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잇따른 산업재해

산재보험 ‘허점’ 악용하는 기업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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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처리 땐 보험료 부담 증가 등 불이익… 개인합의로 은폐 ‘다반사’

지난 3월 14일 전남 여수산업단지 대림산업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7명의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이들의 상당수가 1개월짜리 단기간 계약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대림산업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을 통해 법 위반사항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경찰은 서울, 대전 등지의 대림산업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정확한 사고 경위와 하도급 계약과정 등을 파악할 방침이다.

2008년 1월 7일 경기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 화재로 40여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원청업체 대표는 2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 정지윤 기자

2008년 1월 7일 경기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 화재로 40여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원청업체 대표는 2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 정지윤 기자

고용노동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국내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2144명이었다. 1년간 산재 사망자는 2004년 2825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감소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하루 6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산재사고 사망률은 멕시코·터키와 더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아주 높은 편이다.

노동계와 산업재해 전문가들은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기업이 손해보는 부분이 크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안전관리가 부실한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여수산단 사고에서도 ‘인재’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사상자들은 밤 10시까지 연장근무를 했고, 사고가 터진 사일로(중간제품 저장시설)는 세워진 지 24년이 지난 상태였다. 또한 사고현장 인근에 있던 노동자들은 근처에 응급처치 시설이 부족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산재 생겨도 기업주 처벌 면하는 경우 많아
노동부에 검찰·경찰까지 나서고 있지만 대림산업 측이 직접적인 처벌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한국노총 출신의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발표한 ‘2010년 1월~2012년 7월 중대 재해사건 처분 결과’에 따르면, 해당 기간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중대 재해사건은 모두 2290건이었다. 그 중 과반수에 해당하는 1311건이 사업주에 대한 벌금형으로 끝났고, 28%에 해당하는 631건은 무혐의·기소유예·공소권 없음 등의 이유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업주가 징역형을 받은 것은 2.6%인 59건에 불과했다.

2011년 이마트 경기 일산 탄현점에서 하청노동자 4명이 질식사한 사건은 지점장과 법인이 벌금 100만원을 내는 것으로 사건이 종료됐다. 40명이 사망한 2008년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 역시 원청업체 사업주는 벌금 2000만원을 냈을 뿐이다. 지난해 8월 발생한 LG화학 청주공장 다이옥산 폭발사고에서는 LG화학 대표가 검찰로부터 아예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공장장 박씨만 산업안전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았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현행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에는 양벌규정(위법행위자뿐만 아니라 업무의 주체인 법인·개인도 함께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기업의 최고책임자가 처벌을 면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는 산업재해를 회사에 의한 구조적 살인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한국에도 기업의 최고책임자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비롯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수 폭발사고와 같은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기업은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더 많은 산재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 반면, 산재가 발생하지 않을수록 기업들은 보험료를 최대 5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한국의 산재사망률이 OECD 국가들 중에서 높은 편인 데 비해 전체 산업재해율이 낮은 것에 대해 산업재해 전문가들은 “기업 입장에서는 산재처리를 할 게 아니라 개인 합의를 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사망사건이 아닌 질병에 의한 산업재해가 은폐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2011년 산업재해율(연간 노동자 100명당 발생하는 재해자 수의 비율)은 0.65%인 반면 2008년 독일, 미국의 산업재해율은 2.87%, 3.46%였다.

[특집| 잇따른 산업재해]산재보험 ‘허점’ 악용하는 기업 많다

업무상 질병 산재 인정비율 해마다 낮아져
민승기 노무사는 “2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산재가 발생한 곳은 시행령으로 정해진 바에 따라 더 많은 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건설·조선 쪽에서 일하는 하청업체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향후 입찰과정에서 제한을 받거나 물량수주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며 “산재 과태료를 지불할 바에야 그 돈을 근로자에게 주겠다는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업무상 사고’는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비율이 높다. 2007~2010년 업무상 사고로 부상을 당한 뒤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수급을 신청한 노동자들의 95%가량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또한 회식이나 접대처럼 예전에는 업무와 연관성이 적다고 여겨졌던 자리에서의 사고도 법원 판결을 통해 산재로 인정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반면 ‘업무상 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비율은 매년 낮아지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기업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중시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낮은 산재인정률을 꼽고 있다. 2008년 7월 정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통해 업무상질병판정위(질판위)를 설치하고, 산재 판정에 대한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만성과로로 인해 뇌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한 경우 2008년 당시 개정된 노동부 고시에 의해 “발병 전 3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일상적 업무에 비해 과중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있었다는 점을 산재 노동자 본인이 입증해야 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1년 내내 야근·특근 등을 계속하는 노동자는 산재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

실제로 2011년 근로복지공단이 작성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현황 분석’에 따르면, 2007년 54.6%였던 업무상 질병 산재보험 불승인율이 2010년 63.9%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상 질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뇌심혈관계 질환이나 육체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이다. 뇌심혈관계 질환에 대한 불승인율은 2007년 59.8%였던 것이 2010년에는 85.6%까지 치솟았으며,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불승인율은 같은 기간 44.7%에서 52.3%로 올랐다.

전국 광역단위로 6개로 구성되는 질병판정위원회 업무방식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해 하반기 질판위원으로 활동했던 최승현 노무사는 “위원들에게 신청자들의 여러 가지 서류를 볼 수 있게 해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데, 근로복지공단은 신청자 1인당 2~3쪽짜리 요약본만 보냈다”고 말했다. 최 노무사에 따르면, 보통 7명의 외부위원이 모여 열리는 질판위는 오후 3~4시간 동안 약 15건에 대한 승인 여부를 판단하며, 신청자 1인당 많게는 A4용지 100쪽에 달하는 자료를 검토해야 한다. 이마저도 여러 차례의 제도개선을 통해 1회 회의당 판정건수를 줄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질판위원의 약 80% 정도가 의사 출신인 것이 꼭 ‘공정한 판결’을 담보하진 않는다고 보고 있다. 질판위에 참석한 의사의 전공과 신청자의 질병이 무관할 경우 해당 의사의 의견이 꼭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최승현 노무사는 의사 비율이 너무 높은 것이 불승인율 상승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의사들은 학자적 입장에서 의학적 엄밀함을 보고, 그러다보니 불승인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학적 인과관계와 법률적 인과관계는 다를 수 있다”며 법률 전문가들이 좀 더 질판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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