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고성, 그리고 와인… 세계자연유산 바하우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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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강의 절경은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빛나는 바하우(Wachau) 계곡이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와인산지는 캄프탈 지역이다. 빈보다 넓은 총 4070ha의 광활한 포도원은 캄프강이 발트피어르텔 고원지대를 관통하면서 생긴 캄프 계곡에 펼쳐져 있다. 강은 갈색이지만 결코 오염된 물이 아니다. 상류의 비옥한 땅과 화강암이 깎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7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이너리인 유르취치-존호프(Jurtschitsch-Sonnhof)를 방문하였다.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랑겐로이스 지역의 유명한 ‘유르취치 와이너리’의 지하 와인셀라.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수도원이었다.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랑겐로이스 지역의 유명한 ‘유르취치 와이너리’의 지하 와인셀라.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수도원이었다.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농장이었던 이곳을 1868년에 소유하게 된 유르취치 가문은 150년 동안 70ha의 포도밭에서 전통과 혁신을 통해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로 성장하였다. 와이너리 오너 아들의 안내로 한때 수도원이 사용하였던 지하 14m의 와인셀라를 구경하였다. 연중 섭씨 11도의 온도와 최적의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연조건이 경이로웠다. 셀라도어에서 시음하면서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1987년에 소개한 혁신적인 와인레이블 ‘그뤼베(Gru˙˙Ve)’였다.

지하 14m의 와인셀라, 한때는 수도원
와인문화에서 초보자가 직면하게 되는 첫 번째 문제는 복잡한 와인예절보다는 우선 와인 이름을 기억하고 발음하는 것일 것이다. 특히 독일어나 프랑스어로 된 긴 와인 이름이 어렵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보르도 와인 ‘탈보(Talbot)’나 최근에 많이 팔리고 있는 캘리포니아 와인 ‘한(Hahn)’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탈보’는 100년 전쟁 당시 보르도에서 싸웠던 영국군 장군의 이름이며 ‘한’은 독일어로 수탉을 의미할 뿐이지만 둘 다 우리에게 발음하기 쉽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마케팅 포지셔닝을 가장 성공적으로 한 것이 바로 그뤼베 와인이다.

우선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를 줄인 ‘Gru˙˙Ve’란 간단한 합성어를 만들어 누구에게나 발음하기 쉽게 하였다. 제품의 포지셔닝 전략은 ‘young & light, fresh & dry Gru˙˙Ve’’로 정하였다. 그뤼베의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1987년부터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화가 크리스티안 루드비히 아터제로 하여금 매년 화려하고도 역동적인 컨템퍼러리 레이블을 그리게 하였다. 그뤼베의 탄생은 오스트리아 와인산업이 추구해 온 모더니즘 운동의 가장 성공한 모델이 되었고, 현재 그뤼베 와인은 부담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화이트와인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적으로 꾸며진 젊은 와인메이커 마르쿠스 후버와 와인을 시음한 셀라도어.

현대적으로 꾸며진 젊은 와인메이커 마르쿠스 후버와 와인을 시음한 셀라도어.

유르취치 와이너리와 함께 혁신을 통해 10년이란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로 성장한 마르쿠스 후버(Markus Huber) 와이너리를 보기 위해 다뉴브강 남쪽에 위치한 트라이젠탈 지역을 찾았다. 이 지역은 721ha의 작은 포도재배 지역이지만 4000년 전 청동기 시대부터 포도를 재배해 온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필자와 만난 적이 있었던 젊은 와인메이커 마르쿠스 후버가 여전히 미소년의 앳된 표정으로 반겼다. 10여년 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포도밭에서 나온 와인은 단지 호이리게(와인 선술집)나 주전자로 판매하는 싸구려였다고 한다. 새로운 셀라를 만들고 농축된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포도수확량을 줄이며 테루아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발효과정 및 오크통 숙성 등 뼈를 깎는 혁신이 10년 만에 최고 품질의 와인을 탄생시켰다. 마케팅 전략으로 소비자가 그의 와인을 기억할 수 있도록 스타일리시한 레이블을 만들고, 마신 후 백 레이블을 쉽게 떼어내어 보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미네랄과 산도가 풍부하면서, 상큼하고 드라이한 그뤼네 벨트리너가 한국, 일본의 음식과 궁합이 맞아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확신하였다.

다뉴브 강의 절경은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빛나는 바하우(Wachau) 계곡이다. 다뉴브 강 북안의 아름다운 강변도시 크렘스에서 멜크까지 36km에 펼쳐진 바하우 계곡은 유람선이나 양쪽 강변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구경할 수 있다. 유람선 관광은 크렘스에서 출발하여 뒤른슈타인, 슈피츠, 멜크까지 서쪽 상류로 가거나 반대로 하류로 가는 코스를 택할 수 있다. 그러나 포도밭과 마을을 둘러보려면 강변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10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멜크수도원의 화려한 도서관.

10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멜크수도원의 화려한 도서관.

바로크건축물의 진수, 멜크수도원
필자는 남쪽 강변도로를 따라 멜크로 향했다. 출발지인 크렘스는 한때 빈에 버금가는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크렘스탈 지역의 와인과 다뉴브 유람의 중심 마을이다. 자동차 통행이 금지된, 돌로 포장된 중세의 고즈넉한 골목을 걸으며 잠시 시간을 망각할 정도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멜크까지 가는 동안 만나는 다뉴브 강변의 연녹색을 띤 계단식 포도밭과 바로크풍의 마을이 펼치는 파노라마는 동화 속에 나온 풍경처럼 아름다웠다. 크렘스를 지나면 강 건너 뒤른슈타인이란 마을이 나타난다. 교회당 너머 산꼭대기에 전설적인 영웅담의 주인공,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유폐되었던 뒤른슈타인 성이 보였다.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던 리처드 1세가 본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귀국하는 도중 1192년 오스트리아의 공작 레오폴드 5세에게 붙잡혀 1193년까지 유폐되었던 곳이다. 왕의 행방을 찾던 음유시인 블롱델이 노래를 불러 그를 구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실제로는 막대한 몸값을 주고 풀려났다고 한다.

북쪽 강변의 와인마을 슈피츠를 지나 멜크에 가까워지면 남쪽 강변 절벽 중세의 요새위에 쇤비엘성이 보인다. 양파 모양의 청동 돔과 연한 황토색의 성채가 아름다움을 뽐냈다. 2002년 6월에 경비행기를 타고 이곳 바카우 계곡을 비행했을 때는 푸른 다뉴브 강이었는데, 이때는 한바탕 소나기 때문인지 흙탕물이어서 아쉬웠다. 바하우계곡 여행의 백미는 멜크에 있는 멜크수도원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이 성이 수도원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멜크수도원에서 바라본 멜크마을, 비가 와서 오른쪽 다뉴브강의 색이 흙빛이다.

멜크수도원에서 바라본 멜크마을, 비가 와서 오른쪽 다뉴브강의 색이 흙빛이다.

멜크수도원은 로마시대의 요새로 출발하여 11세기 합스부르크 이전의 바벤베르크 왕가의 레오폴드 2세 때부터 베네딕트수도원으로 사용하였으며 자치권도 인정받았다. 멜크수도원이 유명한 이유는 오랜 역사와 함께 18세기에 재건된 바로크건축물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도서관에는 10만권이 넘는 장서와 2000점이 넘는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200m나 되는 복도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보물과 아름다운 천장 프레스코화, 예배당 내부 도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로코코양식을 보면서 당시의 세속적인 종교권력과 부패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 필자는 기념품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멜크수도원의 와인들을 보면서 와인의 역사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면 교회는 분명 빛이라고 생각하였다. 중세 대부분의 수도원은 자체적으로 와인을 생산했으며, 새로운 포도 재배와 양조기술이 수도승들에 의해 끊임없이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아랍이 남유럽의 대부분을 통치할 때도 종교적인 이유로 수도원에 대해서는 와인 생산을 허용했다.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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