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의 격려가 재능을 꽃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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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5일. 이메일이 한 통 배달되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SVA(School of Visual Arts)의 컴퓨터아트과에 재학 중인 최원석씨가 발송인이었다. 최씨는 캐나다 토론토 인근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 스쿨(TCS)의 졸업 작품으로 만든 ‘디스토피아’라는 타이틀의 영화를 보내왔다. 유튜브에 올려져 있다며 감상평을 보내달라고 했다. 최씨는 “5개국에서 온 50여명 이상의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만든 영화이고, 현재까지 TCS에서 제작된 가장 큰 학생 개인의 프로젝트”라고 소개하며 “아직은 서툴고 미숙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만들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썼다. 영화를 보며 한 청년이 꿈을 찾아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캐나다 트리니티 칼리지 스쿨의 음악수업 모습.

캐나다 트리니티 칼리지 스쿨의 음악수업 모습.

2007년 11월. 필자는 <주간경향>에 ‘세계 명문학교를 가다’를 연재하기 위해 캐나다의 사립학교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트리니티 칼리지 스쿨에 다니는 최씨를 인터뷰했는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가 영화감독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방과 후 과외활동으로 영화반에 들어간 그는 학교에 부족한 촬영기자재를 구입해줄 것을 요구했다. 뜻밖에도 학교에서는 캠코더를 비롯해 값비싼 장비를 구입해주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영화감독의 꿈에 도전하게 되면서 새로운 희망이 솟았다고 했다.

2008년 9월.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에 다니던 박종화군은 음악에 두각을 나타낸 학생이 아니었다. 공부도 뛰어나지 않았다. 이 정도 되면 한국 학교에서 교사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한국에서 교사들이 ‘예뻐해주는 학생’은 성적이 월등할 경우다. 이런 학생이 갑자기 학교에 오케스트라를 만들겠다며 혼자서 동분서주했다. 음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수소문해 결국 작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박군은 교사들을 설득해 연습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비협조적이었고 교장실을 찾아가자 겨우 연습실을 내주었다. 오케스트라반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007년과 2008년 비슷한 시기에 한국과 캐나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하는 캐나다와 한국의 차이가 천양지차다.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과 소질을 계발하려면 공부를 잘 해서 교사들에게 주목을 받고 명문대에 진학하는 길밖에 없다. 공부 이외에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서러운 투쟁을 홀로 해야 한다. 반면 캐나다의 최원석군은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영화감독의 꿈을 착실히 키워갈 수 있었고, 미국 대학에 진학해 영화를 전공하고 있다.

박종화군은 음악가로서의 꿈을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지휘자의 꿈을 키웠다. 어머니 김계옥씨는 중2 아들이 ‘지휘캠프’에 보내달라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정형편으로는 음악가로 키울 수 있는 여력이 안 되었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아들의 요구가 완강해 일단 보내주기로 했다. 주변을 수소문한 결과 아는 사람을 통해 지휘캠프를 소개받고 반 값에 보낼 수 있었다. 지휘캠프에 온 사람들은 모두 성인이었는데 중학생은 박군뿐이었다고 한다. 박군은 오케스트라를 할 때 편곡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작곡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지휘캠프에 다녀오면서 지휘보다는 작곡을 더 배우고 싶었다. 지휘캠프에서 알게 된 분들에게 조언을 구한 결과 작곡을 하려면 화성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박군은 부모님에게 말씀 드릴 수도 없어 혼자서 학원을 알아보았다. 중3이 되자 박군은 부모에게 “작곡을 공부해 예고를 가고 싶다”며 자신의 결심과 꿈을 말했다.

학교에서 불가능하다고 했던 예고에 당당히 합격하고, 매사 적극적으로 변한 박종화씨는 결국 서울대 작곡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사진은 박종화씨(왼쪽) 가족 모습.

학교에서 불가능하다고 했던 예고에 당당히 합격하고, 매사 적극적으로 변한 박종화씨는 결국 서울대 작곡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사진은 박종화씨(왼쪽) 가족 모습.

그런데 박군의 음악적 재능은 뜻밖에도 학원 영어강사가 알아주고 용기를 주는 역할을 했다. “학원 영어선생님이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었는데, 영어교재로는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니까 음악을 가지고 영어공부를 진행했다고 해요.” 그때부터 박군은 영어에도 흥미를 갖게 되었고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어머니는 학원에 보내 성적이 안 올라도 학원비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좋은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이 많아 세심하게 보살필 수 없잖아요. 학원 선생님들은 수가 적으니까 학생들을 세심하게 보살필 수 있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교육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교육은 오직 명문대 입시에 목을 매며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 계발에 뒷전인데,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하며 부모의 허리를 휘게 하는 학원강사가 학생이 재능에 눈뜨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니 말이다. “처음엔 저도 아이 스스로 나름대로 공부하길 바랐는데 학원에 보내면 다니다 그만두곤 했어요. 학원이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고 그만두지 말았으면 했는데 내 능력으로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은 선생님(학원강사)을 찾아가 부탁했어요. ‘성적 부담 갖지 마시고 숙제 안 해도 뭐라고 다그치지 마시고 그냥 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그야말로 지혜로운 어머니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어머니들은 학원에 보내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학원을 끊거나 다른 학원으로 갈아탄다. 하지만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은 다른 학원에 보내도 마찬가지다. 결국 학원을 전전하게 된다. 김씨는 “아이가 학원에 다니면서 성적이 안 나와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고, 더욱이 작곡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박군은 학원에서 불가능하다고 했던 예고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것도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공립을 택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부쩍 자신감이 들어서인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공부나 방과 후 활동이나 매사 적극적인 학생으로 변했다. 도서관에 ‘클래식과 친구하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결국 박군은 서울대 작곡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박군의 경우에서 한 학생이 재능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독려하는 ‘멘토’와 같은 존재가 있어 도움과 조언을 얻으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알게 한다. 박군에게는 영어와 수학·음악 학원 강사가 멘토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와 교사가 변해야 한다. 학생들이 재능을 발휘하게 다양한 방과 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공부 잘 하는 소수의 학생을 위한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를 좀 못해도 자신만의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재능을 찾고 키워갈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그런 나라에서 자녀를 교육시키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모두 속이 시커멓게 타고 있다. 학교 교사가 아니라 학원 강사가 학생의 재능을 키워주고 용기를 더 북돋워주는 게 현실이라면 교육선진국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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