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아까운 책

프랑스혁명 속 고뇌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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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프랑스는 이상적인 국가다. 불의에 항거하고 잘못된 것을 시정하게 만드는 시민의 힘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런데 과연 프랑스혁명이 만들어낸 프랑스는 우리가 좇아야 할 대상인 것일까.

<소설 프랑스혁명>1~6 | 사토 겐이치 지음 |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각권 1만4000원

<소설 프랑스혁명>1~6 | 사토 겐이치 지음 |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각권 1만4000원

지난해 <소설 프랑스혁명> 출간 기념으로 저자인 사토 겐이치가 내한했을 때 대선과 맞물려 여느 때보다도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인지 저자에 대한 언론 인터뷰는 소설가가 아닌 정치학자에 대한 질문처럼 보이는 게 많았다. 한 기자가 “프랑스혁명이 성공했다고 보는가”라고 묻자 저자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혁명가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도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패한 혁명”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발언은 더욱 신선했다. “우리는 민주주의 이후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는 민주주의 이후를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현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가 짧은 우리 입장에서는 민주주의 다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든, 그 이후의 가치를 생각하든 간에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인 프랑스혁명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소설 프랑스혁명>은 소설이지만 프랑스혁명을 접하는 데에는 더 없이 좋은 책이다. 삼부회 소집부터 국민의회 창설, 바스티유 함락, 루이 16세의 도주와 처형, 로베스피에르의 집권과 몰락에 이르는 과정이 마치 역사책을 보는 것처럼 일목요연하게 독자들 눈앞에 정리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소설이 될 수 없다. 사토 겐이치는 팩트 80에 20의 허구를 섞었다고 한다. <소설 프랑스혁명>의 백미는 바로 허구의 ‘20’이다.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20’이 프랑스혁명을 위대하지만 따분한 사건에서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바꾸는 것이다. 나오키 상을 수상한 저력이 있는 대중소설가답게 저자는 역사적 사건을 흥미롭게 엮어내는 데 뛰어난 솜씨를 보인다.

사토 겐이치의 허구는 단순히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한 장치만은 아니다. 저자는 문헌을 연구하고 직접 사건 현장을 답사하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개연성 있는 허구’를 그려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혁명 속의 인물들을 이해하고 다시 프랑스혁명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개혁군주를 자처한 루이 16세의 심리. 영웅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평범한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바스티유 함락의 영웅 데물랭. 혁명의 완성과 민중의 안녕을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희생했던 ‘부패하지 않는 독재자’ 로베스피에르. 역사책에서는 평면적인 사건의 연속에 불과한 프랑스혁명은 소설을 통해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들이 대결하는 무대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독자들은 프랑스혁명이 어떻게 프랑스인들에게 각인되고 영광스러운 역사로 공유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역사책에 나와 있는 것을 외우는 것과 프랑스혁명을 아는 것은 다르다. 프랑스혁명이 아직도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프랑스혁명이 프랑스의 사회적 유산으로서 지속적으로 보존되고 상속되어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프랑스를 지탱하는 주춧돌인 셈이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3·1절을 ‘삼점일절’로 읽고 6·25를 북침으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일각에서는 5·16은 혁명이고 5·18은 폭동이라는 왜곡된 역사를 퍼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질곡이 많았던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충분히 상속받을 만한 유산은 있다. 그러나 그 유산이 제대로 평가·공유되지 못하면서 사회의 통합이 흔들리고 분열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넘어 그 이후를 준비하려면 우리의 유산부터 다시 돌아보고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프랑스혁명을 넘기 위해서는 말이다.

‘내가 만든 아까운 책’은 출판사 편집자들이 꾸미는 지면입니다. 공들여 만들었지만 주목받지 못한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홍성광 <한길사 인문팀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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