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쌍용차,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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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무급휴직자 450여명은 복직을 했지만 해고자 원직복직과 국정조사 실시 등 정치권이 한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절망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 해고자들과 활동가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9월 10일 오후 서울 대한문 앞.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10여명의 사내들이 도로를 등지고 플라스틱 의자 위에 앉아 있다.

이들은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 ‘쌍용차 해고자 원직복직’ 등이 적힌 알림판을 붙잡고 있었다. 무기한 집단 단식농성에 들어간 쌍용차 해고자들과 노동단체 활동가들이었다.

이유일 쌍용차 사장은 지난 9월 6일 강원도 태백에서 열린 ‘2013 익사이팅 드라이빙 스쿨’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 하반기 희망퇴직자의 복직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쌍용차 무급휴직자 450여명이 복직한 바 있다.

쌍용차 해고자이기도 한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10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 사장의 발언에 대해 “쌍용차는 단 한 번도 자기 입으로 해고자를 언급한 바 없다”고 비판했다. 쌍용차 사측이 해고 노동자들을 ‘희망퇴직자’로 묘사해 회사의 결단으로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포장했다는 것이다.

10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범대위 등이 쌍용차 국정조사, 해고노동자 복직 등을 위한 집단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단식 참가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에 절을 올리고 있다. | 김기남 기자

10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범대위 등이 쌍용차 국정조사, 해고노동자 복직 등을 위한 집단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단식 참가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에 절을 올리고 있다. | 김기남 기자

그동안 쌍용차 노동자들은 1년여에 걸쳐 노숙농성, 고공농성 등을 벌였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40여일간 홀로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쌍용차 청문회에서는 쌍용차 사측이 노동자 정리해고를 위해 회계를 조작해 ‘긴급한 경영상의 이유’를 거짓으로 지어냈다는 의혹도 터져나왔다. 하지만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계획에 관한 사회적인 논의는 전혀 진척되지 않았다.

대한문 단식농성자들은 “1~2년 전에 비하면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쌍용차 해고자 김수경씨는 “단식을 시작한 이후 오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느껴진다. 민주당, 정의당, 노동당의 정치인들도 농성장을 방문했다”며 “항상 언제나 즐겁게 투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해고자 문제 사회적 논의 진전 없어
김씨는 2009년 5월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융자를 받아 새 아파트를 구입한 지 불과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해고된 이후 김씨는 빚을 갚기 위해 일용직, 버섯농장 잡부, 보험설계사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김씨는 “생계를 해결하느라 지난해 선거국면에도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올해부터라도 복직을 위한 투쟁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자 윤충렬씨(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비지회 부지회장)도 절망 때문에 단식에 참여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윤씨는 희망 섞인 목소리로 쌍용차 공장 내부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얼마 전 쌍용차 평택공장 노동자들이 사측이 제시한 임금협상안을 부결시켰다. 그동안 회사가 원하는 대로 노동자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는데, 조금은 공장 안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이라며 “쌍용차 공장 안에서도 해고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유인물이 배포되고 있다. 무급휴직자들이 복귀하기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라고 말했다.

단식에 참여 중인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2년 전만 해도 우리가 어떻게 주장해도 회사나 정부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회에서 청문회도 열리고 이유일 쌍용차 사장이 직접 희망퇴직자 복직을 언급하는 등 조금씩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지부장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벽에다 계속 소리치는 것처럼 보여도 쌍용차 사태의 진실이 점차 국민들 사이에 알려지고 있다”며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풀릴 때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집단 단식농성이 시작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애초 쌍용차 해고자들은 자신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를 합해 20명이 넘는 대규모 집단 단식농성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석기 내란음모 의혹사건 등 국정원 관련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쌍용차 해고자들의 문제는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결국 애초 생각만큼 단식농성 참여자를 많이 모으지는 못했다.

원래 계획보다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결국 9월 10일 집단 단식농성이 시작됐다. 해고자 윤충렬씨는 “9월 2일 정기국회 회기가 시작된 만큼 집단단식을 통해 쌍용차 국정조사를 관철시키겠다”고 말했다.

11일 쌍용차 단식농성자들이 파라솔을 펴려 하자 경찰들이 나타나 제지하고 있다. | 백철 기자

11일 쌍용차 단식농성자들이 파라솔을 펴려 하자 경찰들이 나타나 제지하고 있다. | 백철 기자

“추석 전에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비오는 날 거리의 단식투쟁은 피곤함의 연속이다. 단식 첫날인 10일과 이튿날인 11일 연속으로 서울 시내에 비가 내렸다. 하지만 농성자들은 작은 우산 하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대형 파라솔이라도 펼치려 하면 대한문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이 다가와 이를 막는다. 집회를 넘어선 ‘불법 도로점유’가 될 수 있다는 게 경찰 측의 설명이다.

단식농성이 길어질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잠도 많아진다. 동료 노동자들은 대한문 건너편인 서울광장 구석에 단식농성자들이 쉴 수 있도록 10일 밤 천막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 천막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서울광장을 관리하는 서울시 청사운영1팀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서울광장 천막은 불법 점유시설”이라며 “강제철거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일단은 자진철거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극한투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파업 이후 지금까지 24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 4월부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1년여에 걸쳐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24명의 분향소를 차려놓고 노숙농성을 하며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와 해고자 원직복직을 요구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상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 등 3명의 쌍용차 해고자가 같은 요구를 하며 쌍용차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올해 4월 서울 중구청은 직원들을 동원해 쌍용차 해고자들의 대한문 분향소를 강제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5월에는 철탑 농성자들이 농성을 풀고 땅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이번 무기한 단식농성에는 김득중, 윤충렬, 한윤수, 김수경, 고동민, 박호민, 김남오 등 7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이들과 함께 조희주 노동전선 대표, 허영구 좌파노동자회 대표,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시민 신영철씨가 함께 단식을 하고 있다.

올 추석 단식농성자들은 24명의 쌍용차 위령들을 모시고 합동 차례를 지낼 예정이다. 단식에 참여하고 있는 허영구 좌파노동자회 대표는 “쌍용차 문제가 터진 지 4년이 지났다. 추석 전에 쌍용차 문제가 해결되고 쌍용차 노동자들이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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