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예술로 빚어낸 돈나푸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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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애호가들이 와인을 인생이고 사랑이라고들 한다. 그것은 포도나무의 일생이나 와인을 만드는 과정을 비유한 말이다.

돈나푸카타 와이너리 본사와 셀라가 있는 마르살라 항구로 가기 전 콘테사 엔텔리나 포도원을 방문했다. 섭씨 35도를 웃도는 뜨거운 날씨에도 마르살라 본사에서 온 안나 루이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4륜구동차로 갈아타고 농장장의 안내로 260ha의 포도원을 방문하였다. 황량하면서도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광활한 포도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황토와 검은 점토, 흰 모래로 구성된 포도원의 구릉이 파도처럼 이어지는, 시칠리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돈나푸카타의 마르살라 본사에 있는 지하와인셀라. 160년 역사의 셀라를 개축하여 현대화했다.

돈나푸카타의 마르살라 본사에 있는 지하와인셀라. 160년 역사의 셀라를 개축하여 현대화했다.

랄로 가문이 설립, 160년 전통의 역사
돈나푸카타 와이너리는 이 곳 외에도 판텔레리아 섬에 있는 68ha를 포함하여 총 328ha의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다. 돈나푸카타는 랄로(Rallo) 가문이 설립한 160년 전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3년부터 랄로 가문 4세대인 아버지 지오코모 랄로와 아들인 안토니오, 딸 호세에 의해 현대적인 와인 제조기법과 새로운 경영철학을 통해 세계적인 와이너리로 발전하였다.

1800년대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나폴리왕국의 여왕 마리아 캐롤리나(프랑스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트아네트의 3살 위 언니)가 시칠리아로 망명하여 3개월 동안 은둔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돈나푸카타는 팔레르모 귀족 출신의 소설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투사의 소설 <레오파드>에서 여왕 가족의 망명을 받아들였던 살리나 왕자의 소설 속 장원 이름이다. 소설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에서 몰락해가는 중세귀족들의 시대상을 잘 묘사한 걸작이다. 후에 영화로 제작되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아직도 당시의 궁전이 남아있다. 버트 랭커스타, 젊은 시절의 알랭 들롱 과 매력적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연기를 볼 수 있다. 이 곳 포도원에서는 토착품종 안소니카(Ansonica), 카타라토(Catarratto), 그레카니코(Grecanico)와 네로다볼라뿐만 아니라 국제적 품종인 샤르도네, 비오니에(Viognier), 카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시라 등을 재배한다.

콘테사 엔텔리나 와이너리 방문을 마치고 서쪽 80km 거리에 있는 돈나푸카타 와이너리의 본사와 셀라를 방문하기 위해 마르살라로 향했다. 마르살라 와이너리에 도착하니 수출마케팅 책임자인 마르타 가스파리 여사가 1851년에 세워진 역사적인 와인셀라로 안내했다. 1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셀라는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적인 시설로 개조되었다. 오크통에서 익어 가고 있는 와인의 향기가 잠시 필자를 취하게 하였다. 본격적인 와인 시음을 위해 별도로 마련한 시음장에 들어갔다.

시음은 돈나푸카타의 소유주인 안토니오 랄로가 직접 설명하면서 진행하였다. 총 9종류의 와인을 시음하였다. 국내에 잘 알려진 앙겔리(Angheli)도 와이너리에서 시음하니 매우 신선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와인은 리게아(Lighea)라는 화이트 와인이다.

가지치기 하지 않은 100년 넘은 포도나무
리게아 와인은 판텔레리아 섬에서 재배한 지비보(모스카토 달렉산드리아) 품종으로 만든다. 이 품종은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인들을 통해 들어왔다. 그래서 리게아는 진정한 아프리카 와인일지도 모른다.

이 곳 지비보는 가지치기를 전혀 하지 않은 자연 상태에서 보통 100년 이상된 나무들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해안 급경사지에서 자란다. 강렬한 태양과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열풍, 그리고 건조한 사막성 기후로 인해 마치 분재와 같은 작은 몸집으로 염분과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자란다. 옅은 녹색을 띤 해맑은 밀짚 색깔에 백장미와 아카시아 향, 서양배와 유자껍질의 향을 내는 복합적인 풍미는 정말 매혹적이었다. 오직 좋은 와인을 만들겠다는 돈나푸카타의 열정이 혹독한 기후와 척박한 토양을 이겨내고 빚어낸 진정한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돈나푸카타 와이너리 소유주 안토니오 랄로와 시음한 와인들.

돈나푸카타 와이너리 소유주 안토니오 랄로와 시음한 와인들.

돈나푸카타가 초청한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호텔에서 나와 마르살라 항구의 해변을 산책하였다. 마르살라(신의 항구 혹은 알라의 항구라는 뜻)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지명이기도 하지만, 이 지방의 토착품종인 카타라토·그릴로·인졸리아로 만든 강화 스위트 와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원래 마르살라는 난공불락의 고대 카르타고 제국의 요새였으며 지중해상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1차 포에니전쟁으로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이 상륙하여 이탈리아 통일의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항구도시다.

마르살라는 조리용 와인으로 더 알려져 있지만 현재는 품질 향상을 통해 세리나 포트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마르살라 역시 세리나 포트 와인처럼 우연과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1587년 영국의 드레이크 경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헤레즈의 카디즈 항구에서 선적을 기다리던 2900바렐의 와인을 전리품으로 가져간 것이 세리(헤레즈의 영어발음) 와인이다. 1750년대 영국이 프랑스와의 100년 전쟁으로 프랑스 와인의 수입이 금지되자 대체와인으로 값싼 포르투갈 와인을 수입하게 된 것이 포트(수출항 ‘오 포트’의 지명에서 유래) 와인이다.

1756년에 세리와 포트와인의 가격이 폭등했다. 영국의 상인 존 우드하우스가 풍랑으로 우연히 마르살라에 정박했다. 그는 이 곳 와인에 알코올을 첨가하여 영국에 수입했다. 이것이 마르살라 와인이 되었다.

에너지 절약과 자원 재활용 운동 펼쳐
유명한 ‘라 보테가 델 카르미네’ 식당까지 돌로 치장된 고색 창연한 골목길을 걸었다. 그 골목길은 낮 시간만 차량의 통행이 허용되고 저녁에는 테이블이 놓인 낭만적인 식당 거리로 변한다. 간단한 식전 주를 마치니 지배인이 오늘 요리할 각종 신선한 생선을 직접 가져와 선택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금태와 참치를 선택하고 요리방법은 식당에 맡겼다. 와인은 당연히 돈나푸카타의 리게아를 골랐는데 각종 생선요리뿐만 아니라 파스타와도 환상적인 궁합이었다.

돈나푸카타 와이너리의 광활한 콘테사 엔텔리나 포도원 전경.

돈나푸카타 와이너리의 광활한 콘테사 엔텔리나 포도원 전경.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을 인생이고 사랑이라고들 한다. 그것은 포도나무의 일생이나 와인을 만드는 과정을 비유한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와인은 가장 전형적인 문화상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인은 예술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돈나푸카타는 와이너리 이름뿐만 아니라 와인 레이블에도 예술가의 그림, 문학작품 속의 인물, 신화적 스토리텔링이 있다. 고대청동기 시대의 이 지역 이름인 안틸리아(Anthilia), 도주를 의미하는 음악의 한 장르인 라 푸가(La Fuga), 여왕이 은신하였던 산타마르게리타 벨리체 궁전의 모습과 천일야화를 상징하는 밀레에우나노태(Mille e una Note), 영화 <레오파드>의 여주인공 이름 세다라(Sedara),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라자드(Sherazade) 와인 등등.

돈나푸카타 소유주의 딸이자 재즈 뮤지션인 호세 랄로가 보컬을 담당한 <돈나푸카타의 와인과 음악> CD는 뉴욕의 유명한 재즈클럽 블루노트에서도 히트했던 음반이었다. 음악과 와인을 페어링(궁합 맞춤)한 내용의 CD 판매와 공연 수입으로 얻은 수익은 지역의 심장병어린이재단에 전액 기부하고 있다. 돈나푸카타는 피사대학과 공동으로 포도원 근교의 고대유적을 발굴·보존하고 있다. 야간 포도 수확, 태양광 발전시설을 통해 에너지 절약에도 앞장서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자원의 재활용을 위해 코르크참나무의 식재와 코르크마개 회수 100개당 와인 한 병을 무료로 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라져가는 시칠리아 토착품종을 보존하기 위해 지역 대학과 공동으로 시험 묘목장도 운영하고 있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해 빚어낸 돈나푸카타의 와인들은 그래서 더욱 향기로운지도 모른다.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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