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낮다고 ‘빠른 포기’가 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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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때로 우리나라 자녀교육은 ‘태권도’나 ‘피아노학원’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태권도는 초등학생 때 다니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거의 다니지 않는다. 피아노학원도 비슷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시작해 대개는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피아노학원도 졸업한다. 

필자는 아들에게 중·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줄곧 피아노학원에 보내 배우게 하려고 했다.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갈 때 어렵사리 등록을 했다. 당시 피아노학원 원장은 “아이를 음대에 보내려고 그러세요?”라고 물었다. “음악을 전공하려는 게 아니라 취미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통사정하다시피 해서 6개월 정도 다녔다. 

아들은 중학생은 자기 혼자라며 다니기를 꺼려했고 결국 그만두었다. 그런데 태권도나 피아노학원의 ‘조로(早老)현상’은 교육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일부 부모들은 자녀가 중학교 첫 시험 때 성적을 기대만큼 내지 못하면 공부에 소질이 없는 아이로 짐작하기도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울 경우 비싼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자녀를 방치하기도 한다.

김성열군(15·가명)은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데 70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서 전세살이를 한다. 엄마는 아들의 성적이 20~30점대로 나오자 너무 걱정이 돼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과외교사를 소개받았다. 

남편은 “형편도 어려운데 무슨 과외냐”고 해서 몰래 과외를 시켰다. 엄마는 한 달에 40만원씩을 주고 영어공부를 시켰다. 기초가 잡혀 있지 않아서인지 성적이 기대만큼 올라가지 않았다. 5개월 정도를 버티다 남편 몰래 시키는 게 더 이상은 힘들어 과외를 그만두었다.

엄마는 김군을 학원비가 싼 곳에 보냈지만 개별지도가 안 되다 보니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김군은 혼자 방치되고 있다. 김군의 어머니는 “속이 시커멓게 타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아이 또한 공부는 포기하고 PC방이나 다닌다”고 말한다. 

일러스트·만화그리는 목각인형

일러스트·만화그리는 목각인형

아이가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다. 김군의 사례는 월 소득이 300만원 정도인 가정에서는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일 게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성적순위가 나오지 않지만 중학교부터는 성적을 알 수 있다. 부모들 대부분은 ‘우리 아이가 공부는 잘할 거야’라고 믿고 싶어한다. 영재는 아니어도 다른 아이들보다는 공부를 잘하거나 적어도 뒤떨어지지는 않겠지, 하고 내심 기대한다. 

그런데 중학교 첫 성적표를 받아본 부모들은 그제야 아이의 ‘현실’을 알게 된다. 물론 성적이 기대한 대로 나오는 부모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때부터 부모의 대응은 경제력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겨우 생활비를 버는 수준의 서민가정에서는 과외나 학원비 문제에 본격 부딪치게 된다. 이때 아이가 10점, 20점짜리 성적표를 가져오면 바로 ‘이젠 공부를 포기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다. 

경제력이 있다면 과외다, 학원이다 하면서 뒷바라지에 나서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도, 부모도 자괴감에 빠지고 눈치 빠른 아이는 스스로 공부를 포기하게 된다. 물론 부모가 고생하니까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아이도 있겠지만 극소수일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어쩌면 미디어가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강남’이라고 다 고액 과외를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없는 부모’들일수록 그런 소문에 민감하다. 다른 가정과 비교하게 된다. 비교라는 게 없는 입장에서는 참 가혹하다. 몇백만원짜리 고액과외가 있다는 등 소문에 힘이 절로 빠진다. 비교에 빠지면 잘 사는 집은 모두가 그렇게 고액과외를 시키며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학생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중학교 1학년만 돼도 아이들의 영어·수학 실력 차이는 현저하다. 자녀에게 신경 쓰는 집들은 초등 6학년이면 중3 수학과 과학이 끝나야 한다. 중학교 1~2학년이면 수능 영어를 술술 풀 정도의 실력을 갖춰주기 위해서 엄마들끼리 정보도 공유하고, 학원 설명회들을 쫓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좋지않은 데다 아이가 공부까지 잘 못하는 경우 엄마들은 ‘죄인’이 된 것만 같다. 수학학원을 하는 김민식씨(가명)는 “학원을 찾아오는 엄마들 중에는 ‘중1인데 이 점수면 그냥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하면서 한숨짓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이들이 정말 별것도 아닌 수학점수 때문에 학교에서 고개도 잘 들지 못하고 심지어 중1 때부터 모든 걸 포기하려는 걸 보면 마음이 무척 아프다”고 말한다. 

다세대주택가에 있는 학원이어서인지 학원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수학 점수가 15점에서 30점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 엄마가 아이들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어려운 가정일수록 사실 공부가 희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학을 나오지 못한 엄마들의 경우 ‘배우지 못한 한’이 있기 때문에 아이한테 없는 형편이지만 나름 해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저렴한 ‘동네학원’에 보내다 보니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면서도 점수는 오르지 않고 오히려 자존감만 낮아진다고 한다.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아이들 성적 올리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자세를 잡아주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또 주변에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이는 좌절해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이른바 ‘회복탄력성’ 개념을 제시한 에미 워너 교수가 주장한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모범적이고 열의에 찬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 옆에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방치된 아이들에게 자신이 그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난 여름방학 때 아이들을 학원에서 열심히 가르친 결과 중간고사에서는 대부분이 80점대가 나왔다. 수현이라는 아이는 90점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자 반신반의하던 엄마들이 아이에게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이상한 신드롬이 퍼져 있다. 돈만 있으면 아이는 저절로 잘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돈 없는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자신감을 잃고 자괴감에 빠진다.

‘스카이’(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일컫는 말) 보내려면 얼마를 투자해야 하고 ‘인서울’(서울 소재 대학에 보내는 것) 하려면 얼마를 투자해야 한다는 속설 앞에 지레 체념한다. 돈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자녀를 더 망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말이다.

김 원장은 “사실 요즘 아이들 중에 조기교육을 받아 영어를 엄청나게 잘하고 수학을 영재급으로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런 아이는 소수에 불과하죠. 부모가 돈을 들이고 정성을 쏟는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없는’ 부모들은 바로 그 돈 때문에 너무나 일찍 아이들을 포기하기도 한다. 공부에 대한 진짜 열의를 보이는 시기는 어쩌면 그 이후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공부는 스스로 마음속으로 하고자 하는 의욕이 서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정 공부에 뜻이 없는 아이라면 중학교 때라도 태권도 등 운동이나 피아노를 배우게 해 보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운동이나 음악 연주는 자신감을 갖게 하고 자존감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과 음악을 통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자신감으로 뭐든지 해낼 수 있고 잠자는 잠재력도 일깨워낼 수 있을 것이다. 혹여 자녀가 공부를 못한다면 역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부 이외에 다른 재능이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볼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생텍쥐페리의 이 말처럼 자녀야말로 바로 부모가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닐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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