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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이 된 정부주도의 에너지자립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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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600곳 조성 목표에서 40개로 줄여… “주민 의견수렴 않고 단기성과 집착이 실패 원인”

일부 원전의 가동 중지로 블랙아웃(대정전) 사태가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에너지 자립마을을 표방하며 전국에 조성하려고 했던 저탄소 녹색마을 조성사업이 대폭 축소된 채 운영되고 있다.

정부가 원자력·화력 등 중앙공급식 전력을 대체할 대체에너지를 개발·활용한다는 목표 아래 에너지 자립마을 조성을 추진했지만 지금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에너지 자립마을 조성사업이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1월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6차 녹색성장위원회 보고대회를 주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1월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6차 녹색성장위원회 보고대회를 주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

녹색마을 조성사업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8·15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발전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정권 초기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강조한 만큼 각 부처들은 경쟁적으로 ‘녹색성장’과 관련한 정책들을 입안·추진했다. 에너지 자립마을로 일컬어지는 저탄소 녹색마을 조성사업도 이때부터 계획됐다. 정부 부처들은 해외 성공사례를 보고 우리나라도 그렇게 하면 되겠다고 판단해 4개 중앙부처가 녹색마을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들었다.

해외 사례는 독일의 윤데 마을이었다. 윤데 마을은 독일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에는 200가구 7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은 바이오에너지를 이용해 화석연료의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였을 뿐만 아니라 남는 전력을 판매해 수익을 올렸다. 윤데 마을은 농사에서 발생한 밀·옥수수·해바라기 등의 건초와 가축분뇨 등을 발효하여 만든 메탄가스를 연료로 2005년에 바이오매스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했다. 이 발전소에서는 연 5000㎿h를 생산했으며, 소비전력 2000㎿h 이외에 나머지는 외부에 판매했다.

독일 윤데 마을 바이오에너지 재생 벤치마킹
이를 벤치마킹해 환경부는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한 도시형 녹색마을, 농식품부는 가축분뇨를 활용한 농촌형 녹색마을, 지자체를 관할하는 행안부는 도·농복합형 녹색마을, 산림청은 목재를 이용한 산촌형 녹색마을을 조성하겠다고 달려들었다. 정부는 2009년 7월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녹색성장위원회에서 ‘폐자원 및 바이오매스 에너지 대책’을 수립해 농촌과 소도시를 중심으로 유형별 저탄소 녹색마을을 조성해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당시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600개의 녹색마을 조성을 목표로 세웠다. 정부는 우선 2010∼2012년 동안 10개의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일은 정부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선정된 마을은 6개에 그쳤다. 이마저도 경북 봉화군 서벽리 마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업 추진이 부진하다.

당초 시범마을로 선정됐던 충남 공주시 월암리 마을과 광주 남구 승촌마을은 주민들의 반대로 충남 공주시 금대리와 광주 광산구 망월마을로 대상지가 바뀌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4개 부처에서 주관하던 녹색마을 사업을 정리하고, 올해부터는 환경부에서만 담당토록 했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40개의 녹색마을을 추가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에너지 자립형 녹색마을 사업이 당초 600개에서 40개로 줄어든 것이다.

해외에서 성공한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이 우리나라에서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밀어붙인 정부 주도형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적 성공사례로 인용되고 있는 독일 윤데 마을의 경우 조성계획부터 에너지 자립까지는 7년이 걸렸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한 시범사업 기간은 2년으로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최인수 박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후보지 공모 후 2∼3주 만에 공모서류를 해당 마을이 제출해야 했다”며 “이렇게 짧은 시간에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것이 불가능했고, 때문에 후보지로 선정된 이후에도 주민 갈등이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지자체는 국비를 지원받기 위해 마을주민들의 동의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황에서 공모를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한 개 마을을 조성하는 총사업비는 50억∼60억원이며, 이 중 정부가 절반 이상을 지원했다. 지난 2011년 9월에는 사업 추진을 둘러싼 갈등으로 마을 이장이 자살하기도 했다. 시범사업 지역으로 충남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 마을이 선정됐으나, 행정소송 등 마을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웃 마을인 금대리로 옮기면서 이 같은 사태를 불렀다.

민간 주도 일부 에너지자립마을 ‘성공적 평가’
폐자원 및 바이오매스 에너지화 사업은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주민들 간에 찬반 입장이 뚜렷이 갈린다. 실제로 음식물쓰레기와 가축분뇨를 운반하고, 이를 에너지로 만들기 위해 소화하는 과정에서 악취가 발생하는 등 주민들이 고통을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다.

[포커스]계륵이 된 정부주도의 에너지자립마을

4개 정부기관이 녹색마을 조성 시범사업으로 성공했다는 6개 마을도 과연 에너지 자립마을이라는 취지에 맞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부가 녹색마을로 조성한 광주 광산구 망월마을의 경우 에너지 연료를 공급하는 농가는 두 농가뿐이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두 농가의 축사에서 나오는 가축분뇨를 에너지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외국의 사례와는 거리가 멀다. 안행부(과거 행안부)의 소관인 충남 공주시 금대리는 원래 바이오매스로부터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주민 반발로 철회했다. 대신 지금은 지열 등을 활용한 시설원예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주관하고 있는 전북 완주군 덕암마을도 바이오매스 에너지를 포기하면서 녹색마을센터와 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관광 상품화로 사업 내용이 변질됐다.

그나마 산림청에서 주관하고 있는 경북 봉화군 서벽리, 강원 화천군 느릅마을은 형편이 낫다. 산악지역에 있는 두 마을은 목재펠릿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목재펠릿이란 벌목으로 생산된 목재나 부산물을 톱밥으로 분쇄한 다음 압축하여 일정한 크기로 생산한 청정연료다. 하지만 이 두 지역도 목재펠릿을 자급자족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민간 주도의 일부 에너지 자립마을은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전북 부안군 등용마을·화정마을, 전북 임실군 중금마을, 경남 산청군 갈전마을 등이다. 이들 마을은 대부분 시민단체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녹색연합 출신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진정한 에너지 자립마을은 마을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합의해서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중앙정부는 에너지 자립마을과 관련한 가이드라인과 인증을 해주고, 마을에 없는 기술·인력 등을 제공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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