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추억을 만나세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지지난주에 벌초를 다녀왔습니다. 중3인 아들에게 같이 가자고 했더니 선뜻 따라나섭니다. 아이에겐 벌초가 친척들을 만나고, 조상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추가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건 저만의 기대이고, 아들에겐 다른 노림수가 있었겠지요.

인생은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과거에서 바통을 받아 미래로 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바통을 이어받았듯이, 이제는 제가 아들에게 바통을 넘겨줄 차례입니다.

고향 집에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선산으로 가는데 옛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제천시내를 벗어나 조금 달리면 다랑고개가 나옵니다. 40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고개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은 게 신기합니다. 그 고개를 지나치자니 선친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 왔던 생각이 납니다. 정식 스케이트장은 아니고 다랑고개 입구에 있던 그냥 논이었는데,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와 추운 겨울바람을 헤치고 얼음을 지치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논도 없어지고 무슨 식당 같은 게 들어서 있더군요.

초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인가 자전거를 타고 금성면 할머니 집에 갔던 일도 떠오릅니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잘 포장돼 있지만 그 때는 흙먼지 날리는 옛날 도로였습니다. 길은 구불구불, 고개는 굽이굽이, 언덕은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어찌나 멀게만 느껴졌던지, 그 당시 저에겐 거의 모험 내지 국토대장정 수준이었습니다. 

버스나 트럭이 지나가면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 입을 가리고 한동안 옆으로 피해 있어야 했지요. 여름에는 플라타너스 나무들에서 매미가 쉼 없이 울어대고,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피어 있던 낭만적인 길이기도 했습니다. 선친은 할머니 집에서 제천 시내에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6년을 걸어서 다녔다고 합니다. 지금은 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명절 때 차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버스를 타고 오다가 멀미하고, 토하고, 울던 기억도 납니다.

선산은 충주호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청풍에 있습니다. 충주호가 만들어지기 이전엔 그냥 강이었습니다. 강가에는 새하얀 자갈밭이 수십미터 펼쳐져 있었는데 예쁜 돌 찾겠다고 헤매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

선산에서 선친의 친구이자 먼 친척 되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선친과 초·중·고를 함께 다니셨다는 이 어르신을 보니 마치 살아돌아오신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반갑습니다.

조상들의 묘를 하나씩 찾아 인사드립니다. 아들에겐 고조 할아버지다, 현조 할아버지다 설명해주는데 썩 집중해서 듣는 눈치는 아닙니다. 뭐 저도 그랬으니 아들에게 뭐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자꾸 와보면 알겠지 하고 넘어갑니다.

길을 만들어가며 성묘를 하니 아들이 “등산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힘들다는 뉘앙스입니다. 작은 어머님이 “산에도 올라가고, 조상도 뵈니 좋은 날”이라고 달랩니다.

성묘를 마치고 나올 때 가까운 길 대신 일부러 빙 돌아서 옛날 할머니 집 있던 동네를 지나갑니다.

산 밑에 자리잡고 있던 할머니 집을 바라보니 컴컴한 한밤중에 뒷산에서 들려오던 ‘우’ 하는 동물 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합니다. 과자 사먹기 위해 한참 걸어내려와야 했던 조그만 가게, 마루에서 누워 듣던 라디오 드라마 ‘마루치 아라치’, 올랐다 내려갔다 하며 놀았던 집앞의 밤나무, 컴컴한 밤길을 걸어가다 발자국 소리에 놀랐던 일까지….

이런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릴 나이가 됐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한 번 간 청춘은 돌아올 줄 모르고, 그저 무심히 흘러만 갑니다. 추석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추억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독자님들, 좋은 추억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

편집실에서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