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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지표 일부 개선, 체감경기는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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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 점검… 체면 구긴 세법개정, 부동산시장 여전히 불안

박근혜 정부가 8월 25일로 출범 6개월이 지났다. 박근혜 정부의 출발은 역대 정부에 비해 ‘조용’했다. 두드러진 정권 실세도 없었고, 요란한 구호를 내세우며 ‘돌격앞으로’를 외치지도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딱히 한 것도 없어 보인다”는 평가도 적지않다.

박근혜 정부는 전반적으로는 경기부양에 방점을 둔 정책을 폈다. 지표적으로는 일부 개선됐지만 국민들에게 실제 훈기가 전달되기에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세법개정안이 한 차례 무산되면서 혼쭐이 나기도 했고, 4·1 대책에도 불구하고 전월세 가격은 폭등하면서 비상이 걸린 상태다. 관료 독점으로 논란이 됐던 공공기관장 임명은 아직 요원하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6개월을 되돌아봤다.

8월 16일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의 부동산 시세표. | 연합뉴스

8월 16일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의 부동산 시세표. | 연합뉴스

만신창이 된 세법개정안
“우리 정부 역사상 처음으로 증세를 염두에 두고 마련한 세법개정안이다.” 지난 8월 8일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한 직후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같이 자평했다. 기획재정부가 세종시로 이전한 뒤 평일에는 세종시에서, 주말에는 서울청사에 모여서 악전고투 끝에 만든 4개월간의 ‘작품’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여론은 들끓었고, 발표 직후 주말 촛불 민심은 심상찮았다. 발표 나흘 만인 8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세법개정안의 골자는 소득공제 8가지 항목을 세액공제로 바꾸는 것이었다. 소득공제 대신 세액공제로 바꾸면 특히 고소득자의 경우 지금보다 세금을 많이 내게 된다. 세율이나 과표구간을 건드리지 않고도 부자증세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포장을 하는 데 서툴렀다. 세금이 증가하는 ‘연봉 3450만원’을 근로자 상위 28%라고 한 게 문제였다. 연봉 3000만원대 근로소득자가 졸지에 중상위 소득자로 분류되면서 정서적 반발이 커졌다. 연봉 3450만원은 전체 근로자 기준으로 제시하면 상위 28%이지만, 세금을 한푼이라도 내는 근로자를 기준으로 하면 상위 43%에 불과하다. 정부과천청사의 한 공무원은 “우리 1인당 국내총생산이 2만 달러라고 할 때 3인 가족의 외벌이라면 연봉 6000만원 정도는 돼야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기재부가 너무 관료적인 통계를 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세법개정안을 통해 거둔 세금들이 쓰이는 것을 먼저 강조한 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설명했더라면 반발이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현 부총리가 발표하는 것을 보고 아차 했다”고 말했다.

근로소득자들의 반발이 커진 데는 많은 세금 중 소득세를 먼저 건드린 데 대한 반감도 컸다. 법인세나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강력한 증세방안이 먼저 발표됐어야 했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 하루 만에 기재부는 연봉 5500만원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는 수정안을 냈다. 하지만 부작용은 컸다. 섣부르게 소득세를 건드리면서 증세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탄력을 받던 보편적 복지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추후 정책이 발표될 때 여론이 커지면 언제든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선례도 남겼다. 박 대통령의 지지발언으로 간신히 지켜왔던 현 부총리의 경제 리더십도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거래절벽, 그리고 전월세 폭등
지난 7월 전국 주택매매 거래량은 3만9608건으로 곤두박질쳤다. 1년 전 같은 달 5만6799건보다 무려 30.3%가 감소했다. 2006년 이후 최저였다. 주택매매가 이처럼 줄어든 것은 취득세 감면 지원이 6월로 종료된 탓이 컸다. 당초 지난 연말 끝날 예정이던 취득세 감면은 거래절벽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묻혀 6개월 연장됐다. 그게 3월 22일이었다. 국회는 취득세 감면(현행 거래가액의 2~4%→1~2%)을 연장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앤다’며 올 1월 1일 계약건부터로 소급적용했다.

하지만 거래절벽이 6개월 뒤로 미뤄지는 데 불과했다. 취득세 감면조치를 앞두고 5~6월 거래물량이 늘었지만 7~8월에 거래될 물량 일부가 당겨져 계약됐다는 얘기다. 다시 취득세 감면 6개월 연장안이 나왔다. 연말까지 연장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부동산 업계에선 “이럴 바에는 아예 취득세를 영구감면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취득세 감면을 해줬다 말았다 하니까 거래절벽이 생긴다”며 “예측가능한 정책을 위해 취득세 영구감면이 맞다”고 거들었다. 정부는 7월 22일 취득세 영구인하를 확정했고, 8월 말 감면폭을 최종 확정 발표하기로 했다.

8월 20일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왼쪽)이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무역업계 관계자들과 인사 하고 있다. | 연합뉴스

8월 20일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왼쪽)이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무역업계 관계자들과 인사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거래 부진의 이유로 ‘취득세’를 마녀사냥하는 사이 전월셋값이 폭등했다. 4·1 부동산 대책은 ‘부동산 매매 활성화’와 ‘하우스푸어’에 맞춰진 대책이었다. 전월세는 정책의 주목표가 아니었다. ‘집 살 사람이 집을 안 산다’는 게 매매 부진의 이유였고, 이 때문에 전세수요가 넘쳐 전월셋값이 올라간다는 게 이명박 정부 이래 변함없는 정부의 시각이었다. 4·1 대책의 핵심은 취득세와 양도세를 깎아주고, 대출금을 저리에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생애최초주택구입자에게 대출지원과 함께 취득세를 전액 면제해주고, 다주택자라도 1가구 1주택자의 집을 사면 5년간 양도세 전액을 면제해주는 조치가 이때 나왔다. 또 ‘집이 너무 많다’며 수도권 주택 공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7월 24일 발표된 4·1 부동산 대책 후속조치를 통해 4년간 수도권에 18만가구 주택 공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승인이나 청약 기준으로 보면 30~40% 줄어드는 큰 폭이었다.

하지만 이런 부양책은 가뜩이나 불안하던 임대시장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신규 공급되는 아파트의 상당수는 전세물량으로 전환되는데, 이 연결고리가 막혀버린 것이다. 임대주택 공급도 혼란을 겪었다. 5월 20일 국토부는 서울·수도권 7개 지역 철도유휴지에 행복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해당 지자체가 강력 반발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목동, 잠실을 낀 해당 지자체와 협의 없이 일방 발표한 것이 문제였다. 국토부는 당초보다 한 달가량 늦은 8월 22일 오류지구과 가좌지구 2곳을 지구지정했다. 하지만 5곳은 끝내 지구지정을 하지 못했다.

창조경제는 아직도 아리송

[경제]경제지표 일부 개선, 체감경기는 글쎄요

“미래창조과학부는 세종시로 온답니까.” 세종시 한 식당에서 부처 공무원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는 12월로 예정된 세종시 정부 부처 2차 이전을 앞두고 미래부 이전은 ‘작은 관심사’다. 과천정부청사에 홀로 터를 잡은 이후 세종 이전을 꺼린다는 얘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의 답변은 이랬다. “오든 말든 상관없어요. 어차피 5년 뒤 사라질 부서 아닙니까.”

박근혜 정부의 모토는 ‘창조경제’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다. 신설 초기에는 막강 부서인 기획재정부까지 긴장했다. 미래전략 수립과 같은 기획기능을 전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미래부는 정부 부처 내에서조차 그리 존재감이 없는 부처로 전락했다.

미래부가 힘을 받지 못한다는 말은 창조경제가 국정 핵심사업으로 부상하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미래부는 “하반기부터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창조경제가 뭔지 모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4.4%가 ‘창조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시중에는 창조교육, 창조국방, 창조금융, 심지어 창조도시와 창조경영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술자리에서도 ‘창조주’라는 폭탄주가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창조경제가 ‘아주 기발한 창의적인 생각’을 기반에 둔 경제를 말하는 것인지,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한 콘텐츠’만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려 하는 게 현실이다. 청와대는 창조경제의 대표 사례로 내비게이션, 스크린골프, 스마트폰 메신저 등을 제시한 상태다.

5월 15일 벤처·창업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을 발표하면서 창업·초기 기업의 자금조달을 ‘융자 중심에서 투자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지만 과거 정부의 정책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초기 중소기업의 주식을 거래하는 코넥스(KONEX) 시장을 신설했지만 코스닥조차 외면받는 상황이라 시장의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최근 들어 증세와 복지, 전월세 임대료 폭등 등의 이슈가 불거지면서 ‘창조경제’ 테마는 더 쑥 들어간 분위기다. 여의도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철수의 새정치, 김정은의 속마음과 함께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본인도 모르는 세 가지’라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텅빈 공공기관장
6월 11일 청와대는 산하기관과의 내부 업무연락방(인트라넷)에 “청와대 지시로 기관장 선임절차(서류심사, 면접심사)를 잠정 중단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띄웠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달리 개국공신이 적었다. 측근들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앞장서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박심(朴心)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 틈을 관료들이 파고들었다. 

8월 16일 철도노조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코레일 사장 선임 절차를 비판하며 철도 민영화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8월 16일 철도노조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코레일 사장 선임 절차를 비판하며 철도 민영화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 대통령이 ‘전문성 있고 국정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로 구성해 달라’고 언급한 것이 배경이 됐다. KB금융·농협금융지주 회장 등 민간 금융회사를 재무관료(일명 모피아)들이 먼저 꿰찼다. 여신금융협회장, 수협회장, 국제금융센터장 등도 관료들이 중용됐다. 국토부 산하 공기업 및 공공기관 3곳은 전부 관료 출신으로 채워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등이었다. 수자원공사, 코레일, 도로공사 등의 새 공공기관장에도 관료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해도 너무한다”는 반발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급기야 6월 11일 모든 인선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한국거래소, 신용보증기금 등 진행 중이던 공공기관장 선임은 ‘올스톱’ 됐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해도 좀 너무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장 자리가 오랫동안 공석이 되면서 공공기관의 업무공백 우려도 나온다. 의사결정권자가 없다보니 새로운 사업을 펴기가 힘들어 계속사업만 관리 중인 상태다. 또 현 사장이 교체될지 안 될지 모르다보니 마냥 눈치만 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국토부는 코레일 사장 선임과정에 개입했다가 논란을 키웠다. 국토부 고위 관료가 국토부 출신 관료를 거명하며, ‘정부 정책(철도민영화)을 가장 잘 이해하는 분’이라며 임원추천위원회 위원들에게 전화를 돌린 게 문제였다. 당연히 해당 인사는 3배수에 들었다. 논란이 커지자 결국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8월 21일 전체회의에서 “코레일 사장 공모는 원점에서 재공모해 달라”고 결정했다. 세종시의 한 관료는 “전체적으로 청와대가 시끄러운 것은 싫어하는 느낌이라 가능하면 문제를 안 일으키는 방향으로 처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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