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기술엔 21세기 사회가 필요하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한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계 최초를 자부할 만한 것들이 여러 가지 있다. 1377년에 제작된 ‘불조직지심체요절’(일명 직지심경)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지만 우리의 자랑은 거기까지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만들어낸 사회 변화는 고려 사회 지배 이념의 강화에서 끝났다. 반면에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기술은 세상을 바꿨다. 교권에 반발하여 서양 사회 종교개혁의 중요한 도구가 됐다. 중세 사회를 뒤흔든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다.

8월 23일 헌법재판소가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8월 23일 헌법재판소가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그만큼이나 간과하기 쉬운 교훈이 담겨 있다. 애플의 소위 아이폰 쇼크 이후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오리지널’, ‘퍼스트 무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복적인 역사가 주는 핵심적 교훈은 오리지널도 아니고, 퍼스트 무버도 아니다. 우리가 직지심경을 먼저 찍었다. 우리가 오리지널이었고, 퍼스트 무버였다. 그러나 금속활자의 역할은 거기서 그쳤다.

구텐베르크는 그보다 늦게 등장했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그 차이는 사실, 기술에 있지 않다. 속도에 있지 않았다. 답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의 사용을 결정하는 사회에 있다. 기술의 차이가 아닌, 기술을 접근하고 활용하는 사회적 조건의 차이가 두 발명품의 운명을 갈랐다. 그 기술을 ‘누가’ 접근하여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사회적 조건이 승부를 갈랐다. 그 후속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떤가? 한국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다른 나라들보다 앞섰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빨리 들어온 인터넷은 올해로 벌써 30주년이다. 선진 네트워크 기술인 브로드밴드 보급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렇게 기술 인프라 구축만을 놓고 본다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그 기술에 누가 접근할 수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본다면 기술이 가진 ‘잠재성 저하’ 부분에서 비판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부분들이 많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 전원 합치 위헌 판결을 받은 제한적 본인 확인제와 지금도 생존해 있는 전 국민 스트레스 공인인증의무제가 좋은 예다. 강제적으로 개인정보를 입력하게 만드는 제도, 의무적으로 한 운영체제, 한 브라우저만 택하게 만드는 제도, 그런 제도의 지배 하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개방적인 접근과 가장 다원적인 활용이 가능한 인터넷의 가능성이 국내에서 크게 훼손됐다. 세계적으로 개인정보 유출에 취약하고, 인터넷 사용에 불편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인터넷의 부정적 기능이 강화됐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꽃을 피울 무대인 한국 인터넷에 왜 자물쇠가 걸려 있고, 재갈이 물려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갈라파고스로 떨어진 한국 IT의 위상을 한국 사회가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지만 중요한 원칙을 회복하는 데 있다. 그 첫 번째 원칙은 자유로운 인터넷 사용이다.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 사전 심의가 아닌 사후 규제가 중심을 이루는 제도적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보편적인 인터넷 접근권 보장 없이는 세계 최고 인터넷 인프라는 그림의 떡이다.

두 번째 원칙은 다원적인 인터넷 사용이다. 정부가 굳이 의무·강제 같은 걸 도입하고자 한다면 ‘개방’과 ‘공유’가 원칙이 되고, ‘폐쇄’와 ‘독점’은 예외가 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그 의지를 써야 한다. 그리고 이상의 논의는 진정한 IT 강국이 되는 길은 한국 사회의 성숙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새 술에는 새 부대가 필요하듯 21세기 기술에는 21세기 정신과 21세기 사회가 필요하다.

김재연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저자

IT칼럼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