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현대제철 사고

잇단 사망사고는 ‘3고로 공기단축’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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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말 착공이후 중대 재해 계속 발생… 세계 10위권 제철소 무리한 추진 결과인가

지난 5월 15일 오후 12시쯤 충남 당진시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 여느 장례식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화환 몇 개가 늘어서 있지만 문상객은 없다. 문상객을 맞는 음식도 없다. 유족들은 상복도 입지 않았다. 다섯 개의 영정사진이 적막한 빈소를 지켜보고 있다.

장례식장 입구쪽 벤치에 걸터앉은 김수홍씨(가명)는 작업복 차림이었다. 왼쪽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단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닷새 전 새벽 그는 사고현장에 있었다. 영정사진 속 얼굴들은 현장에서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이다. 지난 5월 10일 오전 1시40분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노동자 5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들은 당진제철소 B지구에서 제3전로 보수작업을 하던 현대제철 하청업체 한국내화의 직원들이다. 이들은 전로 내부 내화벽돌 교체작업을 끝낸 뒤 작업에 사용했던 유압 작업대를 철거하기 위해 전로로 내려가다 전로 내부에 차 있던 아르곤 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가스 질식으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5월 10일, 경찰이 사고현장 입구를 지키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가스 질식으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5월 10일, 경찰이 사고현장 입구를 지키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전로는 높이가 12m, 최대 지름이 8m인 항아리 모양 장치다. 쇳물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정이 이 장치에서 이뤄진다. 내화벽돌은 전로가 고온의 쇳물을 견딜 수 있도록 전로 내부에 부착하는 것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기 때문에 주기적인 보수(교체)작업이 필요하다. 전로 1기의 보수 주기는 6개월이다. 당진제철소는 3기의 전로를 보유하고 있다. 제철 공정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면 3기 모두를 정지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전로 보수작업은 통상 2개월에 한 번씩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원칙 무시한 전로 보수작업 화 불러
사고가 발생한 10일은 한국내화가 현대제철과의 계약에 따라 3전로 보수작업을 마치기로 한 날이었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전로 내부에 차 있던 아르곤 가스다. 아르곤 가스는 쇳물의 불순물을 배출하는 데 사용된다. 아르곤 가스는 들이마실 경우 산소 결핍으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내화벽돌 교체작업이 끝나기 전까지는 가스 배관을 연결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는 이 원칙이 무너졌다. 배관작업을 맡은 현대제철 하청업체 신화M&R는 사고가 발생하기 하루 전에 배관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청인 현대제철의 작업지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현대제철은 사고 다음날인 11일 오후 유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에도 내화벽돌을 교체할 때 마무리 단계에서 아르곤 가스 주입 배관을 연결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했다고 시인했다. “다만 가스밸브는 열지 않았다”는 게 현대제철의 해명이다.

노동자들만 몰랐다. 3전로 내화벽돌 교체작업에는 한국내화 노동자 50명이 주야간 2개조로 투입됐다. 그들 중 누구도 가스 배관이 이미 연결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김수홍씨는 말했다. “전로에 가스가 들어간다는 것도 몰랐고 배관작업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가스가 들어간다는 걸 알면 누가 전로에 들어갔겠나. 나 자신은 물론이고 동료들도 못 들어가게 했을 것이다.” 아르곤 가스가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도 드물다. 사전에 안전교육을 받긴 했다. 그러나 아르곤 가스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작업 전에 당연히 고지를 해줘야 하는데 우리는 못 들었다. 이번에 배관이나 가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린 깜짝 놀랐다. ‘언제 죽여도 죽일 사람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전로 안에 5명이 아니라 15명이 있었다면 어쩔 뻔했나.”

전로 보수작업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김씨는 주로 전로 밖에서 내화벽돌을 크기에 맞게 가공하는 일을 했다. 그 중 큰 것은 무게가 40㎏에 달한다. 사망한 이들과 1년 가까이 함께 일했다는 그는 “그동안 가스사고는 없었다. 그러나 벽돌의 중량이 있기 때문에 협착사고(작업자가 기계에 끼여 발생하는 사고)나 충돌사고는 있었다”고 말했다. “‘누가 어디서 떨어졌다더라, 실려갔다더라’는 소문은 듣는다. 하지만 누구도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못한다.” 그가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갖다대며 말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이번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모두 5명이 사망했다. 이번 사고를 더하면 사망자가 10명에 이른다. 다른 업종에 비해 위험요소가 많다는 철강업계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다. 유희종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장은 “플랜트 노동자들 말로는 제철소에서 3년 정도 공사를 하면 통상 3~5건의 산재사망 사건이 일어난다고 한다. 당진제철소에서는 이번 사고를 빼더라도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 동안 다른 곳에서 3년 동안 생길 사고가 다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부터 모두 10명이 사망
사망사고는 다양한 형태로 발생했다. 철골 구조물 해체작업 도중 철 구조물에 깔리는 사고(2012년 9월), 감전 후 추락사(2012년 10월), 작업 발판 설치 중 해상 추락사(2012년 11월), 추락 후 감전사(2012년 11월), 과로사(2012년 3월) 등이다. 사망한 이들은 모두 현대제철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었다. 지난해 11월 9일에는 당진 현대하이스코 공장 신축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협착 재해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계는 이 사고 또한 현대하이스코 공장 신축이 현대제철 고로 3호기 건설과 연동된 작업이라는 점에서 현대제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는 고로 2기와 전로 3기가 있다. 현대제철은 올해 9월 완공을 목표로 2011년 4월부터 고로 3호기 건설을 진행해 왔다. 현대제철은 고로 3기가 모두 가동되면 총 2400만톤의 제강능력을 확보해 세계 10위권 제철소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대제철이 준비단계를 마치고 고로 3호기의 본격적인 건설에 착수한 시점은 2011년 11월이다. 이번 아르곤 가스 질식사고를 포함한 당진제철소 산재사망 사고는 이처럼 현대제철이 고로 3호기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에 발생했다.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가 지난 10일 “3전로 보수공사는 현대제철 당진공장이 올 9월 준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3고로 건설공사와 연계된 공사다. 현대제철은 작년 9월 하청업체들에 공기 단축을 지시했고 이후 사망 등 중대재해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 배경이다.

김정열 금속노조 현대제철지회 노동안전1부장은 이번 사고는 고로 3호기 완공과는 무관하다고 본다. “10일 새벽에 발생한 사고는 기존의 고로 2기와 관련이 있다. 고로 3호기에 필요한 전로 2기는 따로 증설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를 단축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고로에서 나오는 쇳물을 소화해야 하는데 기존에 고로가 세 개 돌아가고 있다가 보수 때문에 두 개만 돌아가고 있으니 (보수작업 기간을) 단축할수록” 회사 입장에서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국내화 직원의 말이다. “포스코는 전로 보수작업에 5.5일이 걸린다. 경험이 있고 숙련도가 높기 때문에 현대제철보다 짧다. 우리는 처음에는 12일씩 걸렸는데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조금씩 줄어들었다. 현대제철은 포스코를 따라잡고 싶었을 것이다. 하루 더 빨리 가동하면 그만큼 매출이 더 나오니까. 공기 단축을 위해 강압적으로 시켰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이번에 사고가 나는 걸 보고 조금만 더 늦췄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3전로 보수작업은 지난 5월 2일부터 사고 당일인 5월 10일까지 8일간으로 예정돼 있었다.

5월 15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A지구 입구에 붙어 있는 ‘안전제일’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 정원식 기자

5월 15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A지구 입구에 붙어 있는 ‘안전제일’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 정원식 기자

행정력·법제 노동자에 안전망 못돼
노동자에게 발생한 산재나 작업 중 발생한 사고는 아니지만 현대제철에서는 최근 기존 6건(사망 10명)의 사고 이외에 다른 사망사고도 있었다. 김정열 부장은 “지난 2월 19일, 하청업체 이사급 임원이 집진기 덕트 청소 상황을 점검하다 12m 높이 수직배관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지난 4월 10일에는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한국내화 직원 한 명이 후진하는 도시락차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다른 사고가 더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구조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는 40명으로 편제된 자체 소방대가 있다. 지난 5월 10일 사고 당시에도 가장 먼저 출동한 건 자체 소방대였다. 소방대는 앰뷸런스를 3대 보유하고 있는데 사망자 4명은 이 앰뷸런스로 후송했고, 다른 1명의 후송은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처럼 당진제철소 내에서 발생한 사고를 노조 차원에서 수습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긴 하지만, 문제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에게 발생한 사고의 경우 사고가 은폐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당진제철소에는 1차·2차·3차 협력업체까지 50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있다. 김 부장은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사고가 발생해도 신고를 잘 하지 않는다. 우리 노조에서 강하게 요구하고 있긴 하지만 잘 안 된다. 

협력업체의 경우 산재가 여러 차례 발생하면 현대제철 계약을 따내는 데 불이익을 받는다”며 “소방대 앰뷸런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사고는 잘 파악이 안 되고, 제보를 받고 가도 막상 본인이 부인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구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장은 “재해가 나도 산재신고를 하게 되면 해당 노동자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지회가 지난 3월 당진공장 사내하청업체 54개 중 27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산재 발생 시 산재처리를 하는 업체는 4곳에 불과했다. 원청·하청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가 이 문제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힘의 불균형을 보완할 수 있는 관련 법제와 정부의 행정력은 노동자들의 안전망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은 위험도가 높은 작업을 외주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은 산재에 대한 책임을 원청이 아니라 하청업체 사업주가 지도록 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29조는 화재·폭발·붕괴·추락 위험이 있는 16개 장소에 국한해 원청의 포괄적 안전관리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원청 사업주가 직접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동안 노동계가 현행법을 고쳐 실제 작업장소에 대한 권한과 정보를 갖고 있는 원청에 1차 책임을 물려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이유다. 정부의 행정력도 미비하다. 13일자 한겨레 보도를 보면,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지난해 9월 이후 발생한 당진제철소 산재사고에 대해 감독을 벌였지만 현대제철에 대한 감독은 한 차례였고 나머지는 모두 하청업체에 대해서만 이뤄졌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현대제철 관계자는 “회사는 이번 일에 대해 사과를 했고, 향후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생각이다. 다만 경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현대제철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진상 규명이 있기 전에는 장례식을 치르지 않을 생각이다. 고 남정민씨의 외삼촌인 인찬호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의 횡포다. 예전에는 노비가 죽으면 멍석에 말아서 버리고 양반집 개가 죽으면 관을 짜서 고이 모신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달라진 게 없다. 위험한 일은 모두 하청에 떠밀고 있는 것 아닌가.”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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