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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전반기 ‘꼴찌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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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참패를 당했던 러시앤캐시가 ‘환골탈퇴’한 것은 ‘명장’ 김호철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을 꼽을 수 있다.

뚜껑이 열리자 돌풍과 이변의 연속이었다. 겨울 스포츠의 꽃인 NH농협 2012~2013 프로배구 V-리그가 1월 3일 전반기 라운드를 마치고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간성적표를 받아든 남·여 12개 팀들의 희비는 극명했다. 쉴 틈조차 없이 전력 재정비에 나서야 하는 팀이 있는 반면,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스키장에서 달콤한 휴가에 들어간 곳도 있다.

불꽃 튀는 후반기 결투를 앞두고 중간성적표를 통해 전반기를 되돌아봤다.

지난해 12월 12일 충남 아산 이순신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배구 러시앤캐시와 현대캐피탈의 경기. 공격에 성공한 러시앤캐시 선수들이 김호철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2일 충남 아산 이순신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배구 러시앤캐시와 현대캐피탈의 경기. 공격에 성공한 러시앤캐시 선수들이 김호철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돌풍 주도 러시앤캐시·기업은행
예상을 뒤엎고 꼴찌와 신생팀의 반란이 일어났다. 남자부 러시앤캐시는 ‘김호철 매직’을 연출했다. 주인 잃고 한국배구연맹(KOVO)의 직영관리를 받는 러시앤캐시의 성적은 밑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창단 당시 다른 구단들이 ‘젊은피’를 몰아줬지만 모래알 같은 팀으로 변색된 지 오래였다.

시즌을 출발할 때만 해도 지난해 이상의 성적은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개막 후 8연패를 당하면서 끝 모를 추락이 계속됐다. 하지만 KEPCO를 제물로 마수걸이 승리를 챙기더니 3연승을 달리기 시작했다. LIG손해보험에 0-3으로 패했지만 ‘디팬딩 챔피언’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을 차례로 격파하고 3라운드를 4승1패로 마쳤다. 비록 6승9패(승점 17)로 4위 대한항공을 승점 9점 차로 추격하며 5위로 전반기를 마쳤지만, 가파른 상승세 때문에 4라운드 이후 대반전을 예고하고 있다. LIG손해보험만 잡으면 ‘창단 후 첫 전 구단 상대 승리’라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

연일 참패를 당했던 러시앤캐시가 ‘환골탈퇴’한 것은 정규리그 개막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박희상 전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넘겨받은 ‘명장’ 김호철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을 꼽을 수 있다. 김호철 감독은 시즌 중에 어그러진 톱니바퀴를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했다. 박희상 전 감독과의 불화로 훈련 양이 부족했던 선수들에게 조직력과 패기를 불어넣었다.

특유의 ‘호통’ 대신에 선수들의 ‘기(氣)’를 살려 팀을 일으켜세웠다. 김호철 감독은 친정팀 현대캐피탈을 풀세트 접전 끝에 두 차례나 침몰시켰고, ‘거함’ 삼성화재와 대한항공까지 완파했다. 러시앤캐시의 돌풍은 프로배구 인기의 수직상승 효과도 가져왔다. 후반기 성적은 러시앤캐시에 물어봐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재의 가파른 상승세라면 자력으로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꼴찌팀이 명문팀을 차례로 격파하는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 러시앤캐시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올스타 브레이크’를 보내면서 후반기를 준비한다.

여자부 신생팀 IBK기업은행도 1위로 전반기를 마치면서 ‘돌풍’을 주도했다. 12월 27일 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서 재역전패를 당하면서 비록 10연승이 무산됐지만, 현재 추세라면 정규리그 우승도 사실상 사정권에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점 38점(13승2패)을 기록한 기업은행은 2위 GS칼텍스와 승점 9점 차. 지난 시즌에 다소 부진했던 알레시아(득점 3위)·김희진(속공 1위)·박정아(퀵오픈 3위) ‘삼각편대’가 올 시즌에는 ‘무적함대’로 완전히 변신했다. 여기에 ‘이적생 트리오’ 남지연(디그 3위), 이효희(세트 4위), 윤희숙(리시브 1위)이 든든하게 뒤를 받치며 ‘신구조화’를 이룬 것이 1위 질주의 원동력으로 평가된다.

제2의 가빈 ‘쿠바특급’ 레오
12승3패, 전반기에 한 번도 1위를 내주지 않고 독주체제를 가동한 삼성화재의 힘은 ‘캐나다산 폭격기’로 불린 가빈의 뒤를 이은 레오(쿠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빈이 한국 무대에서 보여준 화려한 성적 때문에 레오는 시즌 전만 해도 ‘평가절하’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기우에 불과했다.

6개팀 용병 가운데 레오의 활약이 가장 빛났다. 15경기에서 472점을 폭발시키면서 가스파리니(현대캐피탈·388점)를 멀찍이 따돌리고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공격성공률(57.28%), 백어택(60.07%) 등 세 부문에서 1위에 올라 강력한 ‘포스트 가빈’ 후보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빈처럼 경력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으로부터 특유의 조련을 거쳐 ‘해결사’로 거듭났다는 점에서 가빈과 닮았다.

2012년 12월 18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배구 삼성화재와 KEPCO의 경기.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레오가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2012년 12월 18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배구 삼성화재와 KEPCO의 경기.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레오가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높이만큼의 파괴력은 아직 보여주지 못해 가빈처럼 압도적인 느낌은 덜한 편이다. 레오의 세트당 득점은 8.58점으로 지난 시즌 가빈(세트당 9.04점)보다 적다.

또다른 쿠바 출신 공격수 까메호(LIG손해보험)도 오픈(53.29%) 1위, 퀵오픈(69.77%) 2위 등으로 녹록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1라운드 초반만 해도 팀이 연패에 빠지면서 ‘부상설’에 휩싸이며 ‘LIG손해보험이 올해도 용병 농사를 잘못 지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한국 무대 적응도가 높아질수록 놀라운 파괴력을 자랑하고 있다. 화력뿐만 아니라 수비, 리시브, 블로킹까지 전천후 용병으로 활약하고 있다. 중위권 순위 분수령인 1월 3일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까메호는 블로킹 8점, 서브에이스 2득점 등 30점을 올리며 완승을 주도했다. 김요한의 부상으로 위기에 빠진 팀을 2위에 올려놓은 진정한 해결사로 평가된다.

여자부에서는 ‘특급 용병’ 몬타뇨(전 KGC인삼공사)가 떠난 빈 자리를 두고 각팀 용병들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휘트니(흥국생명)가 461점으로 득점 1위에 올랐고, 도로공사 니콜이 공격성공률(50.9%), IBK기업은행 알레시아가 오픈공격(51.03%)에서 각각 선두를 달리고 있다.

블로커 박상하·신인 이소연 ‘눈에 띄네’
국내 선수에서도 새로운 얼굴이 탄생했다. 속공에서는 지태환(삼성화재)이 성공률 64.29%를 기록해 지난 시즌 2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블로킹에서는 까메호에 이어 국내 선수 가운데 1위는 신영석(러시앤캐시·세트당 0.868개)이 지켰지만, 팀 동료인 박상하(세트당 0.864개)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박상하는 지난 시즌 세트당 블로킹 0.567개로 8위였지만 올해는 신영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러시앤캐시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비득점부문에서는 곽승석(대한항공)이 부상으로 주춤한 사이 임동규(현대캐피탈)가 리시브 1위를 달리고 있다. 세트당 리시브 5.520개, 수비(리시브+디그) 7.440개로 선두다. 지난 시즌 두 부문에서 이름도 올리지 못했지만 1년 만에 곽승석 못지않은 기록을 내는 ‘살림꾼’으로 거듭났다. 여자부는 GS칼텍스 여고생 신인 이소영이 용병 베띠가 부상으로 빠진 자리를 완벽히 메우면서 신인상을 사실상 예약했다.

[스포츠]프로배구 전반기 ‘꼴찌의 반란’

화려한 성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팀이 있는 반면에 추락의 끝이 보이지 않는 팀도 있다. 지난 시즌 승부조작의 여파로 주전선수들이 퇴출된 KEPCO는 고작 1승(14패)에 승점 2점을 올리면서 프로배구 흥행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상위 5개팀이 물고 물리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구단이 공기업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선수 수급을 외면하면서 자칫 올 시즌 2승도 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여자부 KGC인삼공사 역시 몬타뇨의 대체용병이 부상으로 출전을 하지 못하면서 1승(14패)에 승점 1점을 얻는 데 그치고 있다.

남녀 12개팀은 13일 올스타전을 전후해 브레이크 타임을 가진 뒤 15일부터 최종 레이스에 들어간다.

<김창영 경향신문 체육부 기자 bod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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