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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아이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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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왁자지껄한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5층에 자리 잡은 3학년 10반에 들어섰다. 후끈했다. 교실 뒤편 왼쪽 구석에 에어컨이 있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에어컨 바로 앞이 아니면 땀이 흐른다. 시설은 전반적으로 낡아 보였다.

장곡중학교는 2010년도에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유명한 학교다. TV 전파도 여러 번 탔다. 전국에서 연 2000여명의 교사·장학관이 참관하러 온다. 이곳에서 일어난 ‘혁신’을 배우기 위해서다. 최근엔 책도 한 권 나왔다. 지난 8월 5일 나온 <희망의 학교를 꿈꾸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학교 수석교사인 박현숙 교사가 지은 책이다.

참관이 학생들 수업에 방해나 되지 않을까. 이 학교 정용택 교장은 “평상시에도 참관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상관없다. 아이들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로 보였다. 교실 뒤 낡은 서랍장의 귀퉁이는 깨져 있었다. 학생들의 책걸상 뒤쪽엔 ‘동방신기♡’와 같은 낙서가 빼곡했다. 에어컨도 성능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조는 애들이 없다. 후텁지근한 날씨였고, 개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적응이 안 되는 아이들도 많았을 터였다.

혁신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4~5명이 모둠을 이뤄 진행되는 토론협동 방식의 수업이다. 사진은 장곡중학교 3학년 10반에서 진행되는 수업. | 이상훈 선임기자

혁신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4~5명이 모둠을 이뤄 진행되는 토론협동 방식의 수업이다. 사진은 장곡중학교 3학년 10반에서 진행되는 수업. | 이상훈 선임기자

혁신학교의 수업은 이렇게 진행됐다. 가장 특이한 것은 책상 배치다. 교실 가운데 교탁을 기준으로 아이들의 책상은 칠판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끼리 마주보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교사들은 교과서와 별도로 프린트물을 항상 나눠준다. 프린트물을 받아든 아이들은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다시 4~5명씩 ‘모둠’으로 재구성된다. 앞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책걸상을 돌려 이동하면 모둠 조는 완성된다. 여름 단축수업으로 40분간 진행된 한 과목 수업에서 이들은 3~4차례 모둠 조를 구성했다. 모둠 조 토론은 앞서 나눠준 프린트물에 적힌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아이들은 토론을 통해서 프린트물에 적힌 빈 공간을 채운다.

기자가 참관한 수업은 오전 10시 10분부터 시작되는 영어수업. 이들에게는 방학 때 외국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과제가 먼저 주어졌다. 수업 내용은 외국인을 만나 인터뷰를 할 때 어떻게 하면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기를 것인가를 토론하는 것이다. 프린트물에는 세 가지 기술이 적혀 있다. “1. 먼저 대화 상대방과 ‘래포트’한 관계를 만들라. 2.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피드백을 전하라. 3. 상대방이 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가급적 쉬운 말로 바꿔라.” 옆에는 앞에 적힌 대화의 기술을 ‘Sum-up’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니까 빈칸에 들어갈 말을 같은 모둠 조 학생들과 함께 토론해서 써내는 것이다.

모둠 조 토론 수업을 제외하고는 과거 기자가 학창시절 경험했던 수업과 비슷했다. 교사는 어려운 단어를 칠판에 써서 알려주고, 학생들과 질의응답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런 식이다. 교사가 묻는다. “제일 먼저 어떤 말을 건넬까.” 덩치가 큰 학생이 손을 들고 말한다. “헬로.” 애들이 웃는다.

4교시 국어수업 시간도 진행방식은 비슷했다. 소설 ‘운수좋은 날’을 읽고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부분을 요약해보는 것이다. 다음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다. 다시 모둠별로 ‘헤쳐모여’한 아이들이 토론을 한다. 교사는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모둠들을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이 적은 것을 기준으로 하나하나 가르쳐준다.

기자가 두 수업을 연달아 참관한 것은 아무래도 교수방법이 같을 수 없는 토론식 수업방법이 각 과목에 따라 어떻게 적용되는지 체크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대로 기사를 쓰려면 다른 일반학교에서 진행 중인 수업도 참관하고 비교를 해야 한다.” 정용택 교장은 기자에게 여러 차례 권고했다. 취재 스케줄 상 새로운 섭외는 불가능했다. 기자가 경험했던, 그리고 현재 혁신중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을 기자 나이 또래인 대부분의 학부모가 겪었을 과거 경험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조는 아이들이 없는 교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단 조는 아이들이 없다는 점. 교탁을 바라보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강의식 수업은 아무래도 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아이들도 없다. 중학교 시절, 팝송에 빠져있던 기자는 맨 뒷자리에 앉아 머리를 길러 이어폰을 감추고 카세트레코더로 라디오를 들었다. 적어도 그런 아이들은 안 보였다.

궁금한 부분이 없진 않았다. 영어수업의 ‘Sum-up’은 단어를 채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혼자서도 비교적 단시간에 채워넣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국어시간의 발단, 전개, 위기… 부분을 요약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굳이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었을까. 모둠으로 자리를 이동하기 전에 먼저 개인적으로 채워넣고 답을 맞춰보며 서로 조율하는 것도 나름대로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지 않았을까 생각됐다.

둘째로 모든 모둠이 열심히 토론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교사의 지시에 따르는 모양새였지만, 일부 아이들의 토론은 비켜 나가고 있었다. 일찍 답을 채운 모둠원들의 토론은 ‘수업과제’와 연관 없는 수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앞서 4년의 장곡중학교 혁신학교 수업 기록 책을 낸 박현숙 교사는 “원래 혁신학교의 모둠수업이 시끄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곡중학교 학생들은 오후에는 각각의 관심사에 따라 동아리 활동을 한다. 사진은 요가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아이들. | 이상훈 선임기자

장곡중학교 학생들은 오후에는 각각의 관심사에 따라 동아리 활동을 한다. 사진은 요가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아이들. | 이상훈 선임기자

또 하나. 이 모둠, 그리고 학생들의 자리 배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교탁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마주보고 앉고, 맨 뒷줄에는 한 줄로 5~6명의 아이들이 교탁과 마주보고 앉아 있는데 그쪽에 아이들을 앉히는 기준은 또 뭘까. 박 교사는 이 형태의 자리 배치를 ‘ㄷ자 책상 배열’이라고 불렀다. “딱히 기준은 없습니다. 딱 하나, 남녀 혼성으로 자리를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남자애는 남자애끼리, 여자애는 여자애끼리 대각선으로 마주보게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성적을 기준으로 모둠을 배치하는 것도 아니고요.” 박 교사의 설명에 따르면 혁신학교의 수업은 교사 중심의 수업이 아니기 때문에 ‘협력과 경청이 가장 잘 이뤄지는 구조’가 무엇인지 고민 끝에 만들어진 배열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개별적인 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방으로 다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생활이나 수업에서도 아이들 ‘스스로’ 하는 것이 가장 강조된 구조라는 설명이다.

반장이나 부반장은 따로 없다. 학생자치회에서 그 반의 의견을 대변하는 대의원들이 있을 뿐이다. “보통 반장이나 부반장은 아이들의 대의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교사의 잔심부름을 한다든가, 아이들을 통제하는 기능을 더 많이 하잖아요. 여러 명의 대의원을 반에 둔 것은 말 그대로 권력이 아닌 아이들의 뜻을 대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반장·부반장을 뽑는 것을 없앴어요.”

혁신학교의 수업방식이나 학교운영 원리를 설명한 책들이 최근 여러 권 출판되었다. 배움 중심의 수업이나 토론식 수업의 기술을 다룬 책들도 나왔다. 혁신학교를 설명한 책들을 보면 대부분 교사의 변화를 예로 들고 있다. 권력과 통제에 실망을 느꼈던 교사, 보통 책의 저자 자신이 혁신학교의 혁신수업을 하면서 교육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초심, 그때의 희망과 꿈을 다시 찾게 되었다는 내용이 많다. 실제 혁신학교가 시행되면서 교사들의 자기효능감이 전반적으로 올라갔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아이들도 그 ‘변화’를 느낄까.

다시 쉬는 시간. 아이들 여럿이 찾아왔다. “저 인터뷰하고 싶어요.” 적극적인 자세다. 중3 아이들. 1998년에 태어난 15살 아이들이다. 장곡중학교 인근엔 혁신초등학교는 없다. 대부분 장곡중학교에 들어와 혁신학교를 처음으로 경험한 애들이다. 이 학교 유승희 교감은 “다른 중학교를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이라 막상 어떤 점이 더 좋은지 안에서는 잘 못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오후시간엔 동아리 활동을 한다. 원래 외부에 나가 농장체험을 하는 등의 일도 있지만 더위로 이날 야외활동은 대부분 취소됐다. 다시 인터뷰를 약속한 3학년 10반 아이들을 만났다. 다른 학교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강교진 학생이 답했다. “다른 학교보다 인사를 잘하는 것 같아요. 때로는 과할 때도 있는데 모르는 아이들한테도 막 인사하고….” 질문을 바꿨다. 거꾸로 다른 학교가 부러운 점? “우리 학교의 수업방식이 독특하긴 한 것 같아요. 다른 학교 다니는 친구들에게 학교에 대해 설명해주면 자기 학교보다 좋다고 말해요. 그런데 시설은 다른 학교보다 안 좋아요.” 정태현 학생이 말을 받았다. “화장실 좀 고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요.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에요. 있으면 그 휴지 가지고 장난을 치니…. 그래도 ‘큰일’을 보는데 문고리가 날아가 있어요. 잠그는 것도 없고. 여자 화장실은 또 어떤지 모르겠고.” 아이들이 웃는다.

시설 이야기를 하니 에어컨이 생각난다. 아이들도 에어컨 성능이 불만이다. “뒷자리에 앉은 애들 일부한테만 바람이 가요. 그래서 커튼도 쳐놓지만 더워서….”

일진·왕따 없는 학교
수업방식에 대한 특별한 불만은 없다. 다만 교사들의 수업능력에는 편차가 있다는 것이 3학년 10반 아이들의 중론. 수업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모 선생님이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너무 고분고분하니까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거죠. 착하니까 통솔이 안 되는 거예요.” 반면 무서운 선생님도 있다. 속칭 ‘꼴통학교’로 알려진 모 고등학교에서 온 선생님은 그 학교에서 100명의 학생을 잘랐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때리거나 하지는 않지만 말이 세니까 아이들이 그 선생님이 말을 하면 조용해져요.” 학교의 두 번째 장점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장곡중학교에는 체벌이 없다. “그러고 보니 다른 학교보다 선생님하고 많이 친한 것 같아요.” 세 번째 장점이다.

혁신학교는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사진은 지난해 취임 3주년을 맞이하여 혁신학교 학생들과 토론하고 있는 김상곤 교육감. | 경향자료 사진

혁신학교는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사진은 지난해 취임 3주년을 맞이하여 혁신학교 학생들과 토론하고 있는 김상곤 교육감. | 경향자료 사진

학생 체벌 영상이나 왕따 동영상은 공교육 붕괴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수업시간에 휴대폰이나 스마트폰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아침에 휴대폰을 들고 오면 휴대폰을 걷는 주머니에 자발적으로 냈다 다시 하교할 때 받아가는 식이다. 그래도 누군가 안 내고 들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죠. 안 내도 돼요. 생각해보니 선생님들이 많이 봐주시는 것 맞네.” 그렇다고 징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무단외출 때문에 징계받은 학생이 있다.

이 학교에는 일진도 없고, 왕따도 없다는 것이 아이들의 설명. 하지만 다른 것은 대부분 다른 학교와 비슷하다.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을 쫓아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혁신학교 수업 덕분에 사교육을 받는 애들은 줄어들었을까. 기자가 만난 3학년 10반 아이들 7명 모두는 각자 학원을 다니고 있다. 영어·수학이 기본이고, 일부 학생들은 논술학원도 다닌다. 장곡중학교의 수업이 다른 학교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학원에서 만난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었다. 한 학생의 증언. “사실 학원에서도 장곡중학교가 골치 아프긴 할 거예요. 학교수업이 워낙 다른 데하고 다르니. 학원 선생님이 시험 출제 프린트 얻으려고 학부모인 척 전화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자가 만난 학생들은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교육은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기왕이면 좋은 고등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할 것 같은데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경기도 시흥의 2% 정도만 ‘인서울’(서울 지역에 있는 대학교)을 간대요. 4% 안에 들어가면 지방대에 가고….” 아이들의 입에서 ‘서연고 서성한…’의 대학 서열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들은 당장 내년이면 진학하게 될 고등학교 생활이 살짝 걱정된다고 말했다. 심지수양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들어왔을 때부터 혁신학교 수업에 익숙해져 있거든요. 어차피 수업을 혼자 듣게 되는데 졸면 끝짱일 것 같아요. 모둠을 하면 졸아도 다른 애들이 깨워줄 텐데.”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어떤 생각일까. 3학년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는 민병순씨(50·전업주부)는 남매를 이 학교 2학년과 3학년에 보내고 있다. 2학년인 딸은 학원을 안 다니는데, 3학년인 아들은 2학년 때부터 영어학원을 보내고 있다. “아이의 성향차일 수도 있겠지만, 3학년인 아들은 막연하게 불안한가 봐요. 다른 학교 애들도 다 다니고 있는데 자기만 안 다니면….” 민씨는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는 못느끼는 면이 있지만 인근에는 장곡중학교가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학교로 소문이 났다”며 “다른 동에 사는 학부모들로부터 ‘장곡중학교 쪽으로 주소라도 옮겨줄 수 있느냐’는 문의를 받을 정도”라고 말했다. 

총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는 박영순씨(45·전업주부)는 세 남매 모두 장곡중학교에 보냈다. 제일 큰 딸이 다닐 당시는 장곡중학교가 혁신중학교가 아니었고, 현재 고3인 둘째 딸이 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혁신학교가 됐다. 현재는 인근 능곡동으로 이사를 갔지만, 막내인 아들은 20분 걸려 버스를 타고 이 중학교에 다닌다. “둘째 딸이 진학한 학교가 혁신학교는 아니지만, 그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어요. 공부도 잘하는 편입니다. 토론방식의 수업을 중학교 때 익히니 아무래도 생각이 더 자유로운 것 같아요.” 막내 역시 학원을 다닌다. “사실 부모 욕심인 것은 맞아요. 부모로서는 좀 더 좋은 학교를 보내고 싶은 것이고, 불안감에 보내는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공부에 매달리지는 않았어요. 학교 끝나면 노는 게 일반적이었죠. 그런데 요즘 애들은 아침에 나가면 밤 9시, 10시에 들어와요. 때때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게 한다고 나중에 사회에 나가 또 잘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안쓰럽고 그런 마음은 있는데 그렇다고 내 아이는 놀라고 할 수 없는 게 또 현실이니까.”

경기도 교육연구원의 김성천 박사는 “물론 사교육 문제 등 교육 현안에 대해 혁신학교가 완벽한 답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없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벌사회로 공고화되어 있는 대학입시제도의 개혁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지난 몇 년간의 교육현실을 돌이켜보면 ‘공교육의 위기’를 거론하며 그 대안을 밖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제 공교육 내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고, 경기도의 사례처럼 일반화를 현실적 목표로 삼는 단계까지 나간 경우가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혁신학교가 시작된 곳은 경기도다.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됐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혁신학교였다. 김상곤 교육감은 후보자 시절 “학급당 인원수를 25명으로 낮춰 질 높은 교육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과 “가급적 소외된 학교에 좋은 교장과 교사를 초빙해서 공교육의 모델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것은 현재 이행되고 있을까. 기자가 방문한 장곡중학교 3학년 10반의 경우 학생 수가 32명이었다. 김성천 경기도교육원 정책개발 연구위원은 “혁신학교가 실제 좋은 학교라는 소문이 돌면서 학교 인근의 부동산 값이 뛰고 많은 아이들이 전학 오면서 학급당 학생 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혁신학교는 주로 교육감 직선제 이후 진보교육감이 들어선 곳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각 지역별로 혁신학교의 명칭은 다르다. 전라남도에서는 ‘무지개 학교’, 서울에서는 ‘서울형 혁신학교’, 강원도에서는 ‘행복 플러스 학교’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혁신학교와 일반학교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수업혁신이다. 통칭 ‘배움의 공동체’ 수업이라고 불리는 혁신학교의 수업은 교사 중심의 강의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모둠 등의 형식을 통해서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는 토론식 수업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혁신학교는 공교육 내에서 변화를 일구려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북서울중학교에서 혁신부장을 맡고 있는 강민정 교사는 “자립형사립고(자사고)와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 정책이 나온 이래, 일반 공립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처음부터 ‘우리는 떨거지가 아니냐’는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며 “교사들 입장에서는 수업활동지를 만들고 수업준비를 하는 등의 수고가 힘들 수 있지만 일방적 주입식 교육에 회의를 느껴온 교사들이나 그동안 학습에서 소외되었던 아이들이 주체가 됨으로써 오는 긍정적 효과는 크다”고 주장했다. 

교육자치단체별로 혁신학교에 대한 태도는 상당히 다르다. 경기도의 경우 김상곤 교육감이 혁신학교와 일반학교를 묶어내는 ‘혁신학교 클러스터’ 정책을 통해 경기도 내 전체 학교의 51%를 혁신학교 클러스터로 묶어내는 계획을 추진하는 데 비해, 지난해 재·보궐선거를 통해 교육감이 바뀐 서울시의 경우 혁신학교의 추가승인 등이 보류된 상태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육개발원에 그동안의 혁신학교 정책에 대한 평가를 의뢰하고 그 결과에 따라 관련 정책을 재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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