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안미래 일구는 사람들

마을공동체 - “에너지 자립마을서 자라는 아이들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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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전소 운동’ 나선 에너지 지킴이 김소영 성대골 어린이도서관 관장

오전의 마을도서관은 고즈넉했다. 이유가 뭘까 생각했더니 전등을 켜놓고 있지 않았다. “햇볕 들어오는 곳으로 앉으세요.” 김소영 성대골 어린이도서관 관장(43)이 잠깐 일하는 것만 마무리하고 오겠다고 했다. 녹차를 타서 들고온 김소영 관장이 말을 꺼냈다. “원래 햇볕이 좋은 날엔 대부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지난 한 달 전기요금은 6580원이다. 거의 기본요금이다. “여름에 많이 썼을 때 2만원이 나왔어요. 몇 가족이 여기에 모여서 잤거든요. 한 5만원 이상 나올 거라고 단단히 각오했는데….” ‘집에서 에어컨을 켜는 것이 불편한’ 6~7 가구가 의기투합했다. 애들도 방학이고, 애들을 재운 밤에는 런던올림픽도 같이 봤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들고 가족들이 모였다. “작년 12월부터 절전운동을 시작했는데요, 10개월 동안 8월이 가장 절약수치가 높았습니다. 의외죠?”

김소영 성대골 어린이도서관 관장. | 정용인 기자

김소영 성대골 어린이도서관 관장. | 정용인 기자

도서관 벽 한 옆에는 그래프가 붙어 있다. 빨간색이 지난해 쓴 전기량이고, 초록색이 절약운동을 하기 시작한 이후 그래프다. ‘○○○네 집’이라고 되어 있는 대부분의 집에서 빨간 그래프에 비해 확 줄어든 녹색 비교 그래프가 붙어 있다. 지난해에 비해 절약한 전기량은 별도의 그래프로 만들어 붙여놓았다. 특히 8월의 성과가 눈부시다. 천장을 뚫고 올라갈 기세(?)다. “아마 지나치게 긴장했던 것 같아요. 지레 요금폭탄을 맞을 것이라고 겁을 먹어서 고지서를 확인하고 싶지도 않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절약에 성공했어요. 올해는 쓴다고 썼지만 이미 만들어진 의식은, 정확히 가늠하진 못하지만 행동을 변화시킨 겁니다.”

김 관장에 따르면 에너지 절약은 ‘왜 해야 하는지’가 명확히 각인되면 ‘에너지 사치’로 돌아가기 어렵다. 처음 한 달은 불편하다. “성공적으로 절약해도 5000원이거든요. 한 달 29일을 절약하고도 하룻밤 실수로 냉장고 문을 덜 닫아 놓는다든가 하면 ‘도로아미타불’이에요. 그래프가 아이들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요, 아이들로부터 나오는 변화된 행동에 저희도 놀라고 감동해요.” 이 그래프에 붙은 이름은 절전소(節電所)다. 발전소에 대비해 전기를 아낀 것을 모은다는 의미다. “혼자 목표치를 1000㎾h(킬로와트아워)로 잡은 사람도 있어요. 보통 1000㎾h면 4인 기준으로 네 가족이 한 달에 쓰는 양이거든요. 여기 ‘절전소 운동’에 참여한 60여 세대 중 절약을 모범적으로 하는 사람들 20~30 세대가 여섯 가정 이상의 전기를 생산해내는 셈입니다. 어떤 한 분은 자기 혼자서 한 집에 해당하는 양을 대주는 경우도 있어요.”

‘절전의 여왕’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한 가족은 올 여름 ‘냉장고 없이 살아보겠다’고 선언한 뒤 실천에 옮겼다. 대형 양문냉장고를 끄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의 먹을거리를 사와서 먹고 산 것이다. “사실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도 잘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잖아요.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한 삶에서 빠져나오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도 변하는 것이고, 그런 작은 행동과 태도의 변화가 많은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김 관장이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난 2009년 신종플루로 당시 7살이던 쌍둥이 딸이 다니던 구립어린이집이 한 달 넘게 문을 닫으면서부터다. “동작구가 동을 통폐합하기 전에는 21개 동(통합 후에는 15개 동)이 있었는데 도서관이 4개였고, 인구는 6만명인데 우리 동네에는 지금도 초등학교가 없어요. 집에서 제일 가까운 도서관은 마을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살았어요. 그때 아이 둘 데리고 도서관 다니는 것이 일과였는데, 동네 시민단체 중에 희망동네라고 있어요. 그 시민단체가 자극을 준 거죠.”

‘지방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자’는 운동이었다. 정부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는 데서 오기가 생겼다.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저런 정부를 가지고 있는 국민으로서 어쩔 수 없다면서 정부만 손가락질하고 비난만 할 것인가. 남 탓하고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15개 동에 하나씩 도서관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시작했다. 아무도 안 한다는 걸 ‘밥 한 끼 잘못 얻어먹은 죄’로 주민추진위 대표를 덜컥 맡았다. 모금하고 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2011년 3월 오픈 예정이었는데 2010년 7월, 의외의 공간이 나오면서 앞당겨 추진됐다. 온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을 설득했다. 도서관 오픈 2∼3주를 남길 때까지 성공 여부는 불확실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픈.

김 관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10년 같았던 지난 2~3년’ 동안의 마을공동체 만들기 이야기. 혼자 듣기 아깝다. “서울은 더 쪼개져야 합니다. 마을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관장이 생각하는 공동체마을의 모델은 그 자신이 예전에 살던 시골이다. “마을사람 중 누군가 외지에 나가 실패해서 돌아오면 혼자 우울한 상황에 빠져 자살하도록 방치하지 않았어요.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이라도 마련해주고 마을사람들이 품앗이해서 구들장을 놔주고, 또 종자 씨앗도 나눠주고, 버려진 밭이라고 일구게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줬거든요. 1~2년 지나면 작은 소농으로 정착할 기술을 마을이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옆집에서 누가 죽는지, 쫄딱 망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인터뷰를 끝내면서 10년 뒤에 김 관장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물었다. “10년 뒤에는 우리가 함께 만든 에너지 자립 마을에서 우리 아이들이 10년을 자랐겠죠. 아이가 터전을 잡을 것을 고민할 텐데, 그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을 여기서 키우고 싶은 동네를 만들고 싶어요. 엄마가 만든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엄마가 만든 공동주택에서 살면서, 엄마들이 만든 대안학교에서 교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쯤 되면 우리는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를 지어서 물건을 대고…. 우리 아이들은 스무살이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환경운동을 하면 좋겠어요.”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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