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부도위기 맞은 용산개발

“서부이촌동은 장기적으로 추진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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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래 단국대 교수, 오세훈 전 서울시장 책임 거론

31조원 규모의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용산 개발사업)이 부도위기를 맞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풀어야 하나. 3월 20일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과)를 만났다. 조 교수는 그동안 무분별한 도시재개발사업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학자로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에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도 참여했다. 그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책임을 거론하며 공영성을 강화하는 조건 하에 용산 개발사업을 정상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좌초위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사업성을 과도하게 부풀렸다. 31조원 규모 사업인데도 출자사들이 투자를 너무 적게 했다.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부동산시장 침체가 시작되고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자본금이 바닥났다. 부동산시장 활황기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난 대규모 뻥튀기 프로젝트의 실패다.”

[특집| 부도위기 맞은 용산개발]“서부이촌동은 장기적으로 추진했어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용산 개발을 한강르네상스와 무리하게 연계해 일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부이촌동이 용산 개발사업에 포함된 게 왜 문제였나.
“한강르네상스는 오세훈 전 시장의 대표 정책이었지만, 경제적 타당성을 갖춘 사업은 아니었다. 정치적 프로젝트였다. 그 중에서도 용산 개발과 결부된 워터프론트 개발사업은 황당한 프로젝트였다. 서해를 통해 중국과 한강을 오가는 배가 정박할 선착장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경제적 타당성이 없었다. 오 전 시장이 2007년에 용산 개발사업을 한강르네상스와 연결하면서 통합개발을 추진했는데, 문제의 핵심은 보상비와 주민 민원이다. 서부이촌동 아파트 단지는 당시 기준으로 지은 지 2년밖에 안 된 곳들도 있었다. 주민 반발도 심했고 보상문제도 심각했다. 그러다보니 사업 진척이 제대로 안 됐다. 그럼에도 시행사는 100% 분양을 확신했다. 당시는 부동산이 활황이던 시절이라 말뚝만 치면 사업이 된다고 믿을 정도였다.”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용산 개발사업 자체는 최소한의 합리성은 있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민주적인 관점에서 주민과 논의하고 합의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서부이촌동을 포함시켜야 했다면 30∼40년 정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어야 한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주택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도록 하고, 개발수요가 확실히 나타나고 주민 동의가 됐을 때 단계적으로 추진했어야 했다.”

오 전 시장이 대규모 건설사업에 욕심을 내게 만든 구조적인 요인은 뭔가.
“객관적으로 보자면 개발수요가 있다. 서울은 급조된 도시다. 아파트도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한 세대 동안만 살 수 있다. 20년만 지나도 재건축 대상이 된다. 도시 전역이 개발수요라고 할 수 있다. 또 우리나라의 행정은 대부분 개발행정이다. 중앙도 그렇고 지방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주민들이 원한다. 문제는 이러한 제반 조건들을 단체장들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과 결합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경우다. 사실 ‘한강을 살린다’는 얘기는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들이 너나없이 했던 말이다. 당시 강금실 후보에게 내가 한강르네상스 의제를 제안해 실행과제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만큼 ‘한강르네상스’가 오세훈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이건 이명박의 청계천 효과 때문이었다. 청계천 개발의 정치적 효과를 한강에 적용하겠다는 생각들이 있었던 거다. 오세훈 전 시장은 시장이 되고나서 한강르네상스와 관련된 여러 논의를 모아 훨씬 더 개발성향이 강한 것으로 바꿨다.”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제동을 걸 수는 없었을까.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는 기술적인 부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어떤 사업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결정하기는 어렵다. 이미 법적 절차를 거친 내용들이 도시계획위원회로 올라오기 때문에 사업을 보류시키거나 무력화하는 건 커다란 절차상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한 힘들다.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어떤 사업이 도시에 미칠 영향력을 포괄적으로 검토할 때 중요한 건 누가 위원회에 참여하느냐다. 위원들 중에는 개발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환경이나 시민의 관점을 중요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위원회 구성에 단체장의 코드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단체장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위원회에 들어가 있으면 시장의 노선에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제도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나.
“우선 개발 관련 제도 자체가 단체장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제도가 아주 부족한 것도 아니다.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단체장의 철학과 스타일이 중요하다. 단체장이 자신의 권한을 시민들에게 많이 돌려주는 방식으로 시정을 펼쳐야 한다.”

코레일 같은 공기업이 개발사업에 뛰어드는 건 어떻게 봐야 하나.
“공기업이라고 개발사업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용산 개발사업이 코레일 본연의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코레일이 개발사업에 뛰어든 건 경부고속철도(KTX) 건설사업에서 생긴 국가채무 4조5000억원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이 뻥튀기 된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는 중앙정부의 책임도 있다. 그럼에도 코레일이 공기업으로서 최소한의 원칙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민간투자자들에게 많은 걸 맡겨놨다. 그들이 시장을 훨씬 더 잘 안다고 본 거다. 지금 돌아보면 코레일이 공기업으로서 고민해야 할 공공성의 문제를 가볍게 취급했다.”

용산 개발이 1차 부도를 맞았고 앞날은 불투명하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사업 규모가 워낙 커서 실패할 경우 부정적인 경제적 파급효과가 우려된다. 사업 자체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가능하면 정상화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현재의 사업 내용과 추진 구조를 그대로 두고 정상화할 수는 없다. 원점에서 다시 고민해야 한다. 코레일이 내놓은 정상화 방안에 대해서는 몇 가지를 심층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먼저, 출자자들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둘째, 앞으로 코레일이 주도한다면 사업의 공공성이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서울시도 도와줄 명분이 생기고 지나친 거품을 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업을 아주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2016년까지 끝내는 건 불가능하다. 서울시가 그동안의 방관자적 입장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만 서울시가 코레일에 공공시설 무상귀속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이럴 경우 다른 개발사업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시민사회의 저항이 없도록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글·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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