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이버 전쟁, 보이지 않는 위험

묻지마식 국보법 적용 피해자 생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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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당국 ‘우리민족끼리’ 아이디 토대 수사… “퍼나르기·다운로드 땐 찬양고무죄 적용”

4월 5일. 보수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에 교사 ㄱ씨의 ‘신상이 털렸다’. ㄱ씨는 수년 전 북한의 대남 선전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했다. 4월 4일 국제 해킹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가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해킹해 가입자 아이디를 공개했고, 이를 통해 ‘일간베스트(일베)’에서 ‘가입자 색출’ 작업을 벌인 결과였다.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가 북한의 대남 선전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한 사람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다. | 연합뉴스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가 북한의 대남 선전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한 사람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다. | 연합뉴스

일베 게시판에서 ㄱ씨의 신상이 털리자, ㄱ씨는 학교에서 ‘간첩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됐다. 학교에는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ㄱ씨에게는 ‘간첩XX가 어떻게 교사냐’며 욕설 섞인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다. 학생들과 쌓아온 신뢰도 무너졌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생님이 간첩이라면 간첩에게 배운 자신도 간첩 낙인이 찍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경계의 분위기가 생겼다. 학교 재단 측에서는 ㄱ씨를 친북 교사로 규정하고 징계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충격을 받은 ㄱ씨의 아내는 현재 신경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ㄱ씨는 “마치 내 자신이 북한 공작원이나 되는 것처럼 매도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욕설 섞인 전화나 문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ㄱ씨가 느끼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경찰청 보안과에서 가입자 명단을 통해 내사를 시작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ㄱ씨가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한 것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수년 전이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당시에는 접근이나 가입에 제한이 없던 때였고, 북한에서 만든 사이트인지 남과 북이 합작해서 만든 사이트인지도 모른 채 호기심에 가입을 했다는 것 정도다. ㄱ씨는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했던 사람들의 가입 이유가 각자 모두 다를 텐데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사를 진행한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낳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면서 “현재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애꿎은 사람들만 또다시 묻지마식 국가보안법 적용으로 피해를 보게 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호기심으로, 논문작성 위해 가입한 이들 ‘불안’
북한학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했던 북한연구자 ㄴ씨도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가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한 이유는 국가기관이 지정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찾는 학술적인 목적에서였다. 하지만 자료를 다운로드하거나 다른 사이트에 퍼나르기를 하는 것으로 국가보안법 7조인 ‘찬양·고무’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말에 ㄴ씨는 혹시라도 자신이 국가보안법 위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상황이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변정필 캠페인팀장은 “예전만 해도 정부정책, 특히 대북단체에 비판적인 것으로 보이는 특정 단체를 대상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개인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이 개인들에게 적용되면서 혼자서 감당해야 할 공포와 위축이 크다”라고 말했다.

현재 경찰청 보안과는 어나니머스가 공개한 가입자 아이디 목록을 토대로 가입자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보안과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9001개 명단의 분류작업을 하고 있으며, 추후 본인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명단을 확인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여 아직까지는 가입자 소환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수사당국은 사이트 단순 가입만으로는 국가보안법 위반을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가입자가 사이트의 내용을 퍼나르기 및 다운로드 한 것이 드러난다면 이를 국가보안법 7조 위반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소위 ‘찬양·고무죄’라고 불리는 국가보안법 7조는 국가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이들까지 구속하는 데 오·남용될 수 있어 논란을 빚어 왔던 조항이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찬양·고무·선전’은 수사당국이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자의적 적용’ 논란이 있어 온 조항이다. 이번에도 9001개의 명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국가보안법 7조의 ‘자의적 적용’으로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변정필 팀장은 “이번 사안의 경우도 가입자의 의도 등을 수사 당국이 판단하겠다는 것”이라며 “UN 등 국제사회는 국가보안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명확성의 원칙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이런 국제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안에도 국가보안법이 자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경찰청 보안과 관계자는 “그런 피해가 나지 않도록 적법조치에 따라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박정근씨 사례 이번 수사 영향 줄 것
하지만 2011년 박정근씨 사례는 수사당국의 ‘적법조치’가 ‘피해가 나지 않는’ 결과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씨는 금지된 북한의 웹사이트를 트위터에서 리트윗해 검찰에 기소됐다. 박씨의 의도는 이를 통해 북한 정부를 풍자하려 한 것이었다. 박씨는 앰네스티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트위터 계정 내용을 리트윗했다. 북한 지도부를 농담삼아 풍자하려는 의도였다. 재미로 한 것이다. 북한 선전 포스터에 있는 북한군의 웃는 얼굴에 우울한 내 얼굴을 합성하고, 손에 든 무기를 위스키병으로 바꾸어 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국가보안법 7조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2012년 11월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은 박씨의 게시물이 “반국가단체활동에 호응하고 가세”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박씨의 판례는 이번 ‘우리민족끼리’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민변의 이광철 변호사는 “이미 리트윗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을 받은 박정근씨 사례가 있어 이번 ‘우리민족끼리’ 사안도 퍼나르기나 다운로드를 했을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의 적용범위가 점점 넓어져가고 있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며 “국가보안법은 수사기관이 문제를 삼으면 다 문제가 되는 구도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변정필 팀장은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계속 이야기해왔지만, 박정근 사례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동기에 따라 국가보안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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