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오너 도덕적 해이 뒷짐 진 당국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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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 사태가 법정관리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점입가경이다.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발행한 기업어음(CP)과 ㈜동양이 발행한 회사채에 투자한 투자자의 경우 일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최수현 금융감독원장, 9월 30일 브리핑)

시장의 예상대로였다. 10월 위기설에 휩싸인 동양그룹은 9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동양,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등 3개 계열사에 대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자금줄은 끊겼고 자산 매각에도 실패하면서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기업어음(CP)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3개 계열사가 발행한 회사채·기업어음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 4만여명(1조2294억원)의 손실은 불가피해졌다. 동양그룹 사태는 저축은행 후순위채 피해자보다 2배가량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셈이다.

하지만 시장의 예상을 거스르는 일이 이어졌다. 비교적 재무구조가 양호한 동양네트웍스와 동양시멘트도 10월 1일 법정관리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동양그룹 해체는 가속화하게 됐다.

동양그룹 회장 집 앞 침묵시위하는 동양증권 직원들. | 홍도은 기자

동양그룹 회장 집 앞 침묵시위하는 동양증권 직원들. | 홍도은 기자

금감원이 설치한 불완전판매 신고센터에는 “동양이 망하겠느냐.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회사채·기업어음에 투자한 이들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법정관리에 따른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현재현 회장 등 동양그룹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과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경영권 유지 위한 법정관리 아니냐 의심
동양그룹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불거진 결정적인 계기는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행’이었다. 동양시멘트의 지난 6월 말 기준 부채 비율은 196%로 ㈜동양(650%), 동양네트웍스(723%)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않을 만큼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양호한 계열사였기 때문이다.
 
당장 시장에서는 현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법정관리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6년 도입된 통합도산법에는 기존 관리인 유지(DIP) 제도가 있어 중대한 결함이 없으면 원래 경영인을 그대로 관리인으로 선임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동양증권 노동조합은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노조는 10월 2일 춘천지방법원에 “동양시멘트는 재무제표상 법정관리 대상이 아니니 법정관리 신청을 기각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오후에는 동양증권 임직원도 “법정관리 신청은 잘못된 결정”이라며 “동양시멘트 회사채 등에 투자한 고객들의 손실이 우려되니 즉각 철회해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저녁에는 동양증권 제주지점에서 근무하던 고모씨(42)의 자살 소식도 전해졌다. 고씨는 현 회장에게 보내는 유서에서 “개인고객들에게 정말 이러실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이런 일을 만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라며 원망을 표했다. 

그는 “정말 고객님들께 조금이라도 이자 더 드리면서 관리하고 싶었고, 정말 동양그룹을 믿어서 권유한 겁니다”라고 적었다. 동양증권 임직원은 다음날인 10월 3일 압박 수위를 더 높였다. 동양증권 직원 200여명은 이날 낮 12시쯤 서울 성북동 현 회장 자택 앞에 모여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 철회를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투자자 보호 못한 당국 책임도 도마에
동양그룹이 자산담보부 전자단기사채를 사기 발행했다는 의혹도 도덕적 해이 논란을 증폭시켰다. 동양은 ‘티와이석세스’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지난 7월과 9월에 1569억4000만원 규모의 자산담보부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했다. 발행물량의 60%가 9월 한 달 동안 집중됐고, 추석 연휴 전날인 9월 17일까지 이어졌다. 

오리온그룹의 지원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했던 날에도 사채를 발행한 것이다. 전자단기사채는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발행했다.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사채 투자자는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당국은 ‘사기성 발행’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양구 회장의 부인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이 동양네트웍스에 오리온 주식 2.66%를 증여하기로 한 것이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양증권 노조는 10월 4일 발표한 성명에서 “오리온 주식(시가 1700억원)을 동양그룹 위기를 해결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당신(현 회장) 아들이 대표이사로 있는 동양네트웍스로 증여했다”며 “상식적으로 당신이 그룹을 마지막까지 살릴 의도가 있었다면 당연히 개인 투자자들에게 기업어음을 발행한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혹은 지주사인 ㈜동양에 자금을 지원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동양그룹 사태는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가 일차적인 원인이지만 동양그룹이 동양증권을 통해 그룹 계열사의 부실 위험을 자본시장의 개인 투자자에게 확산시키는 것을 제때 막지 못한 금융감독당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자본시장 투자자 보호 기능을 맡은 증권선물위원회와 그 실행기구인 금감원이 회사채·기업어음 등 유가증권 발행·유통에 대한 감독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감독당국은 규제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금융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부당한 영업행위를 막아야 하지만 금융투자업 규정을 개정했다면서 손을 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에게 동양그룹 계열사의 유가증권은 위험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면 알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0월 14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감독당국의 책임을 따져물을 계획이다.

동양그룹 회사채·기업어음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개인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등 공동대응에 나서면서 동양증권의 불완전판매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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