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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리즘’이 영국예술 꽃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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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리즘’과 그에 따른 예술 지원 감축이 역설적으로 창조성의 혁명에 불을 댕긴 것이다.

‘철의 여인’ 머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1925~2013년)가 지난 8일 뇌졸중으로 타계했다.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인 대처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세 차례 연임하며 20세기 최장 총리로 영국을 이끌었다. 그가 총리 시절 펼친 정책은 ‘대처리즘’으로 대표된다. 이는 시장주의 경제정책과 자신의 강력한 신념에 따른 행동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대처리즘의 골자는 재정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와 경쟁 촉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원조인 셈이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한 담벼락에 머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숨진 다음날인 9일 ‘고이 잠드소서(rest in peace)’를 패러디한 ‘철의 여인? 고이 녹슬어라(Iron lady? rust in peace)’는 문구가 쓰여 있다. | AP연합뉴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한 담벼락에 머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숨진 다음날인 9일 ‘고이 잠드소서(rest in peace)’를 패러디한 ‘철의 여인? 고이 녹슬어라(Iron lady? rust in peace)’는 문구가 쓰여 있다. | AP연합뉴스

대처의 생전 정책은 사후에도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큰 연관고리가 없는 한국에서도 그의 재임시절 공과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대처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놀라운 유산을 낳은 분야가 있다. 예술 분야다. 그의 ‘대처리즘’과 그에 따른 예술 지원 감축이 역설적으로 창조성의 혁명에 불을 댕긴 것이다.

보수당 소속 대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세워진 예술위원회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시장주의 원칙에 입각해 예술가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스스로 헤엄을 치거나 아니면 가라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그의 경제정책과 반공주의, 포클랜드 전쟁도 예술가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런던 정경대의 데이비드 카바츠 교수는 “대처는 이데올로기적 반발을 불러일으켜 영국의 문화지평에 경이적 영향을 끼쳤다”면서 “이러한 역설적 움직임은 그가 예술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았다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AFP통신에 밝혔다.

예술위원회 예산 대폭 삭감
대처의 헤게모니는 패션·영화·음악 등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든 측면에 스며들었다. 대처는 특별히 문화적 취향이 있진 않았다. 그는 보수성향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프레드릭 포사이드를 즐겨 읽었으며, 가장 좋아하는 곡은 영국의 연주밴드 토네이도의 ‘텔스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대처의 생각들이 문화의 대지진을 만들어낸 셈이다. 그 가운데 가장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분야는 음악이다.

“조용한 삶을 꿈꾸는 건 그만두는 게 좋아/우리가 알지 못할 삶이니까/떠나는 버스를 잡으려 뛰는 것도 그만두는 게 좋아/소용없을 테니까/네가 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는 것도 그만두는 게 좋아/시간은 짧고 인생은 잔인하니까/그러나 이젠 우리가 변화시켜야 해/적개심이라 불리는 이 도시를”

“쓸모없는 우유통의 행렬/목장 안에서는 죽어가고 있지/외로운 아줌마들은 우유병을 쥐고 가슴 속에 붓고 있어/예전에 받은 러브레터를 널어서 말리네/눈물이 빠르고 격하게 흘러내릴 때면 세상을 믿지 않아도 좋아/적개심이라 불리는 도시에선”

“해마다 계속되는 투쟁/세상은 맛좋은 아이스크림 같다는데/나는 거의 얼어죽어가네/적개심이라 불리는 도시에서”

“골목마다 일요일에 먹을 로스트비프를 기대하며/생활협동조합으로 달려가네/그러려면 맥주나 아이들 장난감을 줄여야 해/적개심이라 불리는 도시에선 정말 힘든 결정이야”

“증기열차의 유령이 철로 위로 달려오네/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그저 맴돌고만 있지/놀이터의 아이들과 망가진 그네에선/웃음소리가 사라졌어/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마찬가지일 거야/어서 기쁨이 돌아왔으면/적개심이라 불리는 도시에”

유명 뮤지션들 단결 ‘안티 대처’ 운동
영국 밴드 더 잼(The Jam)의 곡 ‘적개심이라 불리는 도시’(Town Called Malice)의 가사다. 오늘날 청취자들에게는 어두운 느낌이 들 뿐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혹독한 긴축과 갈등으로 찢겨진 1980년대 초반 영국이 배경이라는 사실을 접하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임을 알 수 있다. 대처 집권기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노래인 것이다. 이 곡이 실린 더 잼의 싱글앨범 ‘더 기프트’는 1982년 영국 싱글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처 집권기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삽입곡으로도 쓰였다.

영국 런던 지하철에서 시민들이 9일 머거릿 대처 전 총리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을 읽고 있다. | AP연합뉴스

영국 런던 지하철에서 시민들이 9일 머거릿 대처 전 총리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을 읽고 있다. | AP연합뉴스

대처 전 총리가 3선에 도전한 1987년에는 더 잼의 기타리스트 폴 웰러, 클래시, 매드니스, 빌리 브렉, 엘비스 코스텔로 등 유명 뮤지션들이 단결해 ‘안티 대처’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은 파업 광부들을 위한 모금공연을 열고 공개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했다. 1988년에는 팝가수 모리세이가 ‘머거릿 온 더 길로틴’이라는 곡을 통해 대처를 단두대에 보내는 ‘멋진 꿈’을 가지고 있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대처의 정책이나 칠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의 친선을 비판하는 노래들도 발표됐다. 이 와중에 다양한 서브컬처도 함께 꽃을 피웠다.

대처 집권 말기인 1980년대 후반에는 오늘날 현대미술을 주름잡고 있는 yBa(Young British Artist)가 등장했다. 런던 골드스미스대학 출신 풋내기였던 이들은 1988년 빈 창고를 무료로 빌려 기획한 ‘프리즈’라는 자유분방한 전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전시를 주도한 사람이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작가 중 하나인 데미안 허스트다. 유명 컬렉터인 찰스 사치가 이들의 작품을 사들이고 전시를 후원하면서 yBa 붐을 일으켰다. 이는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국가 이미지 정책이었던 ‘쿨 브리타니아’로 이어졌다.

영화서도 영국의 민감한 문제 건드려
영화에서 대처 집권기를 보여주는 작품은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1985년작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이다. 파키스탄 출신 오마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동성애, 인종차별, 영국의 정치·경제 등 민감한 주제를 건드렸다.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고 독설을 한 켄 로치, 마이크 리 등도 대표적인 안티 대처 감독이다. 200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해럴드 핀터도 생전에 대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대처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의 경제정책이 ‘직접적’으로 문화 발전에 기여한 사례도 있다. 대처 정부는 소상공업을 장려하기 위해 ‘기업 개설 수당’을 만들어 주당 40파운드를 지급했다. 이 덕분에 yBa의 멤버인 트레이시 에민이 코믹 비즈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수퍼드라이를 만든 줄리앤 덩커턴은 창업에 나설 수 있었다.

영국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정권의 현 문화커뮤니케이션창조산업부 장관 에드 베이지는 “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었다”면서 1980년대 좌파 음악을 술술 말할 수 있다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정말 설명하기 힘들지만, 당시 대처가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대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말하는 밴드들의 음악을 들었다”면서 “아마도 당시 음악과 정치에 있던 격정을 사랑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배문규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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