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안미래 일구는 사람들

교육 - “진보적 사교육 대안모델 나올 시점 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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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교육운동 모색하는 민경우 나눔학원 대표

소문을 들었다. 통일연대 사무처장을 역임했던 민경우씨가 전혀 다른 분야, 대안교육운동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생각해보면 과거에 그런 케이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남 사교육시장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과거 운동권 출신 인사들, 꽤 된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민경우씨는 조금 다른 경우였다. “한 2008년 정도부터 생각했어요. 통일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다 나온 뒤 사회운동에 복귀했는데, 생계 때문에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어요. 그러다보니 한국의 교육현실이 보이더군요. 이런 시스템과 모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 초에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나눔학원이 문을 연 건 올해 4월. 나눔학원의 시스템은 기존 학원과 판이하다. 민 대표의 설명. “강사가 시간을 정해서 강의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학생들이 오고 싶을 때 와서 공부하고 싶은 만큼 하는 스타일입니다.”

민경우 나눔학원 대표. | 정용인 기자

민경우 나눔학원 대표. | 정용인 기자

게다가 강사가 학생 여럿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강사가 학생 개개인에게 개인별 맞춤형 지도를 한다. 이게 가능한 시스템일까. 현재 나눔학원에 등록한 학생은 60여명. 강사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 4명이고, 자원봉사 또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사람이 3~4명이다. 실제로 교육이 가능한 시간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밤 10시(밤 10시 이후에 학원수업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이기 때문에 여유시간도 많지 않다.

강사들이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학원에 나와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한다.

그래도 학교에서 하는 자습과는 차이가 있다. “자습과의 차이는 뭐냐 하면, 자습은 선생님이 관리자로서 소극적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개입해서 학습이나 지식 욕구를 불러일으켜 준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선생님도 종합적인 지식과 실력이 필요합니다. 학년은 여럿인데 다 봐줘야 하니까요.”

민 대표에 따르면 이 교육을 경험한 아이들은 두 가지 점에서 만족해 한다. 첫째는 편안하다는 것. 둘째로 1대 1수업으로 진행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중·저학력의 아이들은 현재 교육시스템에서는 학교든 학원이든 실력을 메울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묻는 건 그게 아니다. 하루에 한 시간만 가르치더라도 1대 1로 수업을 진행하면 감당할 수 있는 일일까. “현재 나눔학원에서 선생님들은 과거 사회운동을 한 사람들이 많아요. 영리라기보다 일종의 사회사업 차원이죠. 장기적으로는 지역사회에서 고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점에서 강사수급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눔학원’이라고 이름을 지은 까닭이죠.”

현재까진 강사들의 높은 ‘헌신성’이 필요하다. 민 대표를 포함해서 역시 운동 후배인 김강현씨가 지난 6개월 동안 주말에도 나와 아이들을 가르쳤다. 학생에 따라 효과는 달랐지만, 전반적으로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민 대표는 자신이 하는 학원을 일종의 교육운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론 교과를 가르치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교육으로 분류된다. 그는 기존의 ‘진보교육운동’의 시각에서 맹점이 있다고 말했다. “일단 학원이라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어요. ‘공교육을 해체시키는 사교육’ 식의 사고죠. 두 번째로는 추구하는 교육모델도 수학·과학보다는 탈지식형 인성교육이나 인문학교육 쪽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어요. 사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본령이거든요. 그리고 학교에서 현실로 존재하는 학원의 압박, 특히 중·저학력 수준의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하거든요. 그것을 도외시하고 교육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요구 중엔 대학입시 논술 같은 것도 있다. 그런 요구까지는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강사와 연결시켜준다. 대신 아이의 학원비 전액을 강사에게 준다. “이를테면 과외 같은 걸 봐도 기존 용역회사들이 중간에서 과도하게 가져가는 것이 있거든요. 교육소비자와 교육을 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민 대표가 보기에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돌봄이나 육아기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운동의 성과도 쌓여 있고 사회적 안전망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만, 중·고등학생 청소년까지 다루는 대안적인 교육모델은 아직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말하자면 일종의 틈새인 것이지요.”

시행착오도 있었다. 초기에 학원비를 너무 싸게 책정하는 바람에 적자가 났다. 현재는 실비로 운영해 건물임대료와 강사 월급 등에 어느 정도 수지를 맞추고 있다. “일단은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 1~2년 뒤쯤이면 대안적인 학원이 될 수도 있고, 비영리교육센터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범을 만들어낸 뒤 그것에 기초해서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생각이에요.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상급단체가 된다든가, 브랜드 사용비를 받는 건 아니고 본인들이 지역 실정에 맞게 만들면 지원·협력하는 체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생각일까. 그동안 사회운동가로서 쌓은 경력도 있지 않나. “물론 사회적 활동에서 아쉬움 같은 건 있어요. 그건 계속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고…. 그러나 사실 저는 이게 좋아요. 공부하는 것도 좋고, 소박하게 사는 것도 제 체질입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조직의 관성·경직성 같은 것이 있는데, 그건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체질에 제일 맞는 것 같습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y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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