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아들’에 대한 엄마의 환상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우리나라에서 특히 어머니와 아들은 각별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아이를 10개월 동안 잉태해 낳기에 자녀가 자신의 분신 같은 느낌이 강하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못생긴 아들이라도 어머니의 눈에는 세상 그 어느 사람보다 잘 생기고 멋진 아들이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여자친구라도 생기면 엄마가 가장 먼저 심란해진다. 급기야 엄마는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전화해 당장 만나지 말라고 다짐을 받는다. 부모를 찾아가 한바탕 소란을 벌이기도 한다.

엄마들은 아들을 자신의 이상형으로 키우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고 엄마 말 잘 듣는 아들일수록 더하다. 엄마들은 대부분 장남에 대한 기대가 크고 환상도 많다. 남편의 못난 부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아들로써 지우며 ‘아빠보다 더 멋진 남자’로 키우려고 한다.

일러스트·만화그리는 목각인형

일러스트·만화그리는 목각인형

그러니 남들도 다 인정하는 잘난 아들을 둔 엄마들의 경우는 어떻겠는가. 재수학원에서 만난 박모군(20)의 어머니도 그렇다고 했다. 박군은 두 살 아래 남동생이 있는 장남인데, 잘 생기고 어려서부터 영재 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에도 뛰어났다. 남동생 또한 잘 생기고 공부도 곧잘 하지만 여러 모로 엄마의 눈에는 형만 못했다. 그러다보니 엄마는 늘 큰아들 박군에게 해바라기처럼 관심이 쏠렸고, 큰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그런데 박군은 현재 재수 중이다. 재수를 하지만 게임을 하며 밤샘하기가 일쑤여서 성적은 오르지 않고 있다. 아들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던 어머니의 절망감은 당사자인 박군보다 더하다.

박군의 별명은 ‘테리우스’였다. 부모는 키도 크지 않고 수수하게 생겼는데 박군은 키가 182㎝에 날씬하다. 다리도 길어 모델 같은 몸매의 소유자다. 약간 길게 기른 곱슬머리가 잘 생긴 뽀얀 얼굴과 잘 어울려 만화 ‘캔디’에 나오는 테리우스 분위기를 풍긴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박군 어머니는 테리우스처럼 생긴 아들을 둔 덕분에 모든 엄마들의 시기와 선망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아들이 재수하면서 엄마 또한 재수생보다 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군은 7살 때부터 아빠가 옆에 앉혀놓고 하루 4시간씩 수학문제를 풀게 했다. 하기 싫다고 하면 아빠는 매를 들었다. 울면서 문제를 푼 날도 부지기수였다. 박군은 아빠와 비록 사이는 안 좋았지만 별로 불만은 없었고 아빠 말도 잘 따랐다. 박군은 중학교 때 수학·과학 올림피아드대회에서 수상도 했다. 중학교까지 한마디로 승승장구였다. 엄마는 큰아들이 과학고는 당연히 붙을 줄 알았는데 그만 떨어졌다. 그때 어머니는 워낙 실력 있는 아이라 일반계 고등학교에 가서도 잘할 거라 위안을 했고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박군은 고 2학년 1학기까지 수학·과학은 전교 1등을 계속했다. 모의고사도 수학·과학은 전국 1%에 드는 성적이었다. 엄마는 희망에 들떴다. 큰아들만 생각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과학인재들을 선발한다는 연세대 융합공학부에 들어가 박사까지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하겠다는 꿈을 들려주었다. 엄마는 아들의 그 꿈을 들으면서 그런 꿈을 가진 아들이 대견했고 행복했다.

엄마는 맞벌이를 하며 아이 미래를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아이에게 투자하는 모든 것이 아깝지 않았다. 엄마는 옷 한 벌 못해 입고 살았지만 아들에게는 무엇이든 최고로 비싼 것만 사줬다. 심지어 빵도 가장 비싼 빵만 사주었다. 아들 대학등록금도 어릴 때부터 저축을 하기 시작해 마련해둘 정도였다. 엄마에게는 아들이 인생의 즐거움이었다. 아들을 키우면서 점차 남편에게는 관심이 없어졌다. 남편 없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오로지 공부 잘하고 잘생긴 아들을 바라보며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20년을 살아왔는데 아들이 공부를 멀리하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각별한 아들’에 대한 엄마의 환상

박군은 고 2학년 2학기 때부터 ‘부모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던’ 아들이 아니었다. 잘생긴 아들은 어느날 갑자기 전혀 다른 아이로 다가왔다. 게임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들 놀 때 공부만 하던 아이가 뒤늦게 노는 재미에 빠진 것이다. 뒤늦게 방황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박군은 학교 근처 PC방에서 학원도 다 빼먹고 게임에 빠져들었다. 밤에는 축구에 빠져서 프리미어리그를 본다며 거의 밤을 샜다. 모든 욕망을 억누르며 착한 아들로 살던 박군에게 뒤늦게 사춘기의 방황이 덮친 것이다. 학교에서는 매일 잠만 자고 방과 후엔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해 부모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게임 중독으로 몰골도 초췌해져갔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자 성적이 추락했고, 급우들조차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 고3이 되어서는 그렇게 자신 있어 하던 수학·과학이 40점도 나오질 않았다. 결국 대학은 모두 떨어졌고 재수의 길로 들어섰다. 엄마는 억장이 무너졌다. 박군은 “재수해도 소용없을 것 같다. 공부할 의미를 찾지 못했고, 이제 꿈도 없다”고 실토한다. “부모님은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도 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저는 늘 고개만 끄덕여요. 저 자신이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스스로도 실망하고 있어요. 하지만 게임을 끊지 못하겠어요.”

엄마는 아들의 망가진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마치 ‘신앙’ 같던 아들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예전의 아들 모습으로 돌아와줄 거라는 희망을 놓을 수 없다고 한다. 남들은 다 끝났다고 생각해도 엄마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들로 인해 실망하고 지친 모성이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박군 동생은 반에서 5등으로 웬만큼 공부를 하는 아이였지만 늘 ‘잘난’ 형한테 치였다. 형처럼 미남형에 성격도 좋지만 부모는 늘 형에게만 관심을 주었다. 댄스부에서 춤도 잘춰 학교 행사 때는 무대에서 인기를 독차지했다. 집밖에서 인기가 있어도 집에서는 인정받지 못하자 방황도 하고 가출을 하기도 했다. 형 때문에 늘 상처받았던 동생도 지금의 형이 너무 안타깝다고 한다. 어머니는 “재수를 해도 안 되면 삼수를 하면 된다”면서 아직도 아들에 대한 환상과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테리우스의 꿈은 게임 중독으로 날아갔지만 어쩌면 엄마가 꺾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엄마의 지나친 관심은 자녀에게 때로 과잉보호로 느껴지고 이는 ‘부담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잉보호는 또 성장을 해도 부모 품을 못떠나는 캥거루족이나 마마보이를 낳는다. 아직도 엄마의 행복이 자녀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 아닐까. 자녀의 행복이 엄마의 행복일 수는 있을 테지만 엄마의 행복이 자녀의 행복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영국문화원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조사했더니 ‘mother’가 1위로 뽑혔다고 한다. 두 번째는 ‘passion’이었고, 세 번째는 ‘smile’, 네 번째는 ‘love’가 차지했다. 영국문화원에서 2004년도에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 비영어권 102개국 4만여명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70개 고르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라고 한다. 아버지 ‘father’는 70위 등수 내에도 들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자녀교육을 엄마가 전담하고 아빠가 겉돌다시피 하면서 요즘은 가정에서 자녀와 언성을 높이는 쪽은 아빠보다 엄마가 더 많은 것 같다. 달리 말하자면 아빠의 부성애가 자녀들에게 소외당해 울고 있다면 어머니의 모성애는 자녀들에게 지치고 더러는 배신감에 울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엄마’가 1위에 꼽힐 수 있을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