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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도 필요한 사람만 쓰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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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골프장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김학유씨(56·가명)는 2년 전 수도권 인근 ㄱ 골프장 회원권을 샀다. 스무 번 가까이 같은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다보니 코스를 거의 꿰다시피 한다.

김씨는 “요즘에는 거의 캐디 도움을 받지 않는다”며 “거리나 퍼팅 라이도 잘 아는데 굳이 캐디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캐디 서비스를 별로 받지 않아도 김씨는 라운딩할 때마다 캐디피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 캐디 동반이 의무화돼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골퍼들 셀프플레이 욕구 높아져
선택제가 필요한 건 카트만이 아니다. 캐디 선택제를 바라는 골퍼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골프소비자모임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0% 이상이 캐디 선택제를 찬성했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 | 정지윤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 | 정지윤 기자

골프장에서 캐디의 역할은 작지 않다. 거리와 코스의 특징, 공략지점 등을 설명해줘야 하고, 퍼팅 라이도 봐줘야 한다. 카트를 운전하고, 골프채를 갖다주고, 잃어버린 볼을 찾는 궂은 일도 해야 한다. 특히 경험이 많지 않거나, 코스에 익숙하지 않은 골퍼들에게 캐디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골프 인구가 4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골프가 대중화되면서 골퍼들의 수준이 다양해졌다. 거리를 알려주는 보이스 캐디 같은 보조장비도 값싸게 이용할 수 있게 된 마당에 셀프 플레이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캐디피 부담도 만만찮다. 대부분의 골프장 캐디피는 팀당 10만~12만원이다. 2004년 8만원에서 2만(25%)~4만원(50%)이 올랐다. 최근에는 캐디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서 12만원으로 캐디피를 올리는 골프장이 많아졌다.

회원인 김씨의 경우 그린피가 6만6000원이지만 캐디피(3만원)와 카트비(2만원)에 식음료값을 더하면 배보다 배꼽이 커질 때가 많다.

핸디캡이 9인 이재필씨(55·사업·충북 제천)도 “90대만 치면 솔직히 캐디가 필요없다”면서 “라이 잘못봤네, 거리 잘못 불렀네 하고 실랑이를 할 때면 캐디피나 카트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집에서 가까운 제천의 에콜리안 제천 골프장을 자주 이용한다. 에콜리안 제천은 노캐디, 노카트로 운영된다.
이씨는 “무엇보다 일반 골프장보다 5만원 저렴해 좋고, 걸으니까 운동도 많이 된다”면서 “접대할 때는 할 수 없이 정규 골프장에 가지만 친구들과 라운딩할 때는 에콜리안을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골프장이 배부른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이용자 무시하고 골프장 잇속만 차리면 곧 외면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디·카트 고객 부담 불합리하다”
박인혁 골프소비자모임 사무국장은 “거리목 다 있고, 보이스 캐디도 있어 캐디가 없어도 큰 불편은 없다”면서 “9홀만 돌아도 운동이 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에콜리안 제천을 많이 추천한다”고 말했다.

캐디피는 고객이 내지만 캐디가 꼭 고객 편의를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다. 골프장 입장에선 오히려 경기진행을 빨리해 회전율을 높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캐디다.
실제로 진행이 느릴 경우 캐디는 고객들에게 빠른 플레이를 독촉하는 마샬 노릇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IT업체 임원인 김종원씨(48)는 “캐디나 마샬이 시간 독촉하는 걸 골퍼들 사이에선 ‘엉덩이를 찌른다’고 표현한다”면서 “빨리 하려고 채를 들고 뛰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골프를 치러 왔는지, 유격을 하러 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캐디나 카트나 골프장 필요에 의해서 이용을 의무화시켜놓고 있는데 부담은 고객들이 고스란히 지는 건 불합리하다”면서 “캐디가 없다고 캐디피만 올릴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인혁 국장은 “골프장들이 손님 못오게 만들어놓고 어렵다고 죽는 소리를 한다”면서 “골프장도 갑 노릇만 하지 말고 이용자 위주로 운영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골프장 이용 표준약관 개정해야

공정거래위원회는 2002년 3월 ‘골프장 이용 표준약관’을 제정했다.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공정하고 건전한 계약질서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제정한 지 10년이 흘렀고, 국내 골프장 시장도 ‘공급자 시장’에서 ‘수요자 시장’으로 바뀌고 있어 환경변화에 맞게 표준약관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강설, 폭우, 안개, 기타 천재지변 등의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경기가 중단됐을 때 이용요금 환불을 규정한 표준약관 제8조 2항이다.

약관은 ‘입장에 관한 절차를 마친 이용자 팀 전원이 1번째 홀까지의 경기를 마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제세공과금을 제외한 이용요금 전액을 환불하고, 9번째 홀까지의 경기를 마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제세공과금을 제외한 이용요금의 50%를 환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1번홀을 마치고 악천후로 경기가 중단돼도 9홀 요금을 부담하고, 10번홀을 돌다 중단되는 경우엔 18홀 요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이용하지도 않은 홀까지 골퍼들이 부담하는 것으로 골프장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해 골퍼들의 불만이 많았다.

이미 회원제 골프장 227개소 중 27개소(11.9%), 대중제 골프장 89개소 중 27개소(30.3%)가 이용자들의 불만을 수용해 천재지변 등으로 경기를 중단한 경우에는 홀별 정산제를 실시하고 있는 마당에 10년 전 표준약관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현실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그린피나 캐디피, 카트비 모두 이용한 홀수만큼 이용료를 정산하는 게 합리적”이라면서 “표준약관 조항도 ‘1번째 홀까지의 경기를 마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제세공과금을 포함한 이용요금 전액을 환불하고, 2홀 이후에는 경기를 마친 홀까지의 이용요금만 지불한다’로 개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캐디피를 홀별 정산하는 골프장은 한 군데도 없다.
‘입장절차를 마친 이용자가 경기 전 임의로 이용계약을 취소한 경우에는 이용요금의 50%를 환불한다’고 규정한 8조 1항도 손볼 여지가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이 발생할 경우에도 50%밖에 환불받지 못한다면 이용자 입장에선 억울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 소장은 “사람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반적인 개인사정과 불가피한 개인사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일반적인 개인사정은 현행대로 하더라도 ‘불가피한 개인사정의 경우엔 입장료 전액을 환불한다’로 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값 골프 성공할까

주말 골퍼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역시 고액의 그린피다. 한 번 라운딩하면 최소 20만원 이상 지출은 각오해야 한다. 그린피 때문에 골프 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주말 골퍼들에게 희소식이 생겼다.

‘반값골프’가 탄생한 것이다. 골프장에서 1~3일 후에 남은 부킹 시간을 할인된 그린피로 제시하고, ‘반값골프’가 홈페이지(www.halfpricegolf.co.kr)를 통해 회원들에게 할인 그린피·시간을 공지하면, 원하는 회원들이 이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기존 예약 대행업체들이 해소하지 못한 1~3일 후 부킹시간만 판매하기 때문에 기존 예약 대행업체들의 할인 그린피보다 저렴할 수밖에 없다.

연회비 2만원을 내는 회원은 할인 그린피로 예약이 가능하고, 비회원은 회원 그린피에 20%가 할증된다. 반값골프는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난 뒤 홈페이지를 오픈할 예정이다.

서천범 반값골프 대표는 “골프장 입장에서도 시간을 놀리느니 싸게라도 공급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초기에 회원을 얼마나 확보해 유휴 부킹 시간을 소비해 주느냐가 반값골프 정착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형열 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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