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돌아온 가왕’ ‘젠틀맨 돌풍’ 가요계 겹경사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싸이는 바깥에서 우리를 즐겁게 하고, 조용필은 안에서 우리를 뿌듯하게 한다.

싸이의 ‘젠틀맨’을 놓고 다시 언론은 애타게 빌보드 1위 가능성을 타진하지만, 12위로 첫 주에 싱글차트에 진입해 다음주 5위로 상승한 것만으로도 싸이는 이미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솔직히 우려했던 단발이나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첫 번째 성공이 두 번째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증후군)에 걸리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4월 25일 미국으로 들어가자마자 취약한 방송활동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적 염원처럼 된 빌보드 넘버원 등극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봄직하다.

지난해 ‘강남스타일’이 글로벌 센세이션을 야기할 때부터 그는 ‘K팝의 진정한 월드스타’를 넘어 마치 ‘국가대표’의 존재로 인식되곤 했다. 국위 선양이니 국격 상승이란 언론의 거창한 수식이 증명한다. 우리의 국가주의적 접근은 참으로 뿌리가 깊다. 사실 싸이로서는 국가적 영웅의 개념이 조금도 없다.

가수 조용필의 19집 앨범 ‘Hello’ 발매기념 기자회견 및 프리미어 쇼케이스가 4월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렸다. ‘가왕’ 조용필이 열창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가수 조용필의 19집 앨범 ‘Hello’ 발매기념 기자회견 및 프리미어 쇼케이스가 4월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렸다. ‘가왕’ 조용필이 열창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자신이 그 사이 국가대표격이 됐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어서 태극기를 들고 ‘코리아’를 연호했지만 그의 뇌리에는 국가를 알리려는 생각보다 이전 곡들인 ‘챔피언’ ‘연예인’ ‘라잇 나우’가 그랬듯 늘 현실을 조롱하고 격렬하게 춤을 춰 날려버린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비주얼을 중시하는 일그러진 풍토에, 학벌과 돈에 찌든 세상이 싫다. 그부터가 ‘새’라는 노래로 데뷔했을 때 괴상한 외모와 뚱뚱한 몸 때문에 ‘엽기가수’로 불린 희생자였다.

누가 봐도 그는 일류가 아니라 이류·삼류이며, 주연 아닌 조연 혹은 엑스트라이고, 1등이 아니라 34등이며, 귀빈은커녕 사회적 루저에 가깝다. 그런데도 예쁜 얼굴에 파워풀한 군무(群舞)로 무장한 가지런한 우리의 케이팝 전사들이나 그 어떤 아이돌 댄스그룹들보다 더 큰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을 싸이는 ‘B급 정서의 승리’라고 규정했다. 미국인들은 자신을 바보 같은 캐릭터 ‘오스틴 파워’로 여긴다는 것이다.

‘젠틀맨’도 ‘강남스타일’의 노선 즉 광대의 은근한 삿대질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막연하게 품고 있는 동양여성의 신비가 아닌 전면적 섹슈얼 터치를 내거는 한편, 어리숙하고 웃기는 동작을 통해 세상에 만연한 허세를 비아냥거린다. 못난 자의 반항과 반격을 숨겨놓았다고 할까.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을 대동단결시키는 댄스음악의 무궁한 흡수력을 알린 것으로 그의 위업이 끝난 게 아니다. 세계 팬들이 싸이 댄스곡에 손뼉을 치는 이유는 난장판 댄스의 재미와 쾌감 한편에 눌리고 외면당하고 있는 자들의 포효를 읽어내기 때문이다. B급 정서의 승리는 소외된 사람들의 수면 위 부상, 그 솟구침을 가리킨다.

B급 정서로 세계 음악팬 사로잡아
욱일승천하는 ‘젠틀맨’의 기세는 아무도 꺾지 못할 것 같았다. 국내 유일의 ‘빌보드 가수’ 아닌가. 그런데 정말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싸이의 ‘젠틀맨’을 내리고 조용필이 10년 만에 낸 신곡 ‘바운스’, 그리고 ‘헬로’가 연속 음원차트 1위에 오른 것이다. 음원과 음반을 유통하는 국내 유니버설 뮤직에 따르면 음반의 선주문이 2만장에 달했고 출시 첫날 다 팔렸다고 한다. “잘돼도 이렇게 잘될지 몰랐다”며 음반사 직원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게다가 조용필은 대담하게도 싸이의 ‘젠틀맨’ 열풍이 한복판인 시점에, 일반적이라면 비켜가는 시점에 떡 하니 신곡을 발표했다. 싸이를 결코 의식하지 않았을 테지만 객관적으로 위험한 타이밍을 마다하지 않는 정면승부에 팬들은 감동했다. 음악은 또한 록에 기반을 둔 젊고 활기찬 음악이었다. 젊은 가수의 독점적 홍보 의례인 쇼 케이스까지 했다.

월드스타 ‘싸이’가 4월 13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HAPPENING’에서 팝가수 비욘세의 춤을 패러디한 ‘싸욘세’를 선보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월드스타 ‘싸이’가 4월 13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HAPPENING’에서 팝가수 비욘세의 춤을 패러디한 ‘싸욘세’를 선보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레전드의 신곡, 젊은 세대까지 환호
청춘세대가 호응했다. 만 63세(1950년생)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생생한 보이스가 인상적이라고 했다. 키드들 입장에서 전혀 옛날 가수의 느낌, 이를테면 ‘구린’ 음악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음악이길래’ 하는 호기심까지 덧붙여져 많은 10∼20대들이 ‘바운스’와 ‘헬로’ 등 조용필 신곡을 스트리밍, 다운로딩했다. 음원차트 정상은 이러한 디지털 세대의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갑작스러운 조용필 신드롬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동시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근래 일각의 젊은 음악팬들 사이에서는 ‘섬기고 싶은 전설적 존재’를 찾는 분위기가 있다. 아이돌에 지친 탓일 수도 있고, 계통부재를 떨치려는 욕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지만 그런 흐름에 부합하는 영순위의 레전드가 가요계 최고 존엄 조용필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가 록과 같은 영 뮤직으로 돌아온 것은 환갑이 넘은 나이테를 애써 가리거나 푸르른 청춘으로 보이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록은 1968년 데뷔한 이래 그의 원초적 본능이다. 그는 기성세대 관객들에게 젊은 시절 공유했던 록을 들려줘 ‘우리는 아직도 젊다’는 자신감을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돌아온 조용필에 대한 기성세대의 폭발적 반응은 10년 만의 반가움 외에 이러한 점이 작용한다.

조용필은 그들에게 단지 가수를 넘어 세대의 상징적 존재가 된 것 같다. 40대 후반의 한 은행원은 “조용필이 잘되는 게 괜히 내가 잘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간 억눌린 기성세대들이 가왕의 귀환을 맞아 자신감을 재충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음악은 젊은 가수들 판이었다. 나이 든 가수가 히트를 기록한 곡은 김수희의 ‘애모’,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인순이의 ‘거위의 꿈’ 등 극소수에 불과하고 실제로 젊은 층과 교감하는 아티스트도 드물었다. 관록에 대한 대우가 우리처럼 척박한 나라도 없다. 전성기가 지나면 가수는 거의 예외없이 인기 현장에서 퇴각해 추억의 무대만 기웃거린다.

조용필이 여기에 도전한다. 그 세대도 얼마든지 바운스해 위로 앞으로 튀어나올 수 있음을 시범하고 있다. 싸이는 트위터에 “어쩌다 제가 감히 가왕님과 공통점을 갖게 된 걸까요. 영광입니다. 선배님”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가 말하는 공통점은 아마 음원차트 1위 자리, 같은 시점의 신곡이라는 사실 등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둘의 공통점은 이리저리 움츠릴 수밖에 없었던 계층과 집단의 거침없는 하이킥이 아닐까 한다.

싸이 쪽은 B급 사람들이요, 조용필은 노병들이다. 국제가수 싸이와 가왕 조용필은 각각 이들을 대리해 더 이상 위축되지 말자고 선언한다. 비록 세대와 음악스타일은 다르지만 어쩌면 두 히어로는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미망은 크게 다르지 않고, 도달하는 결론은 대중음악의 다양성이다. 아이돌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싸이는 바깥에서 우리를 즐겁게 하고, 조용필은 안에서 우리를 뿌듯하게 한다. 음악계의 모처럼 기분 좋은 광경이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