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자연의 하모니,오스트리아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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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장엄한 자연과 어우러진 포도원 풍경은 눈으로 듣는 하나의 교향곡이다.

합스부르크가의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자랑하는 빈은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거대한 문화유산이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슈테판대성당, 호프부르크 왕궁, 오페라하우스 등 중세의 화려한 건축물에 감동한다. 세기말 새로운 예술 창조를 위해 시작된 분리파 운동의 거점 제체시온(Sezession)의 황금빛 올리브 잎 모티브의 돔을 보면 현대에도 오스트리아인은 창조적인 예술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곳은 우리에게 <키스>라는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는 분리파의 창시자 클림트의 유명한 <베토벤 프리즈> 라는 프레스코 벽화가 있는 건물이다.

화려한 빈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2년마다 열리는 비비눔(VieVinum) 국제와인 박람회.

화려한 빈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2년마다 열리는 비비눔(VieVinum) 국제와인 박람회.

전체생산량 70%가 화이트와인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음악도시 잘츠부르크, 알프스의 빙하와 유리알같이 맑고 깨끗한 할슈타트 호수, 도나우강가를 따라 바로크풍의 마을과 포도원이 펼쳐진 낭만적인 바카우 계곡,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볼 수 있는 남부 슈타이어마르크,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노이지들레 호수가 있는 동부 부르겐란트. 어디를 가나 오스트리아의 장엄한 자연과 어우러진 포도원 풍경은 눈으로 듣는 하나의 교향곡이다.

필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오스트리아 와인을 찾아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여행을 하였다. 특히 2002년과 2010년 세계적인 와인박람회 중 하나인 비비눔(VieVinum Wine Fair)에 초청받아 빈을 중심으로 주요 와인 생산지역을 방문하였다. 오스트리아 와인은 스위스처럼 생산량이 많지는 않다. 우리나라에 크게 소개되지 않았지만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 고급와인으로 항상 포함되어 있다. 와인의 총생산량은 연간 약 2억5000만 리터로 세계 총생산량의 1%에 불과하고 국내 소비량을 제외하면 수출량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프랑스의 버건디, 샴페인 지방과 유사한 기후와 테루아를 가지고 있어 전체 생산량의 70%가 화이트와인이다. 레드와인도 강렬한 보르도 타입보다는 버건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피노누아나 네비올로처럼 부드러운 맛의 와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오스트리아 포도원 풍경
오스트리아는 크게 4개의 와인 생산지역으로 구분한다. 3만500ha에서 오스트리아 총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한 니더외스트라이히(Lower Austria) 지방의 포도원은 드넓은 평원과 아름다운 다뉴브 강변의 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서늘한 기후로 이곳에서 재배되는 리슬링은 독일의 모젤와인과 달리 드라이한 최상의 화이트와인을 생산한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화이트와인 토착품종인 그뤼너 벨틀리너도 이곳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고 있다.

빈 분리파운동의 거점인 제체시온 건물. 황금색 올리브 잎 모티브의 돔이 화려한 장식적 요소를 보여준다.

빈 분리파운동의 거점인 제체시온 건물. 황금색 올리브 잎 모티브의 돔이 화려한 장식적 요소를 보여준다.

이곳은 와이너리와 함께 유람선을 타고 아름다운 다뉴브강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슬로베니아 접경지대인 남부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는 추운 날씨 때문에 주로 쇼비뇽 블랑, 샤르도네, 피노 블랑을 재배하여 상큼하면서도 섬세한 고급 화이트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구릉에 펼쳐진 이곳의 포도원 전경은 가장 아름다운 오스트리아의 전원 풍경으로도 유명하다. 기온이 높고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유산인 노이지들레 호수가 있는 동부 부르겐란트 지방은 주로 레드와인과 스위트와인을 생산한다. 이곳에서 재배된 토착 품종 블라우프랭키쉬(Blaufrankisch)와 츠바이겔트(Zweigelt)로 만든 레드와인은 섬세하면서도 과일향이 풍부하고 타닌이 부드러워 마시기가 좋다. 마지막으로 빈 근교의 와인 생산지역은 700ha의 비교적 작은 규모이지만 수도의 접근성과 햇포도주를 즐길 수 있는 전통 선술집 호이리게(Heurige)로 유명하다.

문화와 예술상품으로서 와인의 정체성은 빈에서 2년마다 열리는 비비눔 와인박람회에 참석하면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전시장소가 합스부르크가의 화려한 왕궁이었다. 전 세계의 유명한 와인메이커들이 참가하여 전야제를 포함, 닷새에 걸쳐 진행된 와인박람회의 프로그램은 와인과 문화가 어우러진 하나의 예술축제였다.

누군가 와인은 커뮤니케이션(담소)이라고 하였다. 와인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와인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빈 시청사 중정에서 개최된 와인파티. 빈 필하모니의 연주를 들으며 짚단 위에 앉아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 모습이 정겹다.

빈 시청사 중정에서 개최된 와인파티. 빈 필하모니의 연주를 들으며 짚단 위에 앉아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 모습이 정겹다.

왕궁에서 열리는 와인박람회
다음날 공식적으로 개장한 박람회를 보기 위해 호프부르크 왕궁을 찾았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번영과 몰락의 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왕궁은 13세기부터 역대 군주들이 필요에 의해 계속 증축하여 왕궁 전체를 관람하는 데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박람회는 합스부르크 최후의 왕궁인 신왕궁에서 열렸다. 높은 천장과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서 개최된 와인박람회는 장소만으로도 관람자들을 압도한다. 전 세계 주요 와인메이커들과 저널리스트, 수입업자, 레스토랑 대표 등 1000여명이 참석한 와인박람회는 눈부시게 찬란했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듯 화려하고 성대했다. 저녁에 개최된 리셉션은 아우에르슈페르크궁의 정원에서 현악사중주단 연주와 함께, 만찬은 궁 안에서 재즈연주와 함께 하였다. 행사기간에는 각 지역 생산자 협회가 주관하는 개별 와인파티가 있었지만 필자에게는 고색창연한 빈 시청 중정에서 있었던 와인파티가 인상적이었다.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은은한 연주를 들으며 참석자들이 자연스럽게 짚단 위에 앉아 대화하고 와인과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와인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빈 여행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짝수 연도 6월에 개최되는 와인박람회에 반나절 정도 꼭 참여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러한 문화에서 그림과 음악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좋은 와인은 필수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오스트리아 와인마케팅협회가 오스트리아 와인의 다양성과 함께 와인과 음식을 문화적으로 접근한 ‘Taste Culture’ 운동이 세계 와인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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