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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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높이의 다이빙대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옵니다.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몸은 자신도 모르게 공포에 반응합니다. 스타 다이빙쇼 스플래시에 출연했던 걸그룹 씨스타의 멤버 소유는 “까치발을 해야 하는데 뒤꿈치가 안 들리더라”는 말로 이 공포를 표현하더군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 다이빙대의 공포에 직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영국 일간지 <더 텔레그라프>에 따르면 메르켈은 어린 시절 학교 수영 시간에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려야 했습니다. 그 역시 공포에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그가 뛰어내릴 용기를 끌어내는 데 무려 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는 공포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릴 때 메르켈은 물 속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메르켈은 이 에피소드를 회상하면서 “위험을 계산하는 데 언제나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는 데 계산할 시간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아무리 위험에 대한 계산을 마쳐도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신중하기만 하고, 결정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다면 메르켈은 결코 독일 총리로 3선에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메르켈은 인심 좋은 이웃집 아줌마 인상입니다. 얼굴도 그렇지만 유로존 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일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모습이 집안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엄마를 연상시킵니다. 독일에서 메르켈을 ‘무티’(엄마)라고 부를 만합니다. 메르켈은 무티 이미지만 있는 게 아닙니다. 1999년 정치적인 아버지였던 헬무트 콜 전 총리가 불법자금으로 궁지에 몰리자 단칼에 그를 죽여버립니다.

2005년에는 독일노조연맹 총회장에 직접 연사로 나서 노조가 요구하던 시간당 7.5유로 최저요금을 정면으로 반대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메르키아벨리’(Merkiavelli)로 부르는 것도 이런 ‘철의 여인’ 면모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메르켈을 현존하는 최고의 여성 정치 지도자로 만든 것은 늘 진실의 순간을 직시하려는 용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고 독일 내에서 반 원전 목소리가 커지자 17인 위원회를 구성, 끝장 토론을 한 뒤 원전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국내로 치면 정부가 통합진보당의 목소리를 정책화한 것이지요. 상상이 되시나요. 보수당 정권이면서도 이데올로기를 앞세우지 않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메르켈의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역사 인식도 우파 같지 않습니다. 나치 강제수용소를 찾아 희생자들에게 헌화하고, 사죄와 반성을 했습니다. 내가 한 일 아니라고 잡아떼지 않았습니다.

메르켈은 박근혜 대통령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도 자서전에서 “(그의) 경제정책이나 외교정책의 노선이 내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고 원칙과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나와 꼭 닮았다”고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지요.

정말 박 대통령이 메르켈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독일의 정보기관이 총선에 개입했다면, 공작의 추억을 물씬 풍기며 검찰총장의 목을 쳤다면, 제1야당 대표가 길거리로 나갔다면 과연 메르켈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사과를, 야당과의 타협을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는 위험한 도박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는 데 필요한 것은 용기니까요. 이념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물론 한국과 독일의 정치 현실이 다릅니다. 박 대통령과 메르켈이 똑같을 수도 없습니다. 이만수 감독이 결코 김성근 감독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박 대통령이 메르켈과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메르키아벨리’ 말고 진실의 순간을 직시하려는 메르켈의 용기를.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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