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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캐피탈은 총수 일가 ‘사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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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특수관계인 누적 대출금액 1026회 걸쳐 1조2341억원 달해

1조2341억원. 효성캐피탈이 10년 동안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일가 등에 대출한 금액의 누적 규모다. 효성 총수 일가가 효성그룹의 43개 계열사 중 유일한 금융회사인 효성캐피탈을 사금고처럼 사용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대목으로 제2금융권에 대한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효성캐피탈은 지난 4~5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검사를 받았다. 당시 총수 일가가 효성캐피탈에서 회사 임원들 명의로 수십억원을 차명대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총수 일가는 (주)효성의 고동윤·최현태 상무 등 회사 임원의 이름을 빌려 지난해 말 현재 40여억원을 빌렸다.

금감원은 이들 임원이 효성캐피탈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은 게 석연치 않다고 보고 대출금이 흘러간 경로를 추적했다. 추적 결과 이들 임원이 대출받은 자금은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효성캐피탈의 대주주는 조석래 회장이 대주주인 (주)효성이다.

효성그룹 본사 사옥 | 김영민 기자

효성그룹 본사 사옥 | 김영민 기자

여신전문금융회사인 효성캐피탈은 총수 일가 등 특수관계인에게 ‘자기자본의 1만분의 10에 해당하는 금액과 10억원 중 적은 금액’을 대출할 경우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또 금융위원회에 보고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그 사실을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효성캐피탈은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에서 정한 이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효성캐피탈은 조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 명의로 지난해 11월 현재 50억원을 빌려줬는데 조 변호사 측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도명 대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 부분 등을 확인하기 위해 10월 28일부터 추가 검사에 착수한 상태다. 금감원은 또 조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사장이 효성캐피탈 이사회에 불참했는데도 참석한 것으로 꾸민 정황이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사회 의결서에 조 사장의 도장이 찍혀 있지만 이것이 가짜인지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관련법 위반에 ‘도명대출’까지
총수 일가는 효성캐피탈로부터 받은 대출을 쓰고 몇 달 뒤 갚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현재 대주주의 특수관계인 등에 대한 대출 잔액은 70억원 수준이지만 10년 동안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쌓인 누적 규모는 1조원을 넘어선다.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두 의원(민주당)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효성캐피탈은 2004년부터 올해까지 총수 일가를 비롯한 특수관계인 등에게 1026회에 걸쳐 1조2341억원을 대출해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조 회장의 세 아들이 598회에 걸쳐 4152억원을 빌렸다. 효성캐피탈은 조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주)효성 사장에게 240회에 걸쳐 1766억원을, 둘째 아들인 조현문 (주)효성 전 부사장에게 196회에 걸쳐 1394억원을 대출해줬다. 셋째 아들인 조현상 효성 부사장에게도 162회에 걸쳐 991억원을 대출했다.

이들 3형제는 효성캐피탈의 등기이사였는데, 조현준 사장은 지난해 9월 회삿돈으로 미국에서 개인용 부동산을 사들인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기소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여전법은 ‘실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는 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현상 부사장도 외국에서 부동산을 구입하고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지난해 9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민 의원은 “이들은 이사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불법적’인 대출을 승인했기 때문에 여전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15개 계열사에도 8049억원 빌려줘
조 회장의 세 아들이 직접 효성캐피탈로부터 대출을 받기도 했지만 금감원 검사에서 확인된 것처럼 차명대출이 이뤄지기도 했다. 총수 일가의 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고동윤 상무과 최현태 상무는 37회에 걸쳐 71억원을 대출받았다. 이들 이외에 송형진 (주)효성 고문(조 회장의 처남) 등 임원 6명에게도 33회에 걸쳐 68억원의 대출이 이뤄졌다. 금감원은 나머지 임원들이 받은 대출 역시 차명거래인지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경제]효성캐피탈은 총수 일가 ‘사금고’

효성캐피탈은 15개 계열사들에도 358회에 걸쳐 8049억원8000만원을 빌려줬다. 금융자동화기기 제조사인 노틸러스효성이 445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효성건설(1151억원), 효성토요타(844억원),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288억원), 부동산개발업체 신동진(247억원) 등이 이었다. 

민 의원은 “이들 계열사에 대한 대출도 결과적으로 조석래-조현준-조현상으로 이어지는 총수 일가에 다시 입금된 차명거래일 가능성이 높다”며 “금감원, 국세청, 검찰의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계열사들이 자사의 운영자금으로 썼을 개연성이 있다”며 “아무래도 개인이 대출을 받은 것에 비해서는 차명거래로 이어졌을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캐피탈사는 자기자본의 100% 범위 내에서 대주주 등에게 신용공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효성캐피탈이 10년 동안 이 법규를 위반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총수 일가가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돈을 빌리고 갚으면서 사금고처럼 활용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효성캐피탈과 같은 2금융권 금융회사가 차명거래 등을 통해 거대한 사금고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 의원은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제한하거나 최소한 부채비율 200% 이상인 산업자본의 경우 대주주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명백한 차명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합의에 따른 차명’을 금지하는 조항이 금융실명제법에는 없다. 민 의원은 “금융범죄 조장법이자 차명거래 촉진법으로 전락한 금융실명제법을 차명거래가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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