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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 도시농업 통해 농촌과 소통하는 도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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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기획자에서 도시농업 전도사로 나선 안철환 귀농운동본부 소장

인생의 길목에서 내리는 작은 선택들이 소소한 우연들과 만나 누적되면 필연이 된다. 도시농업 전파에 앞장서고 있는 안철환 소장(51·전국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의 경우도 그렇다.

본래 그는 출판사 기획자로 일했다. 출판 기획자 시절 작업했던 책 한 권이 그에게 농업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다. 채규철 전 두밀리 자연학교 교장에 관한 책이었다. 채 전 교장은 장기려 박사와 함께 1968년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드는 등 농촌운동·사회운동·대안교육운동에 힘쓴 인물로 2006년 작고했다. “채규철 선생의 삶에 큰 감동을 받아서 직장을 때려치우면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철환 귀농운동본부 소장. | 정원식 기자

안철환 귀농운동본부 소장. | 정원식 기자

안 소장은 1998년 출판사를 그만두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평 남짓한 주말농장이었지만 1999년에는 규모를 100평으로 늘리고, 2000년에는 아예 안산으로 내려가 400평 규모의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99년에 생긴 다른 일들도 그의 삶을 농업 안으로 한 발짝 더 옮겨놓았다. 이 해에 그는 한국귀농운동본부가 펴내는 계간지 <귀농통문> 편집에 참여한다.

동시에 출판사 들녘에서 펴내는 30권짜리 ‘귀농총서’ 시리즈 기획도 맡았다.

귀농운동본부 홍보출판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주말농사 학교도 운영하던 그가 일본의 농업 저술가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을 만난 건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애초 번역을 맡은 역자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손을 떼면서 번역을 안 소장이 맡게 됐다. 안 소장은 책을 내기로 한 출판사에서 ‘귀농총서’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었던 데다 귀농운동본부 일과 주말농사도 병행하고 있었으므로 적임자라면 적임자였던 셈이다. 안 소장이 ‘도시농업’이라는 개념과 조우한 것은 이 책을 통해서다. 소련 붕괴 이후 닥친 극심한 식량난을 도시농업으로 극복한 쿠바 아바나의 사례를 소개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은 한국에 도시농업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책은 2004년 2월에 출간됐다.

도시농업이 처음부터 안 소장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그를 도시농업으로 밀어붙였다. “2004년 10월에 귀농운동본부에서 도시농업 관련 발표를 했더니 본부에서 도시농업 기획을 정식으로 해보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본래 내 꿈은 귀농이었기 때문에 좀 뭉그적거렸다.” 기획안은 이듬해 5월에 나왔다. 귀농운동본부 안에는 도시농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안 소장은 네 번째 위원장을 맡았다.

도시농업위원회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텃밭보급소는 2007년부터 상자텃밭 보급을 시작했다. 상자텃밭이란 재활용 상자를 사용해 상추, 고추, 토마토 등 간단한 작물을 기르는 것이다. 별다른 자투리땅 없이도 집 옥상이나 아파트 베란다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09년 이후 도시농업은 급속도로 확장됐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2010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도시민 2000가구 중 19.1%가 도시농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제적·시간적인 여유를 가진 계층에서 안전한 먹을거리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이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최근에는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법적·제도적 지원도 강화되는 추세다. 서울시는 올해를 ‘도시농업 원년’으로 선포하고 오세훈 전 시장이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려고 했던 노들섬 부지를 농업공원으로 조성했다. 서울시는 지난 1일에는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 조례’를 공포했다. 서울시 강동구는 지난해에 이미 도시농업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주민들에게 텃밭을 분양했다. 정부 또한 지난 5월 발효된 도시농업육성지원법을 토대로 관련 정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그러나 안 소장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강화에서 경계할 대목도 있다고 말한다. “관 주도성이 강해지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민·관이 협력하면서 민간의 주도성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안 소장은 도시민들에게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데서 도시농업의 가치를 찾는다. “전국민을 귀농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도시농업을 통해 농업의 소중함을 구석구석 전파할 수 있다. 귀농학교는 전국에 다섯 군데밖에 없지만 도시농부 학교는 수도권에만 서른 개가 넘는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농업의 가치란 무엇일까. “남이 생산한 것을 돈을 주고 사서 먹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기생적인 삶이다. 나는 경작권도 기본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먹을 것을 내가 스스로 생산할 권리가 있다는 거다. 도시농업은 도시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을 살려서 자립률을 높이자는 운동이다. 동시에 도시를 그렇게 바꿈으로써 농촌을 죽이는 도시가 아니라 농촌과 소통하는 도시로 만들고 공동체를 살리자는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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