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위기의식 느낀 김재철 사장의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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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회동 대화록을 보면,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을 주도한 것은 김재철 MBC 사장이다. 김 사장이 정수장학회에 MBC 지분 매각을 제안하고, MBC 간부들을 보내 최필립 이사장에게 구체적인 매각계획서까지 보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10월 16일 MBC노조 사무실에서 정영하 MBC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정 위원장은 “위기에 몰린 김 사장의 무리수”라고 규정했다.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과 이상옥 전략기획부장,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10월 8일 비밀회동에 대해 알고 있었나
“상상도 못했다. 보도를 보고 알았다. 대화록을 보니 김재철 MBC 사장이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을 주도하고, 그 내용은 김재우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에게도 보고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지금의 MBC 소유구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방송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다.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든 정수장학회든 위탁관리인에 불과하다. 더구나 방문진이나 정수장학회는 명목상 소유주라도 되지만 김재철 사장은 관리인일 뿐인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런 모략을 꾸밀 수 있는지 황당하다.”

정영하 MBC노조 위원장 | 정원식 기자

정영하 MBC노조 위원장 | 정원식 기자

김재우 이사장도 알고 있었을 거라고 보나
“대화록을 보면 ‘김재우 이사장도 민영화에 대해 필요성을 절감하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지분 매각을 밝히면 거기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MBC는 통상적인 업무협의라고 해명했다.
“거짓말이다.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법(방문진법)이 제정된 이후 MBC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은 방문진에만 있다. 두 번째 주주인 정수장학회에는 그런 권한이 없다. 경영진이 실무진 모르게 추진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정상적인 업무협의라면 추진과정에서 이미 구성원들 사이에 회자가 됐을 것이다. MBC가 공영방송이 된 이후 경영진과 정수장학회가 업무협의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전에는 정수장학회가 MBC 경영에 관여한 적이 없고, 따라서 정수장학회에 보고할 일도 없었다. 노조에서도 방문진의 월권에 대해서는 비판 성명을 낸 적이 많지만 정수장학회에 대해서는 그런 성명을 낼 일이 없었다. 통상적인 업무협의라는 건 명백한 거짓말이다.”

보도가 나오면서 계획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는데, 보도가 없었더라면 정수장학회의 MBC·부산일보 지분 매각은 가능한 일이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부산일보 지분에 대해서는 이미 김지태씨 유족이 주식처분 금지 가처분 승인을 받아놨다. 유족은 MBC 지분에 대해서도 주식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생각이라고 하는데, 법원에서 인용이 안 되더라도 MBC 지분 매각은 방문진이 길을 터줘야만 가능하다. MBC 주식을 상장하는 데 방문진 지분은 빼놓고 정수장학회 지분만 상장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방송사 지분 변동에 대한 결정 권한은 방송통신위원회가 갖고 있기 때문에 방문진이 지분 매각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방통위가 동의하지 않으면 매각이 안 된다. 그런데 정부가 지금처럼 민감한 시점에 승인을 해줄까?”

대화록을 보면 상장 시점을 내년 초라고 잡아놨다.
“지금이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주식 상장이란 게 권력자가 밀어붙인다고 초고속으로 되는 게 아니다. MBC가 iMBC 상장할 때도 1년 반이 걸렸다. 설령 지금이 이명박 정권 초창기라고 하더라도 그렇게는 안 된다. 정권 초창기에 정권이 조중동에 종편을 내줄 때 2년이나 걸렸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화록을 보면 MBC 간부들이 정수장학회 주식 매각에 대해 일종의 컨설팅을 해줬다고 보이는데, 언론사 간부들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몰상식한 짓이다. 정상적인 경영진이라면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MBC 주식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박근혜 후보의 선거운동에 불쏘시개로 쓰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해야 맞다. 그런데 대화록을 보면 오히려 최필립 이사장을 부추겼다. 최 이사장은 본래 부산일보 주식만 매각하려고 했는데 김재철 사장이 MBC 지분 매각을 제안한 것으로 돼 있지 않나. MBC 사장이 박근혜 캠프 선대본부장도 아니고, 이건 새누리당조차 당황해 할 것 같다.”

김재철 사장이 이렇게까지 무리를 한 이유가 뭐라고 보나.
“김 사장이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다. 왜 위기의식을 느꼈을까? 지난 9월에 방문진 야당 이사들이 방문진에 김 사장 해임안을 제출했다. 9월 27일에는 노조위원장과 사장이 출석하는 청문이 있었는데, 김 사장은 불참했다. 김 사장은 자신이 불참하면 방문진 이사회가 해임안을 상정·표결하고, 방문진 이사회의 여야 6대 3 구조상 해임안 상정 자체가 안 되거나 상정되더라도 부결된다고 봤을 거다. 그런데 그날 방문진 이사회에서 해임안을 다루지 않았다. 두 차례나 해임안을 부결시키고 김 사장의 사표도 반려 처리한 이전 방문진 이사회와는 다른 분위기다. 김 사장은 결국 믿을 건 청와대가 아니라 새누리당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최근 MBC 보도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이번 매각사건은 이 상황에서 김 사장이 최후의 승부수라고 생각하고 던진 ‘돌직구’인 것 같다.”

MBC에서 민영화 논의가 진행된 적이 있나
“지난 7월 노조가 업무복귀를 한 다음 김재철 사장이 임원회의 석상에서 지배구조 문제를 실무적으로 검토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들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민영화와 연관지어 생각하진 못했고, 김 사장이 지배구조 개선을 빌미로 안팎의 사퇴 압력을 돌파하려고 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지난해에 김 사장이 사표를 제출하는 쇼를 하고 한동안 출근을 안 하다가 다시 회사에 나왔을 때도 노조와 사장 선임방식을 바꾸는 논의를 하자고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낙하산 사장과 사장 선임방식을 논하는 게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해서 응하지 않았다. 사장 선임방식을 바꾸려면 방문진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법개정에 몇 개월이 걸릴 테니 그런 식으로 임기를 채우려고 한다고 봤다. 그런데 민영화 방안을 이런 식으로 밀실에서 추진해 왔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MBC는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MBC노조가 해당 기자에게 대화록을 유출한 게 아니냐고 보도했다.
“MBC노조가 김재철 사장 법인카드 유용, 무용가 J씨와의 관계 등을 폭로해 노조를 지목한 것 같은데, 노조와는 무관하다.”

앞서 방문진의 태도변화를 김 사장이 위기로 받아들였다고 했는데, 방문진이 김 사장 해임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25일 방문진 이사회에서도 해임안이 처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노조가 미리 예단하는 건 맞지 않다. 방문진이 일을 늑장처리했다는 건 우리도 지적한 바 있다. 25일 이사회의 논의에 법상식과 순리가 반영되는지를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

업무복귀 이후 잇따른 징계인사가 나올 때 파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집행부는 파업 재개도 고려하고 있다. 지금은 분위기가 더욱 고조돼 있다. 퇴진 대상인 사장이 던져서는 안 될 카드(민영화)를 던졌다. 방문진의 결단을 지켜보겠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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