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끊임 없이 진화하는 생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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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자연과 인간의 열정이 만나면 언제나 새로운 와인이 탄생할 수 있고, 와인은 인류의 역사를 머금은 가장 문화적 상품이다.

마키올레 와이너리의 예술적인 와인셀라.

마키올레 와이너리의 예술적인 와인셀라.

세계의 유명한 와인산지는 와인뿐만 아니라 항상 맛있는 식당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역사가 숨 쉬는 장소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와인과 음식은 마치 부부처럼 궁합이 맞아야 되고 와인의 전파나 뿌리를 찾다보면 대부분 문명의 이동 경로와 일치하고 군대의 이동과 함께 하였다. 대표적인 곳이 골 지방(지금의 프랑스와 독일의 라인강 남부지역 유럽)과 신세계 남미의 대표 와인산지인 칠레, 아르헨티나다.

골 지방은 8년 동안 주둔했던 시저군단에 의해, 남미지역은 마야문명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한 스페인의 정복군에 의해 전파되었다.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와인산지는 천주교의 신부에 의해 이뤄졌다.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처럼 기독교를 상징하는 도시 이름도 흥미로운 일이다. 아마도 정복군에게 와인은 여러 목적의 알코올 음료로 필요했지만, 천주교에서는 미사주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용품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이집트의 정복 왕 람세스 2세 때 시리아왕국과 전쟁을 벌일 때 군인에게 공급했던 1일 와인의 양이 달랐고, 부상병의 외상을 치료한 유일한 의약품이 와인이었다. 이러한 목적의 수요는 로마군에게도 적용되었으며, 시저의 주둔군에 의해 현재의 유럽 와인지도(와인 생산지역)가 사실상 완성된 것은 와인문화의 아이러니다.

미국의 TDA(세계무역통계) 통계에 의하면 1인당 와인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놀랍게도 바티칸 시국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2010년 1인당 연 소비량이 73병이다.

고대유적과 자연유산이 많은 볼게리
필자는 수퍼토스칸의 메카 볼게리를 떠나기 전에 이곳의 음식문화를 맛보고 자연유산을 더 둘러보기로 하였다. 볼게리 지역은 기원전 에트루리아 시대부터 시작된 와인역사 이외에도 고대유적과 자연유산이 많은 지역이다. 또한 풍부한 지중해의 해산물로 미식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유명한 레스토랑들이 많이 있다. 최근에는 지방정부, 호텔, 레스토랑, 관광단체가 주축이 되어 1995년부터 에트루스칸 와인가도(Etruscan Cost Wine Routes)의 개척운동이 시작되었다. 루트는 볼게리 지역뿐만 아니라 몬테스쿠다이오와 발디 코르니아의 DOC 지역을 포함한 넓은 지역이다. 볼게리 지역은 아우렐리아 가도에서 산귀도와 볼게리, 비교적 고지대인 해발 194m에 위치한 카스타네토 카르두치 그리고 푸른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는 사세타까지 연결된다.

산 빈센조의 유명한 레스토랑 La Perla Del Mare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환상적인 지중해의 저녁노을.

산 빈센조의 유명한 레스토랑 La Perla Del Mare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환상적인 지중해의 저녁노을.

볼게리에 석양이 물들 때 필자는 산귀도 와이너리를 안내했던 엘레나의 추천으로 아우렐리아 길을 따라 남쪽 20Km 떨어진 아름다운 해안마을 산 빈센조에 있는 유명한 라 페라 델 마레 레스토랑을 찾았다. 필자가 묵었던 호텔도 긴 백사장과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마리나 디 비보나라는 해양리조트였는데 산 빈센조의 저녁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붉게 물들어가는 티레니아 해의 저녁놀을 감상하면서 전통 해산물 요리에 향기로운 수퍼토스칸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행운이었다.

이튿날 운치 있는 산귀도에서 운영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끝내고, 볼게리 와인가도에 있는 오르넬리아 와이너리를 지나 수퍼토스칸의 새롭게 떠오른 별 마키올레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기다리고 있던 홍보담당 잔루카 풋졸루가 열정적으로 포도원과 양조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와인은 인류 역사를 머금은 문화적 상품
1975년 에우제니오 캄폴미가 설립한 와이너리로 1983년 부인 친치아 메를리와 함께 현재의 포도원을 조성했다. 필자가 방문했던 두에마니 와이너리의 오너이며 양조전문가인 루카 다토마의 컨설팅을 받아, 1991년 22ha에 각기 다른 5개의 성격을 가진 테루아에 맞는 포도품종을 시험 재배하였다. 새로운 수퍼토스칸 와인 개발에 열정을 불태웠던 남편이 죽자 그의 철학을 물려받은 부인 친치아는 2000년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을 카베르네 프랑으로 전부 교체하였다. 점토, 진흙, 모래, 퇴적암으로 구성된 토양, 지중해에서 3마일 떨어진 기후조건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와인의 복합성, 균형, 긴 여운의 풍미를 갖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유기농법, 수작업, 배합을 하지 않는 단일품종(화이트와인과 볼게리 로소 제외)과 발효에 배양이 아닌 자연 이스트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와인은 가족이 만들어낸 자식이라는 개념의 경영철학을 도입하였다. 이런 결과로 2008년 미국의 저명한 와인잡지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100점 만점을 획득한 전설적인 팔레오 로소(Paleo Rosso)를 탄생시켰다.

야성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볼게리 지역의 자연 풍광, 하늘 아래 짙은 코발트색이 지중해다.

야성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볼게리 지역의 자연 풍광, 하늘 아래 짙은 코발트색이 지중해다.

현대적이고 예술적으로 꾸며진 와인셀라를 구경하고 2층에 있는 시음장에서 이곳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총 5종류(Paleo Bianco, Bolgheri Rosso, Paleo Rosso, Scrio, Messorio)의 와인을 시음하였다. 이 중에 인상적인 와인은 100% 멜롯으로 만든 메소리오와 100% 카베르네 프랑으로 만든 마키올레의 대표와인인 팔레오 로소였다. 특히 팔레오 로소를 시음한 후 보르도에서 카베르네 쇼비뇽과 멜롯의 보조역할에 만족해야 했던 카베르네 프랑 단일 품종으로 이렇게도 완벽한 균형과 복합적인 향미의 우아한 와인을 만들 수 있는지 궁금했다.

위대한 자연과 인간의 열정이 만나면 언제나 새로운 와인이 탄생할 수 있고, 와인은 인류의 역사를 머금은 가장 문화적 상품이며, 그래서 와인은 끝임 없이 진화하는 생명체가 아닐까? 만약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토스카나를 빛낸 와인이라면 수퍼토스칸은 이탈리아 와인을 세계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마키올레 와이너리 방문을 마치고 와인가도를 따라 볼게리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중세도시 카스타네토 카르두치를 향했다. 시인 카르두치가 유년 시절을 보내며 시심을 키웠던 이곳은 원래 마사 마리티마라는 마을이었으나 ‘조수에 카르두치’(Giosue Carducci)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바꾸었다. 한적한 중세의 마을 풍경은 너무나 평화로웠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였다.

미국의 한 중년 이혼녀의 방황과 사랑을 그린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서 한눈에 바라본 볼게리 지역의 전경. 짙은 녹색포도원과 숲, 소나무와 사이프러스가 줄 지어 있는 아우렐리아 가도, 그 너머 펼쳐진 쪽빛 티레니안 해의 조화는 마치 야수파 마티스의 풍경화처럼 강렬하게 느껴졌다.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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