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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텅 빈 관중석’을 지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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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교통여건 탓에 주중경기에 평균관중이 2000명도 찾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벌써 나오기도 했다.

눈부신 성장세를 타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는 2013년을 새로운 도약점으로 삼았다.

‘리그 확대’가 이뤄지는 첫 시즌이다. 9번째 구단인 신생팀 NC 다이노스가 올해부터 700만 관중을 넘어선 1군 리그에 참가한다. 얼마 전에는 10구단 수원-KT가 총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10구단 체제를 향한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 있던 야구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불거졌다.

NC의 신축구장 입지 선정 문제가 오프시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리그 확대에 따른 기대와 희망만큼 걱정도 많은 2013시즌.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터진 ‘NC-창원 사태’를 야구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1월 7일 올 시즌 처음으로 리그에 뛰어드는 신생팀 NC 다이노스 선수들이 경남 창원 마산구장에서 시무식을 가진 뒤 단체 러닝으로 첫 훈련을 시작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1월 7일 올 시즌 처음으로 리그에 뛰어드는 신생팀 NC 다이노스 선수들이 경남 창원 마산구장에서 시무식을 가진 뒤 단체 러닝으로 첫 훈련을 시작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구단 유치 뒤 돌변한 창원시
9구단 NC를 유치한 통합 창원시의 ‘말바꾸기’ 논란이 뜨겁다. 박완수 창원시장은 2010년 10월 새 구장 건축을 약속하며 KBO로부터 제9구단 유치를 성사시켰다. 당시 박 시장은 “일본 히로시마·미국 피츠버그 야구장처럼 휴식과 문화공간이 복합된 구장으로 만들겠다. 프로야구단이 우리 고장에 생기면 시민이 하나로 융합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KBO와 적극적으로 협조해 좋은 성과를 내겠다”고 했다.

약 2년이 흐른 뒤 박 시장은 그때 약속을 모두 잊은 듯했다. 모두가 걱정했던 일이 현실화했다. 박 시장은 1월 30일 창원시청 브리핑룸에서 “NC의 신축 야구장 부지로 진해 옛 육군대학 부지를 최종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야구계와 야구팬들은 술렁거렸다. 창원시가 신축구장 터로 발표한 진해 육군대학 부지는 2차 타당성 평가 때 34곳 중 11위에 그쳤다. 관중 동원의 필수요소인 풍부한 배후인구를 갖추고, 주변 도심의 상권 및 교통망이 연계된 부지가 아니다. 이미 한국야구위원회(KBO)와 NC가 접근성과 흥행성을 이유로 반대한 곳이기도 하다. 진해는 인구 18만명의 소도시다. 50만명이 있는 창원과 40만명이 사는 마산을 옆에 두고 진해를 선택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낙후된 교통여건 탓에 주중경기에 평균관중이 2000명도 찾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벌써 나오기도 했다.

박 시장은 “선진 스포츠 시설의 균형배치, 통합도시 균형발전가치, 통합 창원시 100년 대계를 위한 미래성장가치 창출 측면을 감안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지만 이를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처럼 창원시는 9구단을 유치한 직후부터 늘 고자세였다.

새 구장 입지와 예산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구단 유치에 성공한 뒤 창원시의회는 유치 반대를 주장했다. 또 통합 창원시를 놓고 창원이 시청사를, 마산이 경남도청사를, 야구장은 진해로 보내자는 ‘지역안배론’이 나와 야구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최근에는 야구장 문제로 NC와는 전혀 소통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가 신축 야구장 부지를 진해로 발표하며 약속한 2016년 3월 완공도 사실상 어렵다. 그린벨트 지역인 육군대학 부지를 넘겨받아 야구장을 짓기 위해서는 시가 진해구 풍호동 옛 시설운전학부 부지에 해군 관사 500가구를 지어 등기까지 마쳐야 한다. 해군아파트 완공 시점은 2015년 상반기로 1년 만에 야구장을 짓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해군에서는 “부지 사용에 대한 권리를 미리 인정해달라는 창원시의 요청도 아직 없다”고 했다.

일단 한 발 물러선 NC·KBO, 그러나…
그런데도 박 시장은 당당하다. “KBO가 신축구장 부지 선정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많은 말을 하고 있는데 대단히 유감스럽다. KBO는 우리 시의 상급기관이 아니다”, “연고지를 왜 옮기느냐. 우리는 협약을 파기한 적 없다. 오히려 (우리와 약속을 지켜야 할) KBO와 NC의 의무도 존재한다”는 강경한 말로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국 NC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 피츠버그 PNC파크를 짓겠다’는 장밋빛 약속을 믿고 있던 NC는 창원시의 일방적 부지 발표에 패닉상태다. NC는 발표 직후 마라톤 회의를 거친 뒤 “발표된 부지는 시민들을 위한 것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결정이라고 본다”며 “이번 결정은 대다수 시민들에게 불편과 고통을 강요하고, 시민들이 그 결정과정에서 배제된 것이기에 구단으로서는 수용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시의 일방적인 결정에 팬들은 납득할 수 없다며 단단히 화가 났다. 1월 24일 NC 서포터 모임인 ‘나인하트’가 창원시청에서 신축구장 입지로 마산지역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남 창원시의 일방적인 결정에 팬들은 납득할 수 없다며 단단히 화가 났다. 1월 24일 NC 서포터 모임인 ‘나인하트’가 창원시청에서 신축구장 입지로 마산지역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NC 연고지 이전 최악의 상황 올 수도
상황이 급변하지 않는 이상 NC는 창원시의 약속 불이행으로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맡긴 예치금 100억원도 날릴 위기다. NC는 구단 창단 승인을 받은 지난 2011년 ‘향후 5년간 NC가 야구단을 운영하고, 2만5000석 규모의 신축구장을 건립한다’는 조건으로 예치금을 걸었다. KBO 관계자는 “기간 내에 신축구장 건립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예치금을 야구발전기금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NC는 “일단 이번 시즌은 지난 2년간의 땀이 밴 마산야구장에서 멋진 야구를 해나가겠다”며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KBO 역시 신중하게 접근 중이다. KBO는 이날 “정치적 고려가 아닌 산업적 타당성을 고려해 선정되기를 믿어왔으나 이 같은 바람을 저버렸다”며 강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NC의 회원 가입 신청 때 창원시가 밝혔던 대로 신축구장 입지에 대한 여론수렴 과정과 3단계 타당성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2016년 3월까지 신축구장을 짓겠다는 창원시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잠시 소강상태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사실 결정 번복이 아닌 이상 창원시의 신축구장 입지 결정을 제재할 방법은 없다. KBO와 NC는 창원시의 결정이 정치적인 배경이라는 점을 내세워 창원시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근거 요구’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은 NC가 연고지를 옮길 수 있는 권리를 행사했을 때다. KBO와 지자체 간 법적 분쟁은 물론 야구팬들의 마음을 잃을 수도 있다. 야구계에서는 벌써 서울 입성을 위해 기존 연고지를 포기해 흥행에 어려움을 겪었던 ‘제2의 현대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이정호 스포츠경향 체육부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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