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강변의 테루아를 닮은 그뤼너 벨트리너 화이트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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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의 기온 차가 심한 이곳 파노니안 지방 기후의 영향으로 과숙기간 포도에 독특한 아로마(과일향)와 적절한 산도를 형성해준다.

빈에서 A22와 S5 고속도로로 왼편으로 흐르는 다뉴브 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70㎞를 달려 니더외스터라이히(Lower Austria) 지방의 랑겐로이스(Langenlois)에 있는 로이지움 호텔에 도착했다. 랑겐로이스는 니더외스터라이히 지방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 중심도시이며, 로이지움은 와인 호텔과 박물관이 있는 와인 테마 리조트다. 이곳에서는 오스트리아 와인의 60% 이상이 생산된다. 전적으로 다뉴브 강이 가져다준 천혜의 선물 덕분이다. 위도 상으로 비교적 북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겨울에 온화하고 여름에 서늘하여 리슬링과 그뤼너 벨트리너 등 화이트와인 품종 재배에 적합하다.

5월에 잎이 돋아난 수령 40년의 그뤼너 벨트리너 포도나무 가지에 시간의 흔적이 보인다.

5월에 잎이 돋아난 수령 40년의 그뤼너 벨트리너 포도나무 가지에 시간의 흔적이 보인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다뉴브강
다뉴브 양안 가파른 계곡과 테라스에 형성된 그림 같은 포도원 풍경은 관광자원으로도 훌륭하다. 우리에게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로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이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흑해로 흘러가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총길이 2860㎞중 360㎞가 오스트리아를 지난다. 지금은 독일의 라인 강과 운하로 연결되어 북해까지 유럽대륙을 관통하는 주요 운송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2003∼2005년, 2년에 걸쳐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스티븐 홀’의 설계로 지어진 ‘로이지움’은 와인 박물관, 호텔, 레스토랑, 와인 스파와 콘퍼런스 룸을 갖추고 있다. 로이지움은 청동기 시대부터 포도를 재배해온 역사적인 랑겐로이스의 포도밭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LETH 와이너리의 셀라도어에서 시음한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 뒤에 앉아 있는 이가 프란츠 레스(Franz Leth)다.

LETH 와이너리의 셀라도어에서 시음한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 뒤에 앉아 있는 이가 프란츠 레스(Franz Leth)다.

안락의자에 누워 아름다운 포도원을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는 호텔 후원, 겨울에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히팅 시스템을 갖춘 야외수영장과 와인을 이용한 사우나와 온천시설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시설들은 가장 미국적인 디자인 콘셉트에 노출콘크리트나 알루미늄 등의 자재를 사용한 현대적인 건축물이었다. 수천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중세의 포도마을에 현대적인 로이지움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특히 9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와인셀라와 현대적인 건축물을 지하 터널로 연결시켜 ‘History & Modernism’을 절묘하게 공존시킨 건축가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감동적이었다. 로이지움이 들어선 이후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이곳이 세계적인 와인관광지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총 3만500ha의 광활한 포도밭을 가지고 있는 니더외스터라이히 지방은 다뉴브 강 유역과 빈 근교에 8개의 와인 생산지역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바그람 지역에 있는 ‘LETH 와이너리’를 방문하기 위해 로이지움 호텔을 떠나 도로 양편에 펼쳐진 5월의 싱그러운 포도밭을 감상하면서 펠스 마을로 향했다. 3대째 가업을 계승하고 있는 LETH 와이너리의 오너인 프란츠 레스(Franz Leth)가 반갑게 맞았다.

바그람 지역은 다뉴브 강 양안 30㎞지역에 펼쳐진 2700ha의 포도밭에서 주로 화이트와인 품종인 그뤼너 벨트리너와 리슬링, 레드와인 품종인 블라우어 츠바이겔트와 피노누아를 재배한다. 레스는 다른 와인 메이커에 비해 오랜 역사는 아니지만, 투자와 기술혁신을 통해 와인의 이상을 달성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라며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와인셀라를 둘러보고, 이곳의 테루아가 왜 그뤼너 벨트리너 재배에 적합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포도밭을 향했다.

랑겐로이스지역 포도밭 한가운데 있는 유명한 로이지움 호텔.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이 설계한 와인 테마 호텔로 수영장 너머 와인박물관이 보인다.

랑겐로이스지역 포도밭 한가운데 있는 유명한 로이지움 호텔.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이 설계한 와인 테마 호텔로 수영장 너머 와인박물관이 보인다.

한적한 시골마을이 세계적 와인관광지로
남쪽을 향해 해발 240~300m의 구릉 중간에 위치한 포도밭은 빙하시대에 다뉴브 강의 암반층이 풍화해 오랜 세월 동안 바람에 날려 쌓인 퇴적층이다. 이 퇴적층은 황토, 모래, 백악질로 이루어진 지층의 깊이가 20m나 되어 별도의 퇴비나 관개시설이 필요 없는 이상적인 토양이다. 또한 지하 암반층까지 포도나무의 뿌리가 쉽게 뻗어나가 수분과 다양한 미네랄을 흡수할 수 있다. 특히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한 이곳 파노니안 지방 기후의 영향으로 과숙기간 포도에 독특한 아로마(과일향)와 적절한 산도를 형성해준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테루아 덕분에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토착품종 그뤼너 벨트리너가 탄생하였을 것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포도밭과 야생화가 피어 있는 언덕 위에 설치된 전망대와 예술가의 조형물이 필자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줬다. 오스트리아인의 예술 사랑을 이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품종인 그뤼너 벨트리너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지만 이곳이 과거 로마제국의 속주였고, 이름이 비슷한 이탈리아 북부 발텔리나 계곡에서 로마군에 의해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DNA 분석을 통해 어머니는 스파이시한 맛의 알자스 대표품종인 트라미너(Traminer)라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아버지가 누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새로 조성한 바그람 근교의 포도밭. 야생동물이나 새로부터 어린 묘목을 보호하기 위해 플라스틱 원통을 세웠다.

새로 조성한 바그람 근교의 포도밭. 야생동물이나 새로부터 어린 묘목을 보호하기 위해 플라스틱 원통을 세웠다.

포도밭 구경을 마치고 와이너리에서 직접 준비한 이 지방 전통 돼지고기 요리를 곁들여서 본격적인 와인 시음을 하였다. LETH는 화이트와인뿐만 아니라 피노블랑으로 스위트와인, 피노누아로 스파클링와인, 그리고 블라우어 츠바이겔트와 피노누아 등으로 양질의 레드와인을 생산한다. 그러나 필자가 시음한 와인 중에 쉬벤 포도밭에서 생산한 2009년산 그뤼너 벨트리너가 단연 돋보였다. 이 와인은 그뤼너 벨트리너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개성을 함축하고 있었다. 옅은 녹색을 띠지만 오히려 무색에 가까워 청순함이 느껴졌다. 게부르츠 트라미너처럼 스파이시하지만 풍부한 미네랄에서 오는 신선한 청량감과 활기찬 산도가 균형을 갖춘 풀 보디 와인이었다. 저녁에 로이지움 호텔 식당에서 화이트 아스파라가스 요리에 그뤼너 발트리너를 마셨는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완벽한 페어링(음식과 와인의 궁합)이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어쩌면 와인과 음식의 세계에 더욱 적합한 말일지도 모른다.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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