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북한 3차 핵실험

시험대 오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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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북핵 문제로 강경파 목소리 커져 출범부터 남북관계 ‘표류가능성’

지난 2월 12일 북한의 제3차 핵실험 강행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 남북관계가 파국을 맞고 있다.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대북정책과 관련해 강경보수파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대북 강경일변도 정책으로 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군과 안보 중시하는 박 당선인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북한 관련 행보를 보면 대선후보 시절 공약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북정책 공약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요약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란 남북한 간에 점진적으로 신뢰가 쌓이고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국제사회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젝트로 남북관계 정상화와 발전을 꾀하겠다는 구상이다. 즉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꽉 막혔던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궁극적으로 통일로 가는 길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박근혜 후보의 대북정책 공약에서 주목할 것은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관련해 북한에 사과를 요구하되, 이와는 별개로 대북 인도적 지원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북정책 공약은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와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등이 입안했다. 박근혜 후보의 대북정책 공약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강경정책보다는 완화했지만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월 13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인수위원인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내정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 내정자 등과 함께 국정과제토론회를 갖고 모두발언을 통해 북핵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인수위 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월 13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인수위원인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내정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 내정자 등과 함께 국정과제토론회를 갖고 모두발언을 통해 북핵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인수위 사진기자단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공약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을 계기로 급속히 강경일변도로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의 대북정책 공약이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수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12일 대선정국이 한창일 때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우리나라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결의에 정면으로 위반된다”며 “북한이 우리나라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로켓을 쏘는 등 아무리 발버둥쳐도 국민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피말리는 접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대북 강경발언으로 보수세력의 결집을 유도했다.

이번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 사태와 관련해서는 박근혜 당선인의 북한에 대한 메시지는 더욱 강경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아무리 많은 핵실험으로 핵 능력을 높여도 그걸로 국력을 소모하게 된다면 결국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자초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3차(핵실험)가 아니라 4·5차 핵실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협상력이 높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박근혜 당선인은 북한이 핵실험을 한 당일인 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흔들림 없는 대북정책을 견지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최근 박근혜 당선인이 지나치게 군과 안보를 중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청와대 조직개편에서 실장이 장관급인 국가안보실을 신설했으며, 외교·국방·통일 문제를 담당하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비서관이 국가안보실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여기에 청와대 경호실장도 장관급으로 격상시켰다. 북한의 도발사태 등 위기관리를 담당하는 국가안보실장에는 김장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가 임명됐다. 대표적인 매파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는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면서 다른 인사들과 달리 고개를 숙이지 않아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대북 강경파다. 청와대에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이 별도로 분리돼 있는 것과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두 조직이 서로 비슷한 기능을 하는데 굳이 따로 둘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박근혜 당선인이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을 분리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국가 위기 관리라는 차원에서 봤을 때 이 두 조직은 중복되므로 따로 떼어둘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남북간 대화 주장하는 목소리는 안 나와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선인 주변에서 대북 강경 목소리가 지나치게 큰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북한의 핵실험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정면 위반”이라며 “동시에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이자 동북아 평화와 번영에 심대한 위협을 주는 만행”이라고 비판했다. 정몽준 전 대표, 원유철·이노근 의원 등은 핵무장론까지 주장하고 있다. 정몽준 전 대표는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우리도 최소한의 자위력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국에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방부가 개발해 배치했다는 순항미사일. | 국방부 제공

국방부가 개발해 배치했다는 순항미사일. | 국방부 제공

여기에 국방부 등 군당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맞서 연일 강경 발언을 내고 있다. 최근 국방부는 북한 전역을 즉각 타격할 수 있는 순항미사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순항미사일은 한국형 국축함과 잠수함에서 발사되며, 사거리는 1000㎞로 축구장 1개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국방부 관계자의 말이다.

군 일각에는 미사일과 핵무기에 대해 선제 타격하는 ‘킬 체인(Kill Chain)’ 시스템 얘기도 계속 나오고 있다. 북한 핵탄두 미사일 등 핵무기에 대해 선제타격을 한다면 ‘탐지-식별-결심-타격’ 순서로 진행된다. 이를 ‘킬 체인’이라고 한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10월 미사일 지침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당초 2015년까지 ‘킬 체인’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그러나 군당국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계기로 이를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박근혜 당선인과 여권에서는 남북간의 대화와 교류를 주장하는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고 있다. 대북 온건파(비둘기파)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온건파로 분류됐던 최대석 교수도 인수위원을 사임했다. 그동안 최 교수는 통일부 장관 기용설이 꾸준히 나돌았다. 특히 박근혜 당선인은 이번 1차 내각 발표에서 외교부와 국방부 장관 내정자는 발표했지만 외교안보라인의 또 다른 축인 통일부 장관을 발표하지 않았다.

“압박과 대화 투트랙 전략구사가 효율적”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2월 말 출범한 이후에도 남북관계는 상당 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이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수정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기대됐던 5·24조치 부분 해제와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와 관련,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은 대북정책의 원칙적인 것이었다”며 “앞으로 통일외교안보팀이 새롭게 구성되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북정책의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라인의 면면에 따라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김장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월 24일 경기 연천군 육군 5사단 열쇠전망대를 찾아 과학화경계시설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 인수위 사진기자단

김장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월 24일 경기 연천군 육군 5사단 열쇠전망대를 찾아 과학화경계시설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 인수위 사진기자단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근시안적 사고라는 비판도 있다. 지금은 미국 등 국제사회가 남한과 공조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지만 언제 북한과 미국 간에 대화의 장이 마련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미국과는 대화하고 남한과는 대화를 봉쇄하는 이른바 ‘통미봉남 정책’을 들고나온다면 박근혜 정부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과거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 때 상황을 보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때는 1개월 만에 중국의 중재로 북·미 간에 대화가 시작됐고, 2009년 5월 2차 핵실험 때는 3개월 만에 빌 클린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 스티븐 보스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영삼 정부를 ‘통미봉남 정책’으로 소외시켰듯이,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미국과만 대화하고 우리 정부와는 대화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3∼6개월 안에 북·미 간에 대화를 위한 접촉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2기 오바마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존 케리 국무장관 등 대화파로 구성돼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박근혜 당선인이 장기적인 전략 차원에서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즉 박근혜 정부가 압박과 대화라는 투트랙 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대북정책이 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투트랙 정책이란 박근혜 정부가 한편으로는 유엔의 대북제재에 참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북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트랙 정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북핵문제를 유엔의 제재로만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 해결은 미국 등 한반도 주변국과 북한의 정치적 협상으로만 가능하다. 여기에 남북경협,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 남북 현안을 계속 방치할 수도 없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박근혜 정부가 지금부터 남북 대결 일변도로 나가면 북핵도 막지 못하고 남북관계도 악화해 무력충돌과 전쟁의 위협을 안고 살아야 했던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반복할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현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국가) 이익을 생각해서 취임 초부터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나름대로 진정성을 갖고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끊어졌던 남북간 상시 대화채널 복원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핵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와 적정수준에서 동참하되, 한편으로는 대북 대화채널을 복원시켜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는 국제기구 또는 민간 차원의 대북 간접지원을 할 수 있고, 이를 계기로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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