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송전탑 건설 갈등 배경엔 ‘전촉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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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사업자 사업 강행 보장하는 ‘법 위의 법’… 전국 100여곳 송·변전시설 건설 싸고 마찰 중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국전력공사(한전)가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면서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와 북경남변전소를 잇는 송전선로 중 경남 밀양과 경북 청도 통과구간에서 지역주민들은 노선 변경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한전 측은 기존 노선을 고수하며 공사 강행으로 대응한 것이다. 하지만 송전선로를 둘러싼 갈등은 밀양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전 등 전력사업자의 송·변전설비 건설계획이 나올 때마다 지역주민의 반발이 그치지 않았던 배경에는 전력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전촉법) 문제가 있었다.

충남 당진에 있는 당진화력발전소는 400만㎾의 전력을 생산해 공급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화력발전 시설이다. 당진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765㎸와 345㎸ 두 종류의 송전선을 타고 신서산변전소와 신당진변전소로 보내진다. 이 때문에 당진시에만 500기가 넘는 송전탑이 시 전체를 채우고 있다. 특히 신서산변전소로 연결되는 765㎸ 송전선로는 설치 당시부터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 바 있다.

한국전력이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히자 경남 밀양시 부북면 주민들이 공권력 투입에 대비해 마을입구를 막고 농성을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한국전력이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히자 경남 밀양시 부북면 주민들이 공권력 투입에 대비해 마을입구를 막고 농성을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밀양과 당진의 사례처럼 765㎸ 송전선로를 두고 주민들의 반발이 더 극심한 이유는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건강에 유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전이 운용하고 있는 전국의 송전선로 중 96%는 154㎸와 345㎸로 765㎸ 송전선은 전체의 2.6%만을 차지한다. 한전은 765㎸의 더 높은 전압으로 송전선로를 건설할 경우 송전효율이 높아지고 선로 건설비용도 줄일 수 있다며,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밝혀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송전탑이 건설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건강상의 피해를 호소했다. 당진환경운동연합의 유종준 사무국장은 “전기에 민간한 사람들은 습도가 높은 날 전류를 느낀다는 증언을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며 “가축들의 기형과 건강상의 문제도 있지만 이러한 것들과 전자파의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765kV 송전선로 전자파 유해 지적 계속 나와
765㎸ 송전선을 지지하는 송전탑의 경우 기존 건설된 345㎸ 송전탑과 비교해 높이는 약 2배, 중량은 6배에 이른다. 주민들이 태풍 등 자연재해나 건설과정에서의 문제로 일어날 사고를 염려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전촉법에는 송전탑·송전선로로부터 주택이나 건물이 얼마나 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인 전기설비기술기준에 따라 전압별로 10~20m 떨어지기만 하면 노선 결정에 문제가 없다. 사업 전 거쳐야 하는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에도 송전선로와 주택 간의 거리를 다루는 항목은 포함돼 있지 않다.

문제는 주민들의 반발이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충남 천안시 동면 역시 과거의 당진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전이 충남 서해안 지역에 있는 당진·태안·보령 화력발전소의 전력을 중부권으로 공급하는 765㎸ 신중부변전소 입지로 이곳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이미 154㎸급 변전소가 건설돼 30여기의 철탑이 자리잡고 있는 이 지역에 새로운 변전소가 들어서면 더 많은 송전탑이 세워질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입지 선정을 철회하라는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송·변전시설 건설을 둘러싸고 전기사업자와 지역주민이 마찰을 빚고 있는 지역은 이 밖에도 전국적으로 100곳이 넘는다. 전북 군산의 군산산업단지와 새만금산업단지 간 송전선로 설치 사업 역시 2008년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현재 사업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두 산업단지를 잇는 송전선로가 설치되면 군산시 옥구읍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 총 88기의 철탑이 세워지게 돼 주민들은 거주지역을 피해 새만금농업지구로 노선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장거리 송전선로 신설 ‘제2 밀양사태’ 가능성
송·변전시설 건설계획을 포함해 국가 전체의 중장기적 전력 운용계획을 수립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발전시설을 건설할 때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보낼 송·변전시설 건설계획도 함께 포함되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현행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강원도 삼척에 대규모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지만 신규 발전소 건설계획에 따라와야 할 송·변전시설 건설계획은 빠져 있다. 삼척을 비롯해 강릉 하슬라발전소 등에서 생산될 전력의 상당 부분이 수도권 지역에서 사용될 것을 감안하면 장거리 송전선로 신설이 제2의 밀양 송전탑 건설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실 측은 “새로 건설될 삼척지역 발전소에서 경기도의 신가평변전소로 연결되는 송전선로가 신설될 가능성이 높다”며 “아직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송전선로 설치를 담당할 한전과 관계부처들이 밀양에서의 갈등 때문에 노선 선정에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전이 주민 반대를 무릅쓰고 공사를 강행할 수 있는 근거는 전촉법에 있다. 전촉법은 전원 개발설비 부지로 결정되면 강제수용까지 할 수 있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업의 실시계획만 승인되면 도로법·하천법·자연공원법 등 19개 법률에 규정된 인·허가사항 등에 대해서도 인·허가가 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무리하게 사업을 강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 위의 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09년 사업 시행지역의 주민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는 개정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1978년 이후 기본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밀양 송전탑 사태를 계기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또 전촉법에는 송전선로가 지나는 노선을 결정하는 기준에 관한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현행 전촉법은 다른 사업과 달리 국가나 지자체가 행사하는 토지 수용·사용권을 전원 개발사업자에게 부여하고 있어 사업자가 노선 결정에 대해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노선을 결정한 뒤 주민설명회 등을 통해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민 입장에서는 노선 변경도 쉽지 않다. 실제로 밀양을 지나는 송전선로 노선 선정 후 있었던 2004년의 주민설명회에는 송전선로 인근 주민 중 0.6%인 126명만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소송센터의 우경선 변호사는 “노선을 결정하는 일반적인 원칙은 가장 단거리가 되도록 직선 형태의 노선을 결정하고 예외적으로 우회 노선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공사까지 진행 중이던 노선을 갑자기 변경해 남의 토지에 무단으로 설치한 사례까지 있다”며 사업자의 일방적인 노선 결정을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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