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동석군(인천 서운고1)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초등 5학년 때 처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접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어느 단계가 지나고 점점 어려워지는 문제에 맞닥뜨리자 그만 포기하게 되었다. 2년 후 다시 공부해 보겠다며 노트북을 안고 학원을 찾아온 동석이는 그때부터 책과 씨름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된 동석이는 학교 내신도 신경 써야 하는 시기였지만 자신의 꿈을 찾아 컴퓨터 언어인 C언어를 열심히 파고들었다. C언어는 중학생으로서는 쉽게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었다. 다시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내신에 대한 염려도 겹치면서 C언어 공부를 포기하고 프로그래머의 꿈도 접었다.

생각만큼 잘 풀려나가지 않는 상황에 봉착하면서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잘 해결하고, 알고리즘을 배우고, 직접 작품들을 제작해 봤으면 하는 바람은 이루어보지도 못한 채 도전을 멈추고 말았다.

안정무씨(가운데)는 현재 대학에 다니면서 고교 시절 자신이 다닌 정보학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며 김동석군(왼쪽)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보올림피아드 전문 학원을 운영하는 권상조씨. | 자녀경영연구소 제공

안정무씨(가운데)는 현재 대학에 다니면서 고교 시절 자신이 다닌 정보학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며 김동석군(왼쪽)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보올림피아드 전문 학원을 운영하는 권상조씨. | 자녀경영연구소 제공

그 이유는 바로 초등 5학년 때 프로그래밍 공부를 엄마 손에 이끌려 시작한 데 있었다. 아무런 동기부여도 없었고, 이루고자 하는 꿈도 명확하지 않았다. 문제가 어려워지자 ‘왜 내가 이런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의 나이에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려면 나름대로 꿈이 설정되어야 하는데 동석이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나 동석이는 또 다시 도전에 나섰다. 고등학생인 지금 내신에 대한 압박감이 심하고 공부시간이 부족할 때이지만 프로그래밍에 대한 꿈이 그를 다시 불러냈다. 어려워 포기하고, 도전하고 또 포기하기를 반복하면서도 다시 도전에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

“학교에서 공부하면서도 전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생각났어요. 그 문제를 꼭 해결해 보고 싶었어요. 지금은 무척 재미도 있고 해결능력도 생긴 것 같아요. 전보다 쉽게 문제를 풀고 있어요. 문제가 풀릴 때마다 행복해요.”

동석이는 그냥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친구가 PC방에 같이 가자고 하면 가고, 운동장에서 놀자고 하면 같이 놀다가 집으로 가곤 했다. 집에 가선 부모님이 학원에 가서 공부하자고 하면 또 군말 없이 따랐다.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모범적이거나 열심히 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학원에 다니고 다른 애들과 같이 앉아서 공부를 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늘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풀리지 않으면 그때마다 도망가려 했고 결국 포기하곤 했다. 동석이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아이가 포기를 반복하자 내심 걱정이었지만 어떻게 해줄 방도가 없었다. 뭔가를 도와주고 싶기는 한데 뭘 도와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동석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언제부터인가 컴퓨터 언어에 다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엄마는 동석이에게 학원에 등록시켜 주겠다고 내심 말하고 싶었지만, 스스로 결정하기를 기다리며 먼저 말하지 않았다. 이 기다림의 시간은 경험해보지 않은 부모는 잘 모른다.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얼마나 조바심 나고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어느 날 동석이는 컴퓨터 프로그램 학원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동석이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고 또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모습을 이때 처음 보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아이의 진심을 본 것이다. 동석이는 다시 학원에 등록했다.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간 게 아니라 혼자 가서 등록했다. 동석이는 그때부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인지 정말 즐겁게 공부했다.

정보올림피아드 전문 학원을 운영하는 권상조씨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언어 규칙만 배우는 게 아니라 논리수학, 창의수학을 함께해야 발전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한다. 고등학생인 동석이는 수리분야는 비교적 쉽게 해결하고 게임 작품을 만드는 데도 유용하게 이용한다. 아직 자신이 설계하고 있는 작품을 만들려면 더 배우고 훈련을 해야겠지만 언젠가 꼭 완성하고 말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그가 느끼는 뿌듯함과 자신감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이 되어 그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이게 인천에서 학원이 있는 일산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임에도 수업 한 번 빠지지 않고 즐겁게 다니는 이유다. 동석이는 이미 그 자신의 삶을 훌륭히 프로그래밍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안정무씨(26·건국대 컴퓨터공학과3)는 스스로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하면서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란다. 요즘 같은 청년실업 시대에 듣기 어려운 말이다.

안씨는 어릴 때 컴퓨터 프로 게이머가 되는 게 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프로 게이머가 되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섰다. 먼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게임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공부하는 과목이나 진로 등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게다가 등록금도 무척 비싼 편이었다. 당시 집안 사정도 좋지 않은 터라 고민 끝에 전학을 택했다.

이때도 스스로 선택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어서 부모님이나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어요. 일반고로 가면 공부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 실업계 고교로 전학을 갔죠.” 일단 프로 게이머의 꿈이 꺾였고, 별 희망도 없어 보였지만 대학은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고2 때 우연히 정보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원을 알게 됐다.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대학도 특별전형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고3 때는 한 해 휴학까지 하면서 올림피아드 준비를 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시작했고 준비기간도 6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동상을 받는 데 그쳐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부모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정보를 수집해 보니 ‘실업계 전형’이라는 게 있었다. 수능 수학을 어느 정도 보면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 수학에 승부를 걸었고, 건국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안씨는 “대학에 가 보니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또 스스로 공부하니 더 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IT 분야는 전문직으로 가는 길도 많아 다른 문과생들과는 달리 취직이 잘 되는 분야여서 취직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서 스스로 하게 되는 공부라면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언젠가는 가고자 하는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 실패하더라도 후회는 없다. 하고 싶은 걸 하기에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은 바로 자녀가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고 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김동석군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프로그래머의 꿈을 향해 다시 그 자신이 열정을 충전시켜 재도전하고 있다면, 안정무씨는 일찍 프로 게이머의 길을 찾아 나섰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프로그래머를 목표로 ‘행복한 공부’를 하고 있다. 자신의 꿈이나 길을 찾지 못한 또래 학생들의 경우 공부를 잘 해도 늘 불안하고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또 엄청난 스펙을 갖추고도 취업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이들 두 학생이 자신의 길을 찾고 재미있게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부모의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부모의 기다림이 부족했다면 여느 문제 있는 가정처럼 부모와 자녀 관계가 삐걱대고 자신의 인생마저 삐걱대며 정상궤도에 진입조차 못했을지도 모른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