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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녹색당의 힘은 진심과 유쾌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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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지역 녹색연대 꿈꾸는 이유진 녹색당 + 공동정책위원장

“0.48%, 10만3811표예요. 절대 잊을 수 없죠. 고마운 분들인데….”

이유진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38)의 말이다. 수치는 지난 4·11 총선 때 녹색당이 받은 투표율과 정당투표수다. 전국에 산재한 녹색당에 투표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이 급하다고 했다. 한국의 정당법상 2%를 못 받은 정당은 등록취소된다. 법에 의해 해산했지만 재창당했다. 10월 13일이 재창당한 날짜다. 녹색당 비례대표 1번이었던 이유진씨는 당원 선거를 통해 다시 정책위원장이 되었다. 재창당할 때 정당명은 종전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 새로 등록한 이름은 ‘녹색당+’다. ‘녹색당 더하기’로 읽는다.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어요. 진보신당, 청년당 등 다른 정당과 함께 냈는데 지난 10월 26일에 위헌제청을 결의해서 헌재에 계류 중입니다. 현재진행형이에요. 만약에 정당등록 취소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는다면 원래의 이름, 녹색당을 되찾게 되는 거죠.”

이유진 녹색당 + 공동정책위원장. | 정용인기자

이유진 녹색당 + 공동정책위원장. | 정용인기자

한국 정치에서 ‘녹색’을 당명에 사용한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가깝게는 임삼진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과 한국노총이 주도해 만든 녹색평화당이 있었다. 그 당도 물론 해산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녹색당은 다를까. 멀리는 1970년대 통일사회당, 1980년대 민중의당, 한겨레민주당, 1990년대 초 민중당 등 명멸해간 진보정당운동사의 한 정당으로 기록되는 건 아닐까. 10년, 20년 뒤에도 녹색당은 한국 사회에서 유의미한 정치정당으로 남아있을까. 너무 가혹한 질문인가. “녹색당이 흔히 자랑하는 건데요. 새누리당은 미국에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리고 내부적으로 보면 절차적 민주주의, 수평적인 소통을 강조합니다. 

현재 우리는 녹색당의 의제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건을 거치면서 ‘탈핵’은 당내에서 보편적인 동의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당원들이 농업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흔히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녹색당은 에너지, 기후변화, 환경만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농업이나 경제, 노동의제 등에서 당원들이 녹색의제를 고민하고 있어요.” 스웨덴이나 독일과 같은 북유럽에서는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중앙정치에서도 연정의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경우 몽골에서 녹색당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일본과 대만에도 녹색당이 만들어졌는데, 일본의 경우 한국 창당(2012년 3월 14일)보다 늦다. “규모나 지역 네트워크에 있어서 한국이 상당히 단단한 편이에요. 앞으로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 녹색당의 역할이 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총선에서 이 위원장은 비례대표에 나서면서 “향후 대선국면에서도 녹색의제를 가지고 개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금도 유효한 약속일까. “탈핵 에너지 전환 브리핑을 세 차례에 걸쳐 준비했습니다. 이미 첫 보고서는 만들어서 새누리당과 안철수, 문재인 후보 측에 전달했어요. 박근혜 후보의 에너지 정책은 아직 듣지 못했고, 문재인이나 안철수 후보 측은 탈핵이라는 큰 전제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 2030년까지 장기적인 계획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 5년을 어떻게 할 거냐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다음 5년에 대통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단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모든 에너지 정책이 원자력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특히 MB정부에서 이 경향은 더 심해졌어요.” 녹색당이 추진하는 것은 탈핵과 에너지 전환에서 ‘다음 5년’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정책적 제안이다. 이를테면 세대별·지역별·부문별로 불공정하게 되어 있는 에너지 구성비의 재조정 같은 것이다.

“산업용 전력요금을 단계적으로 50% 올리고 산업체 자가발전 비중을 늘리면 일단 급증하는 전력소비를 잡을 수 있어요. 일본의 경우 원전을 2기밖에 가동하지 않는데도 버틸 수 있는 것은 기업들이 자가발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기업의 상용 자가발전 비율은 국가 총발전량 대비 약 20%인데, 한국은 4%밖에 안 됩니다. 원자력이 폐기되는 부분은 천연가스를 브리지 삼아서 넘어가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녹색당의 탈핵 대안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녹색당의 에너지 전환 전략은 원자력 중심체제에서 지역에너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은 대표적으로 녹색당이 지지하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앞서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 안 나왔다. 한국에서 녹색당은 앞으로도 10년, 20년 지속가능할까. “핵심은 진정성인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정당이라면 인물이 중요한데, 여전히 상징적인 인물이 없는 것은 사실이에요. 결국 우리 모든 당원 한 명 한 명이 상징입니다.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택했는데, 창당할 때 키워드를 꼽는다면 역시 ‘진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동력은 ‘유쾌함’이다. “녹색당 당원들을 만나서 시위나 행진을 할 때도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신나게 합니다. 현실에서 보면 엄혹한 일이 많은데 우애와 낙관의 기운이라고나 할까요. 미래에 대해 암울하게 생각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면서, ‘나중에 행복 해야지’가 아니라 지금 그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이 위원장은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에서 14년 동안 일하다 지난 총선 직전에 녹색당으로 건너왔다. 시민단체 활동과 정당의 차이에 대해 그는 ‘강에서 바다로 나간 물고기’로 비유했다.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나 에너지가 달라졌죠. 관심을 갖고 다뤄야 할 주제도 확 넓어진 느낌이고.” 사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약 12년 전쯤 풋풋한 시민단체 간사 시절 이유진 위원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런데 돌이켜놓고 보니 그때는 개인사를 묻지 않았다. 어떻게 환경운동을 할 생각을 했을까. “대학신문사에서 기자를 했어요. 당시 필리핀 클라크 미군기지 터의 환경오염 문제를 취재할 일이 있었는데,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을 보면서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 그 문제를 알리는 일을 녹색연합이 하고 있었고.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쭉 이어진 거네요.” 아직 독신이다.‘뜻이 맞는 좋은 남자친구가 있다면’도 이 위원장의 개인적인 바람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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