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송전탑 농성

목숨 건 외침 “회사는 법대로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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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공장 송전탑 고공농성 벌이는 최병승, 천의봉씨… 그들은 왜 위태롭게 투쟁하나

울산광역시 북구 현대자동차 공장에는 여러 개의 입구가 있다. 그 중 하나인 명촌정문으로는 화물차들이 부지런히 드나든다.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협력업체의 부품을 실은 차량들이다. 명촌정문 앞으로는 4차선 도로가 남쪽으로 뻗어 있다. 도로를 건너면 세로 방향으로 길게 뻗은 방문객 주차장이 있다.

지난 10월 24일 오전 명촌정문 앞 4차선 도로에는 스타렉스 차량 3대, 경찰 트럭 1대, 전경버스 2대가 서 있었다. 현대차 작업복을 입고 스타렉스 차량에서 내린 사람이 방문 목적을 묻고는 주차장 중앙지점을 가리키며 “주차장 출입은 저쪽으로 하라”고 말했다. 안내받은 주차장 입구에서는 또 다른 이들이 방문 목적을 묻고 명함을 받았다. 경찰, 회사 관리자들, 용역들이 뒤섞여 있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 최병승씨와 천의봉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울산광역시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옆 주차장 송전탑. 두 사람은 각기 이 송전탑 17m와 20m 높이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 최병승씨와 천의봉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울산광역시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옆 주차장 송전탑. 두 사람은 각기 이 송전탑 17m와 20m 높이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최병승씨(38)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천의봉 사무국장(31)은 주차장 안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씨는 17m 지점, 천 사무국장은 20m 지점에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0월 17일 밤 10시 30분쯤 송전탑에 올라 철골에 몸을 묶었다. 아래에는 겨우 엉덩이 하나 걸칠 수 있을 정도 넓이의 합판을 댔다. 웅크린 채 허공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조합원들은 합판 몇 장을 더 올렸다. 받침대를 누울 수 있는 크기로 보강했다. 그래봐야 한 평이 안 된다. 받침대 보강을 위해 조합원들이 송전탑으로 올라갔을 때 두 사람은 밤새 몸이 굳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조합원들은 전했다. 조합원들은 두 사람을 밧줄에 매단 채 보강작업을 했다.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지난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했다. 크레인 조정실과는 달리 송전탑에는 바람막이 구실을 할 외벽이 없다. 무시로 드나드는 바람을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추락할 위험도 상존한다. 두 사람은 몸을 송전탑 철골에 고정한 채 잠든다.

최병승씨는 2002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2년 동안 정규직과 함께 일했다. 비정규직 노조 활동도 시작했다. 2004년 9월 노동부는 현대차 사내하청 1만명이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비정규직 노조는 불법파견 시정을 요구했다. 최씨는 2005년 2월 해고됐다. 무단결근과 파업선동이라는 이유가 붙었다.

최병승씨는 2005년에도 송전탑에 오른 적이 있다. 그해 9월 5일 오전 5시 20분쯤 해고자 신분이었던 최씨는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손현상씨, 김형기씨, 김태윤씨와 함께 울산공장 3공장 분수대 옆 송전탑에 올랐다. 마침 태풍 ‘나비’가 폭우를 몰고온 시점이었다. 동료 중 한 명은 강풍에 쓰러져 의식을 잃기까지 했다. 결국 22시간 만에 내려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요구조건은 같다. 불법파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7년이 지나는 동안 상황은 달라졌다. 최씨는 2005년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을 시작했다. 5년 동안은 계속 졌다. 1심에서 지고 2심에서도 졌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기각됐다. 반전은 소송을 시작하고 5년이 지난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나왔다.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파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도급’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휘 명령권을 현대차가 행사한 것으로 보고, 최씨의 경우 ‘도급’이 아닌 ‘파견’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파견기간이 2년을 초과한 날부터 현대차가 최씨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 결정은 하급법원이 상급법원의 결정을 존중해 재판을 다시 하라는 뜻이다. 2011년 2월 고등법원은 대법원 취지대로 판결했다. 현대차는 불복해 재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2월 같은 판결을 내렸다. 지난 5월 2일에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부당해고이므로 복직시키라’는 결정을 내렸다.

현대차는 다시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냈다.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회사의 이런 태도를 현대차가 법원 판결에 불복하면서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고 본다. 최씨가 두 번째 송전탑 고공농성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닿아 있다.

대법원 “현대차가 최씨 직접 고용” 판결
최병승씨와 천의봉 사무국장은 하루 두 끼 식사를 한다.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두 사람을 보호하는 조합원들이 도시락을 위로 올려준다. 밧줄 한쪽 끝에 도시락이 든 꾸러미를 매달고 반대편에서 줄을 당기면, 송전탑에 달아둔 도르래를 타고 꾸러미가 송전탑으로 올라간다. 점심식사 시간 후 최병승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왜 올라갔을까.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101개 하청업체에 대해 불법파견임을 확인했고 대법원에서도 지난 2월에 확정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회사는 지난 8년 동안 우리의 교섭요구에 성실히 응한 적이 없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면 얘기하자더니 막상 판결이 나온 뒤에는 모르겠다는 태도다. 그동안 수 차례 국정감사 요구, 네 차례 파업까지 했는데 달라진 게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이 문제로 이렇게 오래 투쟁하는지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법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동안 20번 넘게 파업을 했고 160여명이 해고됐다. 비정규직 조합원 1200명 중 중징계자만 1000명 가깝다. 그러나 회사는 누구 한 사람 처벌받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24일 최병승씨가 점심 도시락이 든 꾸러미를 받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최병승씨가 점심 도시락이 든 꾸러미를 받고 있다.

최병승씨는 2005년 공장 점거농성으로 수배됐고 2006년 울산지법에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10년 12월에는 그보다 한 달 전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공장 점거농성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2005년 소송은 최씨 혼자 시작한 것일까.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때는 89명이 시작했다. 중앙노동위원회까지 갔을 때 소송비용 문제가 생겼다. 인원을 줄였다. 행정소송에는 15명이 참여했는데 고법에서 지고 나서 다시 비용문제가 생겼다. 대법원으로 갈 때는 나를 포함해 소송 당사자를 두 명으로 압축했다.”

최씨는 방전복을 입으라는 조합원들의 권유를 거절했다. “송전탑에 작업하러 올라온 게 아니다. 의지를 보이고 요구를 관철시켜야 한다. 방전복도 입고 장화도 신을 거라면 그냥 아래에서 싸우면 된다.”

천의봉 사무국장은 2004년 사내하청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2010년 해고됐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송전탑에서는 깊은 잠을 자기 힘들다고 말했다. 초저녁에 2-3시간을 자고 밤새 자다 깼다를 반복한다. 농성 시작 후 첫 4일 동안은 용변을 보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페이스북·카카오 스토리·조합게시판을 둘러보고 포털 뉴스를 검색한다. 그는 2010년 작업 중 다리를 다쳐 산재 판정을 받았다. 지난 8월에는 현대차 관리자들과 용역들에 의해 회사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팔과 어깨를 다쳐 깁스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근육주사를 맞아야 한다. 송전탑에서 내려오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송전탑 아래에서 올려다본 그의 얼굴이 제대로 씻지 못해 숯덩이를 문지른 듯 까맸다. 농성을 시작한 다음날인 18일 밤, 그는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내하청 사장과 현대차 관리자가 찾아와 ‘아들이 내려오게 해주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천 사무국장은 “회사 입장이 바뀌기 전에는 못 내려간다”고 말했다.

방전복 입으라는 조합원 권유도 뿌리쳐
송전탑 아래에는 비정규직지회, 정규직지부, 민주노총, 해고자투쟁위원회 등에서 친 천막 6동이 서 있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 30~60명이 천막을 지키고 있다.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이들은 오전 6시에 근무를 마치고 송전탑 아래 천막으로 온다. 천막에서 잠을 자고 오후 6시 촛불집회를 마친 뒤 오후 9시 근무를 위해 공장으로 출근한다. 주간근무를 하는 이들은 천막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오전에 공장으로 출근한다.

이상규씨(52)는 10월 23일 야간근무를 하고 24일 오전 7시에 천막에 도착했다. 그는 애초 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이 된 경우다. 1981년 현대차에 입사한 이씨는 1998년 현대차가 정리해고를 할 때 희망퇴직 형식으로 회사를 나왔다. 복직투쟁 끝에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로 회사에 돌아온 지 7년이 지났다. 그는 현대차가 지난 8월 ‘비정규직 3000명을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신규채용 형식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발표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씨는 “회사 입맛에 맞는 사람만 정규직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3000명을 정규직으로 만들면 비정규직 3000명 자리가 또 빌 텐데 거기 또 비정규직을 뽑을 것 아닌가. 비정규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들은 10월 2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최병승씨와 천의봉 사무국장이 건강하게 내려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법파견이라는 점을 회사도 인정하며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최병승씨의 복직에 대해서는 “대법판결과 중노위 결정은 근로자 지위에 대한 판단일 뿐 징계의 정당성은 다루지 않았다.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또 대법원 판결은 2007년 폐지된 구파견법 조항에 근거한 것인데 이 조항의 위헌성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 판단 이후 복직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은 정치적 이슈로 부각됐다. 10월 24일 오후 1시 30분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가 송전탑을 방문했다. 오후 2시에는 문재인 캠프 울산지역 선대위 관계자들이 찾아왔다. 25일에는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현장을 방문했다. 고공농성자들은 회사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농성을 그만둘 의사가 없다. 날씨는 점점 쌀쌀해지고 있다. 11월 7일은 입동이다.

<울산/글·사진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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