 교육은 모두가 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 국가의 교육제도가 이를 부채질한다. 그 와중에 부모도, 아이도 모두 끙끙 앓다 패자가 된다. 이는 사회 전체,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야기한다. 물질적 손실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자살, 이혼과 가정해체 등 정신적으로 더 큰 손실을 안기고 있다.

필자는 이번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 시리즈를 진행하며 자녀문제로 인한 그늘이 예상보다 깊이 우리 사회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 부모들의 마음 한 편에는 ‘자식의 그늘’이 마음을 꽁꽁 동여매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혼자만의 비밀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더티 리틀 시크릿’(dirty little secret) 말이다. 이는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누구나 한두 개쯤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는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고 싶은 불명예로운 일이 있다. 이는 내로라하는 당대의 리더나 명사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대부분 ‘자식의 그늘’이 있지만 자신이 창피스러워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부유층이나 고위공직자, 유명인들의 자녀들이 해외로 유학을 가는 것이다. 

일러스트·만화그리는 목각인형

일러스트·만화그리는 목각인형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체면, 엄마의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유학을 보내지만 그건 ‘유배’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교육이 일그러진 배경에는 오랜 ‘체면문화’가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가정형편상 부모로부터 ‘과잉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오히려 그 ‘결핍’으로 인해 더 야무지게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현재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Y씨(여)가 바로 그랬다. Y씨는 어려움을 뚫고 자신의 꿈을 이룬 수기 공모에 응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꿈꾸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결핍’이었다.

Y씨는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수강생이었다. 가끔 안부를 전해오고 고민을 상의해오면 멘토링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 Y씨가 전하는 ‘결핍이 이끌어온 특별한 꿈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의 마지막 결론 같은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필자를 키운 것도 ‘결핍’이었기 때문이다.

Y씨는 어렸을 때부터 ‘꿈’을 생각해 보기도 힘든 환경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어머니 혼자서 남매를 키워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건강마저 좋지 않았다. 여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반복된 수술로 힘들어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서, 꿈을 크게 꾸고 큰 미래를 상상하라는 말은 자신에게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친구들과 다른 가정환경이 원망스러웠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자신의 평범함이 너무도 싫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가지지 못한 게 너무 많은, ‘결핍’뿐이었다고 한다. 중·고교 시절에는 가정형편으로 학원이나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 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친구들에게 항상 “도와 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존심에 상처받기 쉬운 청소년기에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었지만 주눅들지 않고 이를 이겨냈다. 무엇이든 주눅들면 지는 것이다.

Y씨는 방학이면 과외를 하며 학비도 직접 벌어야 했다. 하루에 4시간에서 5시간은 기본이었고, 때로는 10시간 이상 과외를 하러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며 학생들을 만날 때면 방학 때마다 배낭여행도 다녀오고 어학연수도 다녀오는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하루는 아침부터 시작된 과외를 마치고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오는데 다른 날 보이지 않았던 새벽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들이 자는 새벽에도 폐지를 주우러 다니시는 할머니, 도로 청소를 시작하시는 환경미화원, 아침에 있을 우유배달을 준비하는 차량까지 각자가 저마다의 색깔과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Y씨는 문득 자신에게 주어진 남들과는 다른, 조금은 특별한 환경이 결국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스토리와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힘을 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Y씨는 자신이 가진 강점이 바로 ‘내 속에 있는 결핍을 찾아내는 능력’에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갖지 못한 이 ‘결핍’들로 인해 시작은 언제나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자신이 가진 ‘결핍’이 법조인의 꿈을 갖게 한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결핍’을 알고 스스로 채워나갔던 학창시절은 저에게 ‘성장’이 주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던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Y씨는 “내가 극복해야 할 상대는 늘 ‘어제의 나 자신’이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더 성장한 나를 보며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늘 자신에게 집중하고 스스로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나라는 사람이 진정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 일생을 두고 이루어야 할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때 자신이 갖지 못한 다양한 능력의 결핍, 기회의 결핍들이 오히려 그를 더 능동적인 사람이 되게끔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읽은 양육원 시설에 대한 신문기사가 제 마음을 움직여서 다른 친구들이 학원을 가는 주말에 매주 양육원에 가 아이들의 학습을 돕는 보조교사로 봉사활동을 2년 간 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슴을 뛰게 하는 분야를 느낄 수 있었는데 바로 ‘우리 사회 문제’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었어요.” 그는 “이런 경험을 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가의 보호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법과 제도’로 도와줄 수 있는 법조인이라는 꿈을 명확하게 설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로스쿨에 진학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저의 꿈은 사회를 위해 일하는 공익행정 관련 법조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업이나 로펌에서 일한다면 돈은 벌 수 있겠지만 그건 제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었어요. 그보다도 국가기관이나 언론기관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정책과 법률의 발전을 위해 법조인으로서 힘을 보태고 싶어요.”

우리 사회는 부모나 자녀 등 너나없이 교육당국과 교육 자본가들이 부추기는 ‘과잉교육’으로 멍들어 상처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Y씨는 바로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주지 않으려는 바로 그 ‘결핍’ 덕분에 오히려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Y씨처럼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꿈을 이루는 ‘드림워커’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더 밝고 환해질 것이다. ‘진리가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경의 구절을 빌리면 이런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결핍(역경)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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