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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절세란 이름의 탈세’ 꼬리 밟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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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탈세 논란이 버긴의 탐사보도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 구글의 모토는 ‘악이 되지 말라’(Don’t be evil)다. 구글의 겉모습은 선하다. 경제위기를 불러놓고도 구제금융을 받아 챙긴 월가의 대마불사 은행과 다르고, 정경유착의 패거리 자본가의 모습도 아니다. 구글의 선한 얼굴이 문제다. 내면에 악마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자랑스럽다고 했던 ‘절세란 이름의 탈세’가 악마다. 이 악마가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조세정의를 조롱하고 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로이터통신의 톰 버긴 기자가 구글 탈세의 약한 고리를 찾아냈다. 버긴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3년간 영국에서 310억 파운드의 매출을 올리고도 법인세를 900만 파운드밖에 내지 않은 스타벅스의 ‘절세란 이름의 탈세’를 4개월에 걸친 추적 끝에 폭로한 바 있다. 이번엔 구글이 이 탐사보도의 불독에 걸렸다.

매트 브리틴 구글 부회장이 지난해 한 행사에서 발언 중이다. | flickr Gulltaggen

매트 브리틴 구글 부회장이 지난해 한 행사에서 발언 중이다. | flickr Gulltaggen

로이터통신 기자가 4개월 추적 탐사보도
구글의 탈세 논란이 버긴의 탐사보도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영국 하원 공공회계위원회는 5월 16일 구글 청문회를 다시 열기로 했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 속앓이를 해온 프랑스와 독일도 이번엔 손보겠다고 나섰다. 다국적기업의 합법을 가장한 역외탈세의 불법성을 입증할 근거가 제시됐다는 점에서 버긴은 지난 4월 조세도피처의 정체를 폭로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비견될 정도다.

우선 구글 탈세의 큰 고리부터 보자. 미 캘리포니아의 마운틴뷰에 본사를 둔 구글의 주수입원은 광고다. 각지의 본부나 지점이 광고영업을 한다. 구글은 법인세가 낮은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유럽본부 ‘구글 아일랜드’를 두고, 영국 등에 지사를 운영한다. 구글은 유럽 지역의 모든 광고 ‘판매’ 책임이 구글 아일랜드에 있고, 지사는 ‘판촉’ 지원만 할 뿐이라고 말한다. 2011년 회계공시에 따르면 더블린의 직원이 200명인 반면, 구글 영국에는 1300명이 근무하고, 이 가운데 720명이 광고 ‘판촉 서비스’를 제공한다. 판매직원보다 판촉직원이 더 많은 셈이다.

각 지사에서 발생한 광고수익은 회계상 구글 아일랜드의 매출로 잡힌다. 지사는 구글 아일랜드에서 판촉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그래서 구글 지사들은 장부상으론 늘 적자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구글 아일랜드는 지사가 모아준 매출의 대부분을 조세도피처 버뮤다에 있는 서류상의 구글인 글로벌 본부로 이전한다.

영국서 180억달러 매출, 세금은 쥐꼬리
이런 방식으로 구글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구글은 2006~2011년 영국에서 180억 달러의 광고매출을 올리고도 세금은 1600만 달러만 냈다. 최소한 납부했어야 할 법인세 30억 달러의 0.5%도 안 낸 것이다. 독일에서도 같은 기간 170억 달러의 광고매출을 기록했지만, 법인세는 2478만 달러에 그쳤다. 2011년 프랑스 국세청은 역외탈세 혐의로 구글에 22억 달러를 추징하기도 했다.

구글의 탈세는 공분을 자아냈다. 지난해 11월 영국 하원의 공공회계위원회(PAC)는 구글 청문회를 열었다.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아동부 장관을 지낸 노동당의 마거릿 호지 PAC 위원장(69)이 북·중부 유럽을 총괄하는 매트 브리틴 구글 부회장(45)을 증인으로 소환해 역외탈세 혐의를 추궁했다. 브리틴은 청문회에서 구글의 영업행위가 ‘합법’인데 왜 이렇게 난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구글 영국에서는) 아무도 (광고를) 팔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말은 런던의 구글 직원은 더블린의 유럽본부를 위해 광고 ‘판촉(marketing)’만 할 뿐 광고 ‘판매(Sales)’는 하지 않으며, 광고주가 영국에 있더라도 광고수익은 아일랜드의 매출로 잡히는 것이고, 따라서 구글 영국은 영국 세법상의 과세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청문회는 구글의 판정승이었다. 의원들은 여야 없이 심증으로 따졌지만, 브리틴의 합법과 논리를 꺾지 못했다. 올 1월 영국 하원 공공정책위원회 청문회에 소환된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은 구글의 유럽본부와 영국 지사의 현장답사를 철저히 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증언했다.

버긴 기자가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냈다. 지난 1일 로이터통신은 구글의 영국 지사가 광고 판촉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광고 판매를 한다는 사실을 다각도로 입증하는 버긴의 탐사보도를 내놓았다. 버긴은 구글의 공시자료를 뒤지고, 구글 영국의 전직 임직원, 영국의 광고주와 광고대행사 관계자를 인터뷰했을 뿐 아니라, 구글 영국의 홈페이지와 네트워킹 서비스 링크트인에 올라온 구글 영국의 직원들 소개까지 샅샅이 훑었다.

구글 영국에서 한때 일했고, 지금은 광고대행사 애딕티브를 운영하는 사이먼 앤드루는 영국의 광고영업이 전적으로 영국 지사 소관이라고 증언했다. 구글과 광고 거래를 하는 마케팅 대행사 스티키아이스의 매니저 앤드루 존슨은 런던의 구글 직원들과 수시로 만나 광고계약을 맺고 있다면서, 자잘한 광고영업은 더블린으로 보내지만, 25만 파운드 이상의 큰 건은 런던의 직원들이 담당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버긴 기자는 4월 중순 구글 영국의 홈페이지에서 올라온 광고 판매 영업직 39명의 구인광고를 또 다른 증거로 제시했다. ‘판매와 회계 관리’ 21명, ‘고객 관리’ 9명의 역할은 광고주를 물색하고 판매 협상과 거래 체결까지 하는 것이었다. 

‘마케팅과 커뮤티케이션’ 일자리는 7명에 불과했다. 링크트인에 등록된 구글 영국 직원 150명은 하나같이 광고주와 만나 판매계약을 체결한다고 했고, 분기 판매 목표를 늘 초과달성한다고 자랑한 이들도 여럿 확인됐다. 브리틴은 판촉만 한다고 했지만 버긴은 영국 지사가 광고 판매 세일즈맨 구인광고를 낸 사실로 맞받아친 것이다.

프랑스, 독일도 ‘구글 손보기’ 나서
판촉과 판매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좁은 회색지대를 통해 세금을 탈루해온 구글의 첨단 탈세기법이 버긴의 탐사보도로 들통이 났다. 마거릿 호지 PAC 위원장은 브리틴의 증언과 버긴의 보도는 확연히 다르다며, 2차 청문회에서 구글과 회계법인의 위증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프랑스 국회 재정위원회의 피에르-알랭 뮈에 부위원장도 청문회를 다시 열 방침이고, 국세청도 2년 전의 실패를 만회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연방 국세청을 두지 않고 있는 독일에선 녹색당 소속 슈벤 지골트 유럽의회 의원이 함부르크주 조세당국에 구글을 고발할 방침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영국 본마우스대 조세전문가 앵그래드 밀러 교수는 광고 판매의 협상과 계약이 실질적으로 영국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구글 영국은 광고매출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독일 등의 지사가 판촉만 하기에 세법상의 고정사업장(permanent establishment)이 아니라는 구글의 탈세 논리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구글의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고 탈루세금에 대한 추징이 이뤄질지는 속단할 수 없다. 세금은 나라마다 정치와 경제, 제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구글과 같은 다국적기업의 세금 탈루 구멍을 막지 않고는 국민경제가 더 이상 지탱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오스트리아 국제조세법연구소의 제프리 오언스는 “지난 20년에 걸친 안정적인 법인세 징수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며 “우리는 티핑포인트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유병선 경향신문 국제부 선임기자 yb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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