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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거취표명 요구 받았지만 사퇴란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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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인권위원장 국회 운영위서 답변… 상임위원들 “청와대 사퇴요청 있었다”

“보도한 기자인데, 한 말씀 해주십시오.”

“뭐요? 누구라고? 지금 제가 말씀드릴 상황이 아니라….”

“보도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이 다릅니까.”

“답변할 생각이 없어요.”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 | 김영민 기자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 | 김영민 기자

4월 1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참석한 현병철 인권위원장과의 대화다. 현병철 위원장은 이날 <주간경향>의 보도와 관련한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대해서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은 있지만 ‘사퇴’에 대해 (청와대 쪽에서) 언급한 적이 없고 ‘협조요청’만 받았을 뿐”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현 위원장의 주장에 따르면 청와대의 협조요청에 거꾸로 자신이 “내 거취문제도 포함된 거냐”고 물어 “포함된다”는 말을 듣고 “그것은 인권위의 독립성과 관계된 것이어서 상의해보겠다”고 답했다는 것. 전화를 건 이는 곽상도 민정수석이었다는 것도 인정했다. “민정수석이 잘못 판단한 것 같다. 계속 일 보시라”고 전화를 건 이는 허태열 비서실장으로 확인됐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는 초반부터 <주간경향>이 보도한 청와대 전화 사실을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은 <주간경향>이 복수의 인권위 관계자로부터 확인한 세 차례의 ‘거취표명 요구’ 사실이 있는지, 지난 1022호 기사에 실린 일지를 제시하면서 물었다.

현병철 “청와대의 협력요청에 논의했다”
윤관석 의원 3월 중순에 청와대와 전화통화를 하신 적 있죠.

현병철 위원장 있습니다.

윤 의원 기사에 따르면 3월 26일에 “다음주에 내정자를 발표하겠다”고 청와대 쪽에서 말하자 “청문회 끝날 때까지 있겠다” 이렇게 답했다고 상임위원들에게 말했다고 했는데, 이런 사실이 있죠.

현 위원장 아니, (청와대에서) 협력을 요구해서 협력하겠지만….

윤 의원 그날 오후 4시에는 사퇴를 결심했으니 아무 소리 말라,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현 위원장 전혀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게 잘못된 보도예요. 사퇴하겠다는 말이 아니고, 제가 물러날 가능성, 그런 가능성이 있으니…. 그건 상임위원들을 처음 만났을 때 한 것이에요.

윤 의원 지금 말씀하신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독립성에 대해 강한 소신을 갖고 있다고 누차 말씀하셨는데, 3월 26일에는 왜 사퇴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했나요.

현 위원장 제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청와대) 압력은 아니고. 상황이 벌어진다면, 전화는 사퇴하라고 온 것이 아니고 서로 협력하는 것에 대해 물어봤고, 저는, 저는 독립성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독립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

현 위원장은 의원들이 청와대에서 받은 전화의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려고 할 때마다 말을 가로막고 “사실이 아니다”, “사퇴란 말은 없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현 위원장의 답을 정리하자면 청와대로부터 새 정부 출범에 대한 ‘협조요청’을 세 차례 받은 것은 사실이고, 청와대 쪽에 현 위원장 자신이 그 ‘협조’에 자신의 거취도 포함되느냐고 되묻자 ‘포함된다’는 답을 듣고 “그건 인권위의 독립성을 해치는 요구”라고 답한 뒤 주위와 상의해보겠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현 위원장의 말을 정리해 봐도 ‘사퇴요구’와 ‘협조요청 논의’는 단어만 다를 뿐, 같은 요구다.

현 위원장이 중언부언하며 ‘사퇴압력은 받지 않았다’는 식으로 답을 하자 김관영 민주당 의원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참석한 인권위 상임위원을 불러 이 사실을 확인했다. 홍진표 상임위원이 나섰다. 뉴라이트 계열의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을 역임한 홍 의원은 보수성향이지만 현 위원장과 인권위 주요 사안을 두고 자주 의견대립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주간경향>이 보도한 통화내역 일지를 근거로 제시하며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주간경향>이 보도한 통화내역 일지를 근거로 제시하며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관영 의원 <주간경향>을 보면 3월 26일 오전 10시에 세 번째 현 위원장이 전화를 받고, 다음주쯤 내정자를 발표할 것이라고 청와대에서 했고, 현 위원장이 청문회 끝날 때까지만 있겠다고 했고, 현 위원장이 상임위원들을 불러서 청와대에서 이런 전화가 왔다고 했는데, 그런 전화를 받은 사실을 (현 위원장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까.

홍진표 상임위원 답변 드리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청와대와 전화통화한 사실, 사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 이상의 이야기는 그 자리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관계로 자세한 언급을 여기서 말씀드리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홍 위원은 보다 자세한 내용에 대한 질문엔 “네 사람(편집자 주: 현병철 위원장과 3명의 전체 인권위 상임위원)이 있었던 자리이기 때문에 어차피 기억에 의존해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데, 만약 그렇다고 답하면 그게 사실로 확정될 수 있는 상황이라 (자신이) 답변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다시 김 의원이 사실확인을 요구하자 “그건 말씀하신 분(편집자 주: 현병철 위원장)이 있다”고 입을 다물었다. 현 위원장은 “3월 26일 오전 말고 오후에 두 사람의 상임위원에게 사퇴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이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확인한 사실과 다른 부분이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청와대로부터 받은 협조요청의 성격이 사실상 사퇴 요구가 아니냐고 파고들었다.

개인 거취문제가 인권위 독립성?
서영교 의원 인권위 독립성과 인권위원장의 거취문제는 다른 문제 아닙니까.

현병철 위원장 그래서, 독립성과 관련해서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그건 좀 힘들고(라고 청와대에 답을 했다는), 그 점도 사퇴가 관련된다 안 된다에 대해서는 서로(자신과 청와대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현 위원장의 답변을 정리해보면 인권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개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상임위원들에게 “대책을 생각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개인적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필요에 따라 자기 개인의 이해를 조직의 공식적인 문제로 치환했다가, 다시 그것은 공식적인 일이 아니다라고 하는 궤변에 불과했다”고 평했다. 이날 오후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청와대 허태열 비서실장과 곽상도 민정수석은 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건 사실’을 직접 시인했다.

결국 인권위의 독립성을 방패삼은 현 위원장의 자리 지키기는 성공할 것일까. <주간경향>이 발매된 4월 15일 오전, 현 위원장은 국·과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보도를 두고 “상임위원들이 나를 배신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인권위 관계자는 “관련 보도가 물의를 일으키자 현 위원장과 청와대가 일정 수위까지는 인정하기로 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일련의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크지만 박근혜 정부의 태도에 따라 그의 입지가 오락가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4월 15일 인권시민단체인 새사회연대는 청와대가 현 위원장에게 거취표명을 요구한 것이 드러난 이번 사건과 관련한 성명에서 “청와대가 독립기관의 수장인 국가인권위원회 수장에 대해 직접적으로 사퇴를 권고한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이런 사태로 온 것은 현 위원장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은 보도와 관련한 논평에서 “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기보다 코드 맞추기에 급급해왔고,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사퇴압력을 가하니 더욱 인권침해에 침묵하며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다”며 “최소한 인권위의 독립성을 위한다면 현 위원장은 즉각 사퇴하길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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