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단일화는 블랙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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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작해야 할 때다. 지금 바로 시작해도 빠르다고는 못 할 상황이다. 이미 늦었다. 단일화 얘기다.

지난 9월 19일에 출마선언한 안철수 후보가 자신을 알릴 기회와 함께 정책 및 비전을 준비할 시간을 더 갖고 싶어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만약 그렇다면, 진정으로 자신을 알리고 정책과 비전을 준비하는 것이 단일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단일화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자신을 알리고 정책과 비전을 준비하는 것이 아무리 중요해도 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와 시대교체보다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단일화 논의에 나서는 것이 맞다. 어떤 길을 갈지는 전적으로 안철수의 선택이다. 어느 길이든 한 판의 바둑이다. 도덕적·당위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절대선과 절대악 간의 이분법적 대립구도에 갇혀 있지 않다.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 (왼쪽부터).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 (왼쪽부터).

만약 우리가 이분법적 대립구도 속에 갇혀 있다면 야권 단일화는 위력적인 변수가 아니라 모든 변수를 받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대선의 승부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멋지게 해낼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야권이 단일화에 실패한다면 야권이 절대적으로 불리해질 것은 분명하지만, 단일화에 성공한다고 야권 후보가 자동적으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어떻게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어떻게 하는가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박근혜 후보 vs 야권 단일후보 간 대결에서 혼전 박빙의 조사 결과가 계속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단일화는 야권 승리의 필수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단일화는 박근혜 후보에게 심각한 위험요소이고 감당하기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넘어설 수 없는 벽은 아니다. 야권후보 단일화가 성사된다면 선거는 그때부터 시작일 것이고, 승부는 양쪽에게 모두 열려 있게 될 것이다.

단일화에 성공한 야권은 상승세를 탈 것이다. 야권은 이 상승세의 흐름을 타고 공세적 선거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전략은 단일화에서 패배한 후보 측이 ‘반 박근혜 전선’에 계속 복무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패배한 후보를 지지했던 야권 지지자들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묶어내는 데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려면 이렇게 야권 단일화의 기세를 타고 선거 막판에 공세적으로 국면을 주도할 야권 단일후보를 꺾을 대응전략을 갖추어야 한다.

박근혜 후보가 최근 ‘51% vs 49%’ 전략. 즉 혼전 박빙 선거전에서 ‘근소하지만 확실하게 이기는 전략’을 구사하기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것은 이런 어려움을 뚫고 가기 위한 고심 어린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큰 이슈로 뭉텅이 표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는 한 표 한 표를 모아 51%를 만들겠다는 전략은 언뜻 보면 재미없고 밋밋해 보이나 막상 실전에서 가동되면 위력적이다. 이런 후보와 맞붙는 후보는 빈틈을 보이지 않는 상대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로 압박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후보다. 정책과 감성과 정서적 접근을 통해 숨어 있는 한 표 한 표를 모아낼 수 있는 사람은 후보뿐이다. 철저하게 박근혜 후보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전략인 것이다. 단일화 이벤트와 흐름을 타고 총공세에 나설 야권 후보와 개인기의 박근혜 후보가 벌일 대선 종반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고성국<정치평론가·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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