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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정세가 끝없이 불안한 이유는 종교 사이의 대립 때문일까.

“만약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기자를 인도한 양창식 중동평화이니셔티브(Middle East Peace Initiative·이하 MEPI) 회장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곳이 그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황금사원. 동 예루살렘의 성전(聖殿)언덕에 위치한 사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곳을 둘러싼 종교세력간 ‘갈등’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유대교나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교에서도 성지로 여길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구약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여호와’에 바치려 했던 장소가 이곳이다. 이슬람교 코란에도 아브라함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가 바치려 했던 것은 이스마엘이었다. 황금사원과 바로 옆에 있는 알아크사 사원이 이슬람교도의 입장에서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의 인도를 받아 승천여행을 떠난 장소다. 이슬람 쪽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메디니와 함게 ‘죽기 전에 방문해야 하는 세계 3대 성지’로 이곳으로 꼽고 있다.

동예루살렘 성전언덕에 위치한 황금사원과 알 아크사 사원(사진 왼쪽 뒷쪽 건물).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 이곳을 성지로 삼고 있기 때문에 긴장의 씨앗이 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동예루살렘 성전언덕에 위치한 황금사원과 알 아크사 사원(사진 왼쪽 뒷쪽 건물).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 이곳을 성지로 삼고 있기 때문에 긴장의 씨앗이 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황금사원이 들어선 자리는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 제2성전’이 있던 곳이다. 로마의 케이사르가 그 성전을 부쉈고, 그 후 수백년간 방치되었다. 현재의 사원은 638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오마르 칼리프가 지었다. 사원 벽에 깨알처럼 적힌 글자들은 코란의 문구다. 사원 바로 밖에는 통곡의 벽이 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벽에 대고 통성기도를 하고 있다. ‘통곡의 벽’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삼엄한 검문검색을 거친 후에야 입장이 가능하다. 유대인들은 황금사원이 위치한 어딘가에 지성소, 즉 하나님이 임하셨던 장소가 있었다고 믿는다. 자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현재 사원이 있는 곳 근처다. 유대인들은 그곳이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에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고 믿는다. 오직 대사제장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말하자면 이곳은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라는 세계 3대 종교의 발원지인 셈이다.

중동정세가 끝없이 불안한 이유는 역시 이들 종교 사이의 대립 때문일까. “새로 이스라엘에 유입된 사람들, 근본주의적 시오니스트들의 태도가 문제다. 이들은 자기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땅’을 되찾기를 원한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만난 무스타파 바쿠티 박사의 말이다. 그는 현재 파타와 하마스에 이은 제3정당이자 정치운동단체인 ‘팔레스타인 민족 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다.

긴장의 중심지, 예루살렘 성전언덕
실제 유혈충돌이 벌어진 것은 지난 2000년이다.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샤론 리쿠드당 대표가 이스라엘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알 아크사 사원에 나타나 일장 연설을 했다. 강경 시온주의자였지만 명분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알 아크사 사원을 이스라엘 경찰과 군대가 에워쌌다. 흥분한 몇몇 사람들이 돌을 던지자 이스라엘 군은 발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13명이 사망했고 200여명이 부상했다. 2차 ‘인티파타’(민중항쟁)의 시작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국 이곳을 탈환하는 것이 최종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에서 만난 이슬람 율법 최고지도자 알 카림 알 카사네 박사의 말이다.

그렇다고 황금사원 일대가 항상 갈등의 현장은 아니었다. 이슬람교, 유대교뿐 아니라 그리스정교, 러시아정교 등 대략 6개의 종교가 서로 어울려 살았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1967년 벌어진 6일 전쟁 이전까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모여들어 나라를 만들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지난 2003년 이후 MEPI 활동을 이끌어온 양창식 회장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 절박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각자가 생존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압도적 우위에 선 쪽은 이스라엘이다.
5월 18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방문했다. “가장 큰 문제는 왜곡된 정보가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무스타파 박사의 말이다. 그는 자신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넬슨 만델라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에 맞섰던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비유했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의해 이 지역에 두 개의 정부(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가 성립된 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구 경계선에 600개의 초소를 설치했다.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분리장벽이다. 무스타파 박사는 이 분리장벽을 과거 유대인 지역을 게토로 만든 나치와 동서베를린 장벽에서 빌려온 아이디어라고 주장했다. 

총연장 850㎞에 달하는 이 분리장벽은 7~9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이다. 장벽 사이의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샅샅이 압수수색을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측이 일방적으로 친 장벽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어떤 노동자들은 장벽 밖의 일터에 출근하기 위해 새벽 2시에 일어나 집에서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의 ‘명백한 국제인권법 위반’ 결정에도 이스라엘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이스라엘 쪽의 장벽 설치 논리는 ‘보안’이다. 자살 폭탄테러로부터 자국민들을 지킨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무스타파는 “이 벽에는 이스라엘 사람도 갇혀 있다”고 덧붙였다. 역시 라말라에서 만난 자말지마 장벽반대운동 의장은 “우리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스타파 박사는 이스라엘 측이 작성한 ‘이스라엘의 미래 2020’ 문건을 보면 결국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북부 갈릴리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인구를 52%에서 38%로 줄이고,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을 북부와 중앙, 남부로 나눠 관리를 하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현재의 팔레스타인 마을의 50%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세 번째로 추진하는 것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완전한 수도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는 텔아비브에 국방부와 주요국 대사관들이 모여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인구를 32%에서 12%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디로 가겠는가. 결국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인종청소’다.” 그는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자행된 무자비한 탄압·학살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희생자는 주로 무고한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이런 ‘맥락’을 무시한 채 “‘자살 폭탄테러’ 공격을 일삼는 종교적 광신도”라는 것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만들어낸 팔레스타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라는 것이다.

각 나라 말로 모두 ‘평화’라는 뜻의 “피스, 샬롬, 앗살라이알라이쿰” 구호를 외치며 예루살렘에서 행진하는 중동평화이니셔티브(MEPI) 참가자들. MEPI는 각 대륙에서 온 종교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 정용인 기자

각 나라 말로 모두 ‘평화’라는 뜻의 “피스, 샬롬, 앗살라이알라이쿰” 구호를 외치며 예루살렘에서 행진하는 중동평화이니셔티브(MEPI) 참가자들. MEPI는 각 대륙에서 온 종교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 정용인 기자

팔레스타인을 찢어놓은 분리장벽
무스타파의 주장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확인이 필요하다. 첫째, 이것은 일방의 입장이다. 이스라엘 측의 입장을 보다 면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둘째, 그가 제시한 ‘이스라엘의 미래2020’이라는 문서는 얼마나 공신력이 있는 문서일까. 셋째, 무스타파는 현재 서안자치구의 파타정부 쪽 입장에 서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분쟁이 집중되고 있는 가자지구는 보다 근본주의적 입장으로 알려진 하마스가 집권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비난하는 ‘자살 폭탄테러’ 대부분은 파타 쪽보다 강경한 입장을 가진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주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현재 가자지구를 완전 봉쇄하고 출입을 막고 있다. 기자는 그에게 물었다.

가자지구의 하마스처럼 보다 강경한 입장에 선 사람들도 있다.
“이스라엘은 과격파가 대부분이고 우리처럼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소수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 상황이다. 이쪽에서 강경한 입장은 소수다.”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하고 있다. 나는 하마스 사람들을 만나 비폭력 노선을 갖도록 설득한 경험이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도 비폭력 직접행동이 우리의 정당함을 보여주는 더 좋은 방법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반대로 그쪽에서는 당신들이 타협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폭력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남자답지 못하다, 계집애 같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후 많이 변했다. 우리가 군인 앞에서 용감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 나는 여덟 번 체포되었고, 여섯 번 다쳤다. 그 중 두 번은 총격을 당했다. 가자에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해병대 진압을 굴복시킨 사건이 있었다. 그 후 그쪽에서도 비폭력에 대한 생각으로 조금씩 바꾸는 것 같다.”

이스라엘 쪽이 스스로 벽을 허물 가능성이 있나.
“그들은 보안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보안이 목적이 아니다. 나는 벽이 없어져야 평화가 온다고 믿는다. 장벽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분리해놓은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여러 개로 찢어놓은 것이다. 언젠가 벽이 무너지는 날이 올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다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 끝없이 늘어선 이스라엘 측 검문소 입구의 차량 행렬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분리장벽에는 이름 모를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정치구호와 이스라엘을 풍자하는 낙서가 가득했다. 해법은 있을까. 길게 늘어선 장벽마냥 중동평화는 요원해 보였다.

2003년부터 시작된 MEPI의 종교간 대화노력

“피스, 샬롬, 앗살라이알라이쿰.” 5월 18일 토요일 아침. 이슬람교의 안식일은 끝났고, 금요일 일몰과 함께 시작되는 유대인의 안식일은 이날 해질 때까지다. 안식일이 끝난 이슬람 쪽 상인들이 하나 둘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약 300명의 종교지도자들이 황금사원 인근 예루살렘의 구시가지에서 평화를 요구하는 시위행진을 벌이면서 단순한 가사로 된 노래를 불렀다. 피스와 샬롬, 앗살라이알라이쿰은 모두 같은 뜻, 평화다. MEPI는 2003년부터 지난 10년간 이곳에서 갈등을 종교간 대화를 통해 풀자는 운동을 벌여 왔다. 기독교 목사, 가톨릭 신부, 이슬람교의 사제인 이맘, 소수종파인 드루이드교 사제까지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모였다.

한국에서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이 MEPI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토마스 월시 천주평화연합(UPF) 회장은 “정부간의 외교와는 별도로 종교와 같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평화와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동지역의 평화에서 더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예루살렘에서는 MEPI 주도로 각계 종교지도자를 비롯해 2만명이 참여한 평화대행진 행사가 열렸다. 그 후 MEPI는 가자지구, 이스라엘 국회 등에서 종교의 핵심 가치인 ‘평화’를 매개로 행사들을 진행해 왔다. 5월 18일 시가행진 이외에도 MEPI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부, 민간지도자를 초청한 콘퍼런스들을 개최했다. 여전히 남는 의문은 실효성이다.

평화와 신뢰구축에서 초종교운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지난 10년 이들이 벌여온 평화교육과 종교간 이해 활동의 성과는 작지 않다. 하지만 이곳의 상황은 그 성과를 앞질러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월시 회장은 “과거 우리의 활동에 대해 양측,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의심을 받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어느 한 쪽 편을 드는 극단파가 아니라 평화의 이름으로 중재 역할을 하려 하는 것을 양측 모두 잘 알고 있다”며 “비록 현실이 잘못되어 가더라도 결국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평화를 이야기하고 다른 NGO와 연대해 더 영향력을 높여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는 이번 행사에 대해 “하나님의 눈에는 피부색의 차이가 없고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과 문화, 국경,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하나님 아래 인류를 한 가족으로 만드는 대역사”라며 “위하는 삶, 참 사랑의 삶으로 새로운 평화세계를 반드시 창건해 나갈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팔레스타인 라마다, 요르단 암만/정용인 기자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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