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올 대기업 인사 ‘2∼3세 전진배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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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대상 등 경영전면에 기용… LG는 성과주의 통해 세대교체 단행

11월 28일 LG그룹의 인사를 시작으로 대기업의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 인사에서 주목할 내용은 재벌가 2~3세의 전면 등장이다. 삼성·대상·GS칼텍스 등이 재벌가 2~3세를 경영 전면에 내세우는 인사를 했다. 또 다른 이슈는 성과주의 인사를 통한 세대교체다. LG는 예년과 다르게 성과주의 인사를 단행해 세대교체를 했다. 내년 세계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다. LG의 인사 스타일 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대기업은 사람이 아닌 성과 위주의 경영이 실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재벌 2~3세의 전면 등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부회장 승진이다. 지난 1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우리 애들(이재용 사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부사장)은 더 배워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의 자녀에 대한 평가가 진행 중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이재용 사장의 부회장 승진으로 이건희 회장의 의중이 정해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2010년 7월 구본무 LG그룹 회장(가운데)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 홀랜드의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2010년 7월 구본무 LG그룹 회장(가운데)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 홀랜드의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용의 사람들’ 대거 승진
삼성을 잘 아는 재계 인사는 “외부에서 이건희 회장이 아들과 딸을 지켜보는 중이라는 이야기가 오갔지만, 내부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지난해 이재용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예측이 높았다”면서 “이 부회장은 지금까지 경영수업도 많이 받았고, 경영승계는 이 부회장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삼성 인사에서 승진한 박근희 삼성생명 부회장, 이인용 미래전략실 사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상훈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 등은 이 부회장과 가까운 관계를 가진 이들로 꼽힌다. 지난 6월 갑작스러운 인사를 통해 ‘삼성의 2인자’라는 미래전략기획실장이 된 최지성 부회장까지 포함하면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데 좋은 상황이다. 삼성 관계자는 “외부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부사장이 경쟁관계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이 부회장이 이번 승진으로 경영 보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신세계그룹·대상그룹 등도 재벌가 자녀를 경영 전면에 내세우는 인사를 단행했다. 11월 30일 이뤄진 신세계 임원인사에서 구학서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표이사 7명을 교체하면서 세대교체 인사가 이뤄졌다. 정용진 부회장을 중심으로 경영을 하겠다는 인사라는 분석이 높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장녀 임세령씨는 그룹의 주력사인 대상의 상무로서 식품 브랜드 관리 총책임자로 임명됐다. 차녀 상민씨는 같은 회사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승진했다.

딸을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LG는 올해 인사 스타일에 큰 변화를 줬다. 그동안 LG는 ‘인화’와 ‘화합’를 강조하는 인사를 했지만, 이번 인사에서는 실적과 세대교체를 가장 중요하게 내세웠다. 재계에서는 놀랍다는 반응 일색이다. 한국인재전략연구원 신원동 원장은 “LG는 삼성과의 경쟁 때문에 성과주의 문화를 강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LG는 이번 인사에서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적극 추진했다”면서 “삼성이 성과주의 위주의 인사로 실적을 올리는 것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LG도 인화만 강조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고, 세대교체를 단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 고졸 출신 사장 승진 화제
LG그룹의 인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인자 역할을 담당해온 강유식 부회장과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오랫동안 일을 해왔던 강 부회장은 LG경영개발원으로 이동했고, 최장수 CEO로 꼽혀온 김반석 부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 부회장의 공석은 50대 초반의 조준호 LG 사장이 이어받았고, 김반석 부회장이 물러난 후 LG화학 신임 총괄 CEO는 박진수 사장이 맡게 됐다.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세탁기 사업부장이었던 LG전자 조성진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조 사장은 고졸사원 출신으로 사장 승진과 함께 홈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장으로 선임됐다. 최연소 사장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조준호 사장과 고졸 출신 조성진 사장의 등장은 LG인사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줬다. 조준호 사장은 휴대폰 2위 신화의 주인공이고, 조성진 사장은 세탁기 1등 신화의 주역이다. 성과를 내면 나이, 학력을 불문하고 중용한다는 구본무 회장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 인사다. LG 관계자는 “그동안 구 회장께서 ‘시장선도’를 강조했는데, 이번 인사에서 구 회장의 철학을 보여준 것”이라며 “그동안 그룹이 인화를 강조했지만, 앞으로는 경영평가에 좀 더 큰 비중을 둔다는 것을 보여준 인사였다”고 설명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도 “강유식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휴대폰 분야에서 지지부진한 분위기를 바꿔보겠다는 포석이다. 젊은 임원을 발탁한다는 것은 공격적인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 아니겠느냐”면서 “애플과 삼성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2강 체제를 LG까지 포함하는 3강 체제로 바꿔보고 싶은 것이다. 세대교체를 통해서 LG그룹을 바꿔보자는 의지를 이번 인사가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11월 30일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 기념식 직후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기념식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 30일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 기념식 직후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기념식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삼성의 인사는 철저하게 실적에 따라 이뤄진다. 올해 인사도 이 틀에서 진행됐다. 12월 5일에 이어 7일 삼성은 2013년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 485명의 승진 대상자를 발표했다. 부사장 48명, 전무 102명, 상무 335명이다. 삼성 측에 따르면 485명의 승진 대상자 중 30%는 무선사업본부 출신이 차지했다. 삼성전자가 역대 최고의 흑자를 기록한 데는 스마트폰 분야가 가장 큰 역할을 했는데, 이번 인사에 이를 반영한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전자 영업이익 중 70%인 15조원 정도가 휴대폰 사업에서 나왔다”면서 “이번 인사에서도 이를 반영했다. 삼성은 전통적으로 성과 위주의 인사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CEO를 연구하고 있는 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대기업이 성과주의를 기준으로 인사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기준이다. 다만 예년과 바뀐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면 승진했는데, 지금은 부서의 실적이 개인의 능력보다 더 중요해졌다”면서 “LG의 임원이 젊어졌다고 해도 삼성에 비해서는 젊은 임원의 비율이 아직은 낮다. LG 인사 스타일이 바뀐 것은 기업의 실적을 높이라는 자극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경영을 하려면 나이 많은 임원보다 젊은 임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대교체 인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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