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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검란에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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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검찰 위기는 보고절차 탓이 아니라 청와대, 법무부, 국정원 등 정치권력의 ‘역대급’ 개입에서 비롯. 서울지검장 입에서 “야당 도울 일 있냐”는 말 나온 것 자체가 스스로 권력의 시녀 입증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에는 국정원이 있었다. 청와대도, 정당도 국정원·경찰·검찰의 그늘 아래서 뒷짐을 지고 있었다. 민생과 미래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경제 비전과 복지를 위해 일해야 할 사람들이 정보기관의 부끄러운 선거개입 사건에 가려져 논의의 중심에 올라오지 못했던 것이다.

항명-소신 프레임은 본질 흐리기 전략
지난 6개월간(4월 26일~10월 25일) 트위터, 블로그, 뉴스댓글, 아고라 등의 문서를 분석해 보면 국정원 언급량이 무려 541만3911건에 이른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340만7809건보다도 많고, 여당인 새누리당 언급량 82만1571건의 7배에 달한다. 연관어 분석을 보면 검찰, 경찰, 청와대를 포함한 모든 연관검색어 1위는 국정원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그림 참조). 전 세계적으로 이 같은 전례를 찾아볼 수 있을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왼쪽)이 10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뒤에 앉아 질의를 듣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왼쪽)이 10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뒤에 앉아 질의를 듣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정보기관이 정치를 집어삼킨 나라에 미래는 없다.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는 미국에 존재하는 16개 정보기관들의 정보를 통합해 분석한다. 이 위원회는 미래 국제정세와 환경 변화에 따른 미국 지위 변화 가능성을 예측하는 연구분석을 진행해 의회 또는 정책입안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한다. 

이들이 펴내는 글로벌 트렌드 분석은 이미 미국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가장 먼저 찾는 보고서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들은 앞에 나서기보다 조용하게 실질적인 데이터와 정보를 제공한다.

영국의 호라이즌 스캐닝 센터((Foresight Horizon Scanning Centre·HSC), 유엔의 글로벌 펄스, EU의 아이노(iknow) 프로젝트도 이와 유사하며 싱가포르, 중국 등 주요 국가 역시 빅데이터 분석 등을 통한 미래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비이성적 과거 문제로 거의 1년을 허비했다. 댓글과 트위터로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이 검찰마저 집어삼킬 태세다. “항명이냐, 소신이냐, 검찰 내부 논란으로 상황을 몰아가는 방송을 보니 진짜 황당하다. 프레임 만들기의 천재들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건의 핵심은 오직 하나, 민주주의의 기본을 뿌리째 흔든 정보기관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이다.”

지난 10월 22일에 올라온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트윗 문서다. 윤석열 전 국정원 수사팀장의 대담한 발언으로 촉발됐던 ‘검찰 잔혹극’에 대한 매우 명징한 정리이다. 이 트윗은 아주 차분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500여회의 리트윗을 기록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나쁜 프레임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를 감추고 손가락만 바라보게 만든다. 이른바 ‘항명-소신’ 프레임은 사건을 검찰 내부의 문제로 환원시켜 문제를 일으키게 만든 ‘권력의 국정원 수사 개입’이라는 본질을 희석시킨다.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항명인가 소신인가’를 헤드라인으로 뽑은 까닭이다.

길태기 검찰총장 직무대행도 해묵은 감찰 카드를 꺼내어 문제의 본질을 검찰 내부의 보고시스템으로 덮으려 하고 있다. 윤석열 전 팀장과 국정감사장에서 강하게 대립하다 눈물까지 보였던 조영곤 서울지검장은 급기야 ‘자진 감찰’을 요구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표지이야기]박 대통령, 검란에 응답하라!

이쯤 되면 검찰이 아니라 정치인이 다 됐다는 생각까지 든다. 수사에 대한 정치적 외압을 막아줬어야 할 상급자가 검찰의 대위기를 앞에 두고 하급자의 보고절차로 이 문제를 덮으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검찰의 위기는 내부의 보고절차 때문에 빚어진 것이 아니라 청와대와 법무부, 국정원 등 정치권력의 ‘역대급’ 개입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채동욱 전 총장을 비이성적으로 몰아냈고, 트위터에서도 전담팀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 직원을 체포한 윤석열 수사팀장까지 배제했다.

법무부와 검찰 스스로 만신창이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서울지검장의 입에서 “야당 도울 일 있냐”는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권력의 시녀임을 입증한 것에 다름 아니다.

검찰 독립성 논의 등 대통령이 나서야
더욱 큰 문제는 청와대와 법무부, 나아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노골적 뻔뻔스러움이다.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개입이라는 사상 초유의 헌법 유린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축소하다 못해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을 찍어내면서 호남 출신이라거나, 노무현 정부 때 특채검사라는 등의 비상식적인 언어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전의 ‘검찰 잔혹사’와 다른 점이고, 사태의 심각함이 더 큰 이유다. 국정원, 검찰 등 권력기관을 수하처럼 잘 다루는 것이 청와대 비서실장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다.

표창원 전 교수가 트윗에 올린 냉소는 이런 검찰의 현주소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채동욱 쫓아내고 윤석열 배제하고, 김기춘 권성동 김진태 김도흡에게 줄서고 꼬리치고 조아리는 검찰, 힘들게 얻은 국민 지지 버리고 다시 예전처럼 권력 주구 섹검 떡검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로군요. 박수 쳐드릴게요. 잘들 드시고 잘들 사세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과도한 침묵이다. 박 대통령은 평소 원칙과 법치, 약속을 중시해 왔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선거부정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큰 사건이다. 그것도 국가 정보기관과 국방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면 당연히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여당의 주장대로 박 대통령이 이런 과정을 전혀 몰랐다면 원칙적으로 사건을 수사하고 법대로 관련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과 제도도 손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선거도 신뢰받지 못할 것이며,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위터의 ‘영향력 프레임’은 ‘항명-소신 프레임’처럼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국정원의 트윗이 지난 대선에 얼마나 큰 영향이 있었을까 하는 질문은 그 애매성과 논쟁성으로 인해 선거개입 본질을 은폐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팔로어 숫자와 리트윗 경로 등을 정밀하게 추적, 분석해야 트위터의 영향력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미 원문은 다 삭제된 상태이고 나아가 트위터의 영향력이 컸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득표로 연결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미래로 나아가려면 불법적 선거개입 사건을 분명하게 털고 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독립성에 대한 활발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국정원, 국방부, 검찰 등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정치가 복원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나서서 문제의 가닥을 정리해야 한다. 

더 이상의 침묵은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다. 처벌할 건 처벌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정치력을 복원해 민생과 미래의 어젠다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차기 검찰총장 임명은 그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유승찬 <소셜미디어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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