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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음악 유통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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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음악생산자조합 결성 나선 홍대 거리 음악인 한받씨

한받씨(본명 한진식·38)에겐 별명이 많다. 엄밀하게 따지면 별명이기보다는 밴드의 이름이지만 원맨밴드이다 보니 팀 이름이 바로 본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도 쓰이는 것이다. ‘아마츄어증폭기’, ‘야마가타 트윅스터’ 등이 그가 거쳤고 또 소속된 밴드의 이름이다. 작은 음악강좌를 맡고 있는 강의실에서 만난 한씨는 그의 음악처럼 발칙하고 강렬한 인상의 예술가라기보다는 막 태어난 둘쨋딸이 눈에 선한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이제야 하나의 가족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할까 그런 분위기입니다. 첫째 아이는 이제 두 돌인데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을 많이 봐서인지 춤을 제법 잘 추고 있어 집안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줍니다.”

한씨는 20대 시절의 대부분을 영화와 함께 보냈다. 영화에 쓰일 음악을 직접 만들어보려는 욕심에 기타를 배웠고 음악을 통해 자신의 또다른 욕구를 표현하게 됐다. 지금은 홍대 주변에서 널리 알려진 예술인이지만 그 역시 예술로 먹고사는 생활에 절망한 때가 있었다. 한씨는 “제 공연이 시작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많이 나가기도 했는데, 어떤 측면에선 이런 퍼포먼스로 공연에 필요한 어떤 단련을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며 “몇 년의 공백기간 중 많은 일들을 겪으며 절망의 시기를 지내고 나서야 기타를 치는 데 그제야 노래라고 할 만한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인 밴드 ‘야마가타 트윅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한받씨. | 김태훈 기자

1인 밴드 ‘야마가타 트윅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한받씨. | 김태훈 기자

‘아마츄어증폭기’를 통해 자신을 위로했던 ‘내면적인 판타지’를 음악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던 그는 사회적인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투쟁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썰렁한 통행로에 불과했던 홍대 앞 서교지하보도를 다채로운 공연이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도록 일조했던 그는 도시교통계획 때문에 지하보도가 폐쇄되는 것을 보며 “시민들의 자율적인 공간을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하루 아침에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고 말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을 만드는 일에 앞장선 것도 사회적인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한씨는 자신을 “예술가이기보다는 엔지니어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 사회가 잘 운영되어 나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 그런 사람”이라며 조합이 최근 팔당 두물머리의 유기농업인들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보존하려는 투쟁에 꾸준히 합류한 일이 바탕이 됐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을 펼칠지 정해지진 않았지만 먹는 양식을 제공받는 데 그치지 않고 영혼의 양식인 음악을 제공하는 진정한 농촌과 도시의 교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은 배고프다’는 통념을 현실로 체감하는 음악인들이 자립음악을 위해 조합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한씨는 “우리는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에 배고플 수밖에 없고, 또 예술은 기본적으론 1인의 채널이기에 매스미디어에 소개되지 않는 한 굶을 수밖에 없다”면서 “연대를 통해 좀 더 넓은 채널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상부상조해 배고픔을 감내하며 이겨내자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대 앞 국숫집 ‘두리반’의 철거농성장에 합류한 음악인들 가운데서 자립음악을 생산하는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조합은 소규모 음악생산자들이 자유롭게 음반과 공연 등의 작업을 기획·진행하기 위한 환경과 음악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잡았고, 한씨도 이때부터 준비모임에 합류해 활동하고 있다. 한씨는 “작은 용산 두리반에 관심을 가지고 자립음악회로 합류하면서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다시 태어났다”며 자립음악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자본과 국가에 종속되지 않고 개인의 연대를 통한 자립활동을 지향하는 만큼 한씨는 행정적인 지원보다는 “우리 같은 조합이나 연대체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예술활동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자립음악인의 한 명인 한씨 자신의 경제적 상황도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음악창작 강의 외에는 현재로선 음악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공연이 없는 날엔 ‘구루부 구루마’라 이름 붙인 손수레를 끌고 홍대 주변을 순례하거나 재개발 철거현장과 같은 투쟁현장을 찾는다. “구루마를 끌고 다니며 내가 만든 음악을 파는 것은 어쩌면 자랑스럽고 가장 해볼 만한 일”이라는 그는 ‘구루마’에 그와 같은 가난한 예술인들의 책과 음반을 싣고 다니며 때로는 즉흥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시를 쓰는 아내의 시집이 나오면 ‘구루마’에서 팔 계획이라는 그는 “자본에 기대지 않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보일지라도, 진정한 자립음악가로 거듭나서 물질과 화폐와 자본이 아니라 사람에 기대어 서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음악가로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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