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국형 토빈세 도입 탄력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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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부, 대선 당시 입장 바꿔 필요성 언급… “외환시장 움직임 우려 통제장치 필요”

“토빈세와 관련해 ‘하겠다’는 내용이 계획서(국정과제 보고서)에 포함된 바는 없지만, 우리 경제의 안정성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는 대안 중에 하나다.” 강석훈 대통령직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이 2월 21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국정과제 발표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토빈세 도입에 대한 논의가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토빈세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인수위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실무자 선에서 토빈세 도입과 관련된 논의를 했다는 것이 전해지면서다.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된 조원동 조세연구원장도 ‘평시에는 낮은 세율, 위기 시에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2단계 토빈세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 홍도은 기자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 홍도은 기자

외환거래에 세금 매기는 토빈세
토빈세는 국경을 넘나드는 단기 외환거래에 금융거래세를 매기는 것으로, 이것을 제안한 미국 예일대 제임스 토빈(James Tobin) 교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토빈 교수는 당시 외환·채권·파생상품·재정거래 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국제 투기자본의 급격한 자금 유출입으로 각국의 통화가 급등락해 통화위기가 촉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방안의 하나로 토빈세를 제안했다. 당초 모든 외환거래에 세금을 매기자는 토빈세의 아이디어는 금융상품 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금융거래세로 진화해 왔다.

과격한 세금으로만 알려진 토빈세가 공론의 장에 고개를 내민 것은 대선 당시였다. 지난해 10월 29일 김광두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힘찬경제추진단장은 “투기성 자금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기존의 여러 장치도 있긴 하지만 추가적으로 지금 전 세계적으로 토빈세 같은 것이 논의되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해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김 단장이 토빈세 도입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는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화답했다.

안타깝게도 토빈세 논의가 지속되진 못했다. 대선 과정에서 중요한 경제 이슈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데다 기획재정부가 “토빈세는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추진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한 국가의 일방적 과세에 의해 금융거래가 역외금융시장으로 이동하게 돼 원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빈세 도입에 선을 긋던 재정부가 최근 대선 때와는 달리 ‘한국형 토빈세’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미국, 일본 등이 ‘자기들의 숙제’를 하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숙제’를 해야 할 시기”(재정부 최종구 차관보)라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따른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으로 한국 경제가 해외자본 유출입 확대라는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이를 통제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자본시장 자유화의 첨병인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완전한 자본 자유화가 항상 모든 국가에 바람직한 것은 아니며, 필요하면 자본 유출입 관리방안을 도입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하며 기존의 입장을 수정했다.

최 차관보는 1월 3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해외자본 유출입 변동성 확대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세미나에서 “토빈세가 지향하는 단기 해외 투기자본 규제 취지를 살려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제도 도입 후 시행유보 포함)한 다양한 외환거래 과세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근 유럽연합(EU) 11개국이 도입하기로 합의한 채권거래세와 관련해선, 유럽연합의 도입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논의와 검토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환정책을 담당하는 재정부 고위 관계자가 외환거래 과세방안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외환거래세 등 관련 제도를 공론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제도 도입 땐 8000억 추가 세원 확보
최 차관보는 “지난해 4분기 이후 대외 여건 및 외환시장의 움직임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급격한 해외자본 유입은 1997년, 2008년, 2011년 등과 같이 위기의 징후가 나타날 경우 급격한 유출입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 거시건전성 조치의 경우 과도한 해외 포트폴리오 자금 유출입 대응에는 일부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파고가 높아진 만큼 더 높은 제방을 쌓지 않으면 쓰나미에 휩쓸려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차관보는 다만 “모든 국가들이 외환시장 현물거래 전체에 대해 단일한 세율로 과세해 투기성 단기 해외자금의 유출입을 억제하는, 원래 의미의 토빈세를 도입하는 건 곤란하다”고 밝혔다. 그는 “최초 제안 당시에 비해 현물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파생거래가 증가하는 등 시장 여건이 크게 변해 외환파생시장을 통해 규제를 회피하는 게 가능하고, 규제 대상으로 하는 투기적 해외자금과 그 이외의 자금(FDI, 해외직접투자, 수출입 관련 자금 등)의 구별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규범과의 정합성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두 의원(민주통합당)은 국회 예산정책처에 세수 추계를 조사 의뢰한 결과 자신이 대표발의한 한국형 토빈세법을 도입할 경우 연간 추가로 거둘 수 있는 세원이 8029억원이라고 밝혔다. 민 의원이 지난해 11월 대표발의한 한국형 토빈세법은 평시에는 저율을, 위기 시에는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2단계 토빈세 방식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국형 토빈세 도입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이 같은 흐름은 당장 토빈세를 도입하려는 것이라기보다 한국 정부의 환율 방어 의지를 시장에 강력히 알리는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나라와의 공조 없이 단독으로 부과할 경우 자본유출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반대 논리도 여전하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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