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수입차 유예할부는 ‘꼼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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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부담금 적어 젊은층 구매욕 자극… 3년후 목돈 지출 간과하면 낭패

매월 20만원만 내면 수입차를 살 수 있다?

길을 걷다보면 수입자동차 딜러가 걸어놓은 현수막을 볼 수 있다. 매월 10만~40만원만 내면 수입차를 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홍보 현수막은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고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이다. 딜러가 선전하는 문구는 ‘유예할부’(유예리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가능하다. 유예할부는 차 가격의 일정 부분을 선납한 후, 2~3년 동안 일정액의 이자를 내고 그 기간이 끝난 후 유예금액을 일시에 내는 금융 프로그램이다. 할부금을 유예하는 기간에는 일정액의 이자만 내고 수입차를 운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할부금 유예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일시에 목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틀리다.

지난 5월 26일 부산시 해운대구 벡스코(BEXCO)를 찾은 시민들이 ‘2012 부산국제모터쇼‘에 출품된 자동차들을 살펴보고 있다. 6월 3일까지 열렸던 모터쇼에는 세계 6개국에서 96개 업체(완성차 22개사, 부품업체 74개사)가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26일 부산시 해운대구 벡스코(BEXCO)를 찾은 시민들이 ‘2012 부산국제모터쇼‘에 출품된 자동차들을 살펴보고 있다. 6월 3일까지 열렸던 모터쇼에는 세계 6개국에서 96개 업체(완성차 22개사, 부품업체 74개사)가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 연합뉴스

젊은 소비자 늘어 시장점유율 확대
유예할부는 젊은 직장인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수입차를 구입하는 데 일정 기간 목돈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 부담금이 적은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통해 수입차를 구매하기는 쉽지만, 유예할부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목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2년 7월 현재 수입차 점유율은 9.75%를 차지했다. 10년 전 1.3%의 점유율을 나타냈지만, 10년 만에 10배나 늘어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수입차 확대의 원인에 대해 ‘젊은층의 구매력 증가’로 설명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관계자는 “수입차 시장이 확대되는 이유 중 하나가 소비자층이 젊어진다는 것”이라며 “몇 년 전만 해도 수입차 고객은 40대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30대 이상으로 젊어졌다. 30대는 실용적이고 중·소형인 3000만원대 엔트리차량(중소형 수입차)을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입차 시장의 확대를 이끈 것은 수입차 업체의 공격적인 마케팅도 큰 몫을 했다. 특히 10년 전부터 수입차 회사들이 내놓기 시작한 유예할부 제도가 젊은층의 구매욕을 자극했다는 분석이 높다. 한 수입차 회사 관계자는 “차량에 따라 다르지만, 약 15~20%의 고객이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대부분의 수입차 회사가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BMW·메르세데스 벤츠 등 한국에 들어온 24개의 브랜드 수입차 회사는 대부분 유예할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인기가 좋은 수입차 회사는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메르세데스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아우디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폭스바겐파이낸셜서비스’ 등의 할부금융사를 자회사로 두고 고객의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할부금융사를 직접 운영하지 않는 수입차 회사의 경우 하나캐피탈·KT캐피탈 등의 국내 할부금융사와 제휴를 맺고 유예할부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예할부 프로그램은 차량 가격의 30%를 선납하고, 36개월 동안 이자를 내고, 나머지 차량 가격을 3년 후에 한꺼번에 지불하는 방식이다.

9월 수입차 업체가 선보인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푸조는 508 악티브(Active), 508 알뤼르(Allure)의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9월에 실시하고 있다. 차량 가격은 개별소비세 인하가 있기 전 악티브는 4460만원, 알뤼르는 4910만원이다. 악티브의 경우 선납금 30%(1330만원)를 낸 후 36개월 동안 36만9300원을 내고 50%의 유예금(2230만원)은 3년 뒤 일시불로 납입하거나 추가리스로 이용할 수 있다. 스바루코리아는 9월 전 차종에 걸쳐 특별 프로모션을 실시 중이다. 36개월 유예할부의 경우 중형세단 레거시 2.5(차량가격 3690만원)는 차량 가격의 30%(1100만원)를 선수금으로 지불하고, 매월 18만9000원을 36개월간 분납한 후 차량 가격의 60%인 유예금(2200만원)을 일시 납부해 차를 완전히 소유하거나 추가리스를 이용할 수 있다. 

캐딜락도 브랜드 탄생 110주년 기념 특별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4680만원의 CTS 3.0 Luxury(2012년형)를 유예할부로 구입하려면 선수금 30%(1404만원)를 낸 후, 36개월 동안 리스료 11만원, 3년 후 유예금 65%(3042만원)를 지불하면 된다. 선납금과 유예금을 합하면 푸조의 경우 80%, 스바루코리아는 90%, 캐딜락은 95%다. 36개월 동안 내는 리스료는 선수금과 유예금을 뺀 나머지 금액과 유예금액의 이자가 합쳐진 것이다. 캐딜락을 예로 들면 36개월 동안 5%의 차량 금액과 유예금 70%의 이자를 리스료로 내는 것이다.

유예할부 프로그램에서 고객들이 간과하기 쉬운 것이 36개월 동안 내는 리스료다. 매월 몇십만원에 불과해 적은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높은 이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수입차 업계와 함께 유예할부를 운영하고 있는 국내 할부금융사 관계자는 “원금을 3년 뒤로 미뤄놨기 때문에 이율이 은행보다 높은 편이다. 국내 할부금융사는 7~8% 정도 되고, 수입차 업계가 직접 운영하는 할부금융사의 경우 10%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다만, 수입차 회사가 3~4%의 저리로 특별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수입차 회사가 금리를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잘 팔리지 않아 재고가 많은 차 모델을 밀어내기 위해 이런 특별 프로모션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유예할부 이자가 높기 때문에 유예할부로 차를 판매할 경우 차량 회사와 할부금융사가 함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인기 브랜드는 할부금융 자회사 운용
유예할부 기간은 보통 3년인데, 이유가 있다. 유예할부를 이용해 수입차를 샀을 경우 3년 동안 차량 소모품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대다수의 수입차 회사들은 소모품 무상AS를 3년 정도 보장한다. 수입차 회사가 보장하는 기간이나 운행거리 내에서 엔진오일까지 무료로 교환하는 셈이다. 푸조 관계자는 “AS 무상점검은 보통 3년이지만, 고객이 설정하는 방식에 따라 기간이나 운행거리가 달라진다”면서 “평생 특정 소모품을 무상교환해주는 특별 프로모션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예할부를 이용해 수입차를 구매할 경우 초기 3년은 리스료와 기름값, 보험료 등만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초기 부담금이 적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후에는 부담이 배가될 수 있다. 무상점검 기간이 끝나고 나면 비싼 부품값과 공임비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수입차량 관리가 부담스러워 중고차로 팔고 싶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3년이 지나면 중고차로 팔고 싶어도 국내차보다 감가상각(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산의 가치 감소를 회계에 반영하는 것)이 훨씬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중고차 가격은 신차에 비해 매년 10% 정도 떨어진다. 3년 지나면 70~65% 정도의 중고차 시세가 형성되지만, 수입차의 경우 차량 가격의 50%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3년 후 차를 처분하고 싶어도 중고차 가격의 시세가 급격하게 낮아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수 있는 것.

현대차는 1개월 만에 유예할부 중단
2011년 11월 현대차도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다. 하지만 1개월 만에 이 프로그램은 사장됐다. 고객의 호응도 좋지 않았고, 기업 이미지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판매에 도움이 되는 것보다 회사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진다는 판단을 했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과시욕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수입차를 사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초기 부담금이 적은 유예할부를 이용한다. 현대·기아차는 이런 제도 대신 할부제도를 많이 활용했다. 국내차 고객들은 유예할부 프로그램에 대해 호응이 적었다”고 설명했다.

수입차를 오래 이용한 고객들은 유예할부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 포토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박민수씨(가명)는 폭스바겐 마니아다. 한때는 골프를 몰았고, 지금은 CC 모델을 이용하고 있다. 3년마다 한 번씩 차를 교체하는데, 세금 절감효과가 있는 운용리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지만, 유예할부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씨는 “유예할부의 경우 이자가 상당히 높다. 3000만원대 엔트리모델의 경우라도 목돈을 한꺼번에 내는 것이 부담인 젊은이들이 많은데, 초기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유예할부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유예할부 기간에도 소유권은 리스사가 가지고 있다. 중간에 차를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한다. 일단 돈을 마련해서 유예금을 갚은 후에 중고차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3년이 지나면 수입차의 중고가격이 급격히 떨어져 더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지불 능력이 있으면 모를까, 능력이 없는데도 유예할부 제도를 이용하는 것은 말리고 싶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수입차 업계의 상술로 몰아붙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수입차 업계가 차를 판매할 때 할부유예에 대한 장단점을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그 프로그램을 이용하느냐 마느냐는 고객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국내 할부금융사 관계자는 “유예할부를 이용한다는 것은 원금을 나중에 낸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을 간과하면 현명한 소비자가 아니다”라면서 “유예금을 일시불로 낼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무분별하게 수입차를 구매하는 것이 문제다. 수입차 회사는 그런 위험성을 사전에 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연맹에서 자동차 분쟁을 총괄하는 박래호 이사는 “유예할부라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능력이 없는데 초기 부담금이 적다고 가볍게 생각하는 고객의 잘못”이라며 “다만 수입차 가격이 아직도 비싼데, 수입차 업계가 가격을 내릴 수 있는 방안을 내놓지 않는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폭스바겐파이낸셜서비스 관계자도 “약간 무리해서 유예할부로 차를 구매했다가, 유예기간이 끝날 때 깜짝 놀라는 고객도 있다. 수입차를 처음 살 때는 유예할부의 조건을 아무리 설명해도 차를 샀다는 생각밖에 안 하기 때문”이라며 “매달 저렴한 납부금을 내고, 목돈은 다른 곳에 투자해서 수익을 올린 뒤 유예금을 더 빨리 상환하는 고객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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