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2014년 예산전쟁, 토건족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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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간접자본 예산 삭감 실패로 복지 부분 대폭 감소

“아이고 말도 마세요. 예산 절반을 싹둑 자른다네요. 완전 전쟁입니다.”(국토교통부 관계자 ㄱ씨, 2013년 7월)
“예년 수준은 지켰습니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통상 증액되니까 조금 늘어날 수도 있어요.”(국토부 관계자 ㄴ씨, 2013년 9월)

예산안 전쟁이 이번에도 ‘토건족’의 승리로 돌아갔다. ‘2014년 예산안’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대부분을 지켜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구 의원들과 자자체의 요구가 거셀 경우 오히려 증액이 될 수도 있다. 당초 정부 구상은 SOC 예산을 줄이고, 그만큼 복지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SOC 예산 삭감에 실패하면서 복지에 투입되는 예산은 대폭 감소했다. 토건족이란 토목건설분야의 관료, 기업, 협회 등 이익·이해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정부는 ‘2014년 예산안’을 9월 26일 공개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총 357조7000억원이 잡혀 올해 본예산보다 4.6%인 15.7조원이 늘어났다. 이번 예산안을 보면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진료비 본인부담액,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등 복지 관련 정책들이 대선공약보다 줄줄이 후퇴한 것이 특징이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예상보다 큰 폭으로 정책이 후퇴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지난해 강원도에서 벌어진 도로공사 현장. | 연합뉴스

지난해 강원도에서 벌어진 도로공사 현장. | 연합뉴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2014년 예산안은 4대강 사업으로 경제활성화와 747(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국)을 이루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막개발 예산의 복사판”이라면서 “세수입이 줄어들고 증세가 없는 상황에서 불요불급한 SOC 예산까지 줄이지 못하면서 전체적으로 재원이 쪼들리게 됐다”고 말했다.

복지정책 대선공약보다 줄줄이 후퇴
내년도 예산안에 잡힌 SOC 예산은 23조3000억원이다. 올해 본예산(24조3000억원)과 비교하면 4.3%인 1조원이 줄어드는 데 그쳤다. 당초 정부 계획은 올해보다 3조원가량을 줄인다는 방침이었다. 지난해 마련된 2012~201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 SOC 예산을 23조원으로 못박았다. “SOC가 충분하게 투자된 만큼 앞으로는 적정수준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이런 다음 공약가계부를 내면서 추가적으로 내년에 1조7000억원을 깎겠다고 했다.
 
정부 예상대로라면 21조3000억원이 됐어야 했다. 올해 본예산 대비 3조원 축소는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23조3000억원으로 잡히면서 2조원이 되살아났다. 2조원이라면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진료비, 반값등록금 등을 계획대로 시행하고도 남을 금액이다.

정부가 칼을 뽑지 못한 것은 ‘경기위축’과 ‘일자리 축소’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경기침체 등 여건을 감안해 2조원 정도를 사실상 추가 투자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최대 공약인 ‘고용률 70%’ 목표 아래서는 모든 정책이 무력했다는 얘기다.

정부의 SOC 예산안 삭감은 방향부터 우왕좌왕했다. ‘2014년 예산안 자료’를 보면 ‘그동안 집중투자로 SOC 스톡(구축 정도)이 어느 정도 확충된 점을 감안해 투자규모 확대보다는 운영 효율성 제고에 주력한다’와 ‘지역 SOC 투자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가 같이 들어가 있다. SOC 예산 대부분이 지역개발 예산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자체로 ‘모순’이었다.

정부가 2조원을 살리면서 국가재정운용계획조차 무력화됐다. 내년 SOC 예산안 23조3000억원은 국가재정운용계획의 23조원보다 오히려 3000억원이 더 많다. 향후 5년간 SOC 예산을 줄이겠다는 계획이 시작부터 삐끗한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도 “당초 정부 방침은 지역공약과 국정과제 재원 마련을 위해 SOC 예산을 줄인다는 것이었지만, 경기도 어렵고 일자리 문제도 있고 하다보니 내년도는 적정 규모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며 “국가재정운용계획보다도 증액됐지만 이 계획이 변경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제]2014년 예산전쟁, 토건족이 이겼다

그렇다면 예산을 줄이기는 한 것일까. 올해보다 1조원을 줄였다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다고 답하기도 어렵다. 이번에 발표된 것은 ‘예산안’으로 실제 국회에서 확정된 예산은 이보다 늘어날 공산이 크다. 지역구 의원들과 지자체가 지역예산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내년은 6월 지방선거가 있어서 증액폭이 더 클 수 있다. 예년의 경우를 보면 정부안에 비해 실제 통과 예산안은 6000억~7000억원가량 늘어난다. 그러니까 올해 예산과 내년도 확정 예산을 실제로 비교해보면 2000억~3000억원 정도 줄어들든가 아니면 오히려 증액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질투자로 보자면 올해 SOC 예산만으로도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연구개발(R&D)·문화시설 투자, 민간투자 활성화 등을 모두 합한 건설 투자규모는 60조5000억원으로 집계돼 지난해의 60조3000억원보다 이미 2000억원 초과됐다. 국토부 측이 “건설토목분야에서 예산 삭감에 따른 산업 위축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SOC 예산안 삭감 방향부터 우왕좌왕
4대강 관련 예산만 해도 적극적으로 줄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 건설 등 사업 완료에 따른 자연감소분이지 별도의 예산 삭감 의지는 없었다는 얘기다. 4대강 주변을 관리하는 ‘국가하천유지관리비’의 경우 올해 1997억원이 쓰였다. 내년은 1901억으로 소폭 줄었는데, 이는 준설비 예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강 바닥을 파내는 준설은 5~6년에 한 번 정도만 해도 되기 때문에 내년에는 바닥을 팔 일이 없다.

내년 SOC 예산을 분야별로 뜯어보면 도시철도(-21.4%), 수자원(-13.9%), 주택(-7.1%), 도로(-2.1%), 철도(-1.7%) 등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착시현상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는 신규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혹은 실시설계비만 반영해 예산이 줄어들게 보인다는 것이다. 수자원분야는 4대강 사업 종료에 따라 예산이 대폭 줄었지만 내년 이후 4개 광역상수도 사업이 본격화된다. 내년은 초기비용만 들어 액수가 크지 않다. 한 관계자는 “사업이 진행될 때는 뭉텅이 돈이 들어가지만 사업 초기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며 “수자원분야 예산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기보다는 옛 사업이 끝나고 새 사업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내년 이후는 잠시 줄어든 SOC 예산이 폭증할 수도 있다. 올해는 10억~50억원 수준의 타당성조사비 혹은 실시설계비로 들어가지만, 내년 이후 공사가 확정되면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SOC 공사로는 천안~청주공항 복선전철, 신공항 건설, 광주~완도 고속도로, 보령~울진 고속도로, 춘천~속초 복선전철 건설 등이 있다.

이들 지역 SOC 중 일부는 이미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타당성 없음’ 판정을 받았다. 기재부가 박원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친 28개 사업 중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성적표를 받은 사업이 7개나 된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광주~완도 고속도로, 전남~경남 한려대교, 여주~원주 복선전철, 부창대교, 부안~하서 국도 등이다. 이명박 정부처럼 ‘마구잡이 SOC 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환경운동연합은 “어려운 재정여건과 사회적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토목예산을 고집한 2014년 예산은 토목 DNA에 오염된 예산”이라고 혹평했다.

토목건설 업계에서 ‘SOC 예산은 복지예산’이라는 새로운 논리를 내세우고 있어 SOC 예산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많다. 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토목 SOC 예산’이 되지만 도로 건설로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의 이동권이 좋아지게 한다면 ‘복지 SOC 예산’이 된다는 얘기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향후 도로·철도 예산은 ‘토목건설’보다는 ‘복지’ ‘일자리’로 접근하게 될 것”이라며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SOC분야의 개선이 이뤄지면 여론이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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