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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길목 ‘돈풀기 정책’ 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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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대규모 추경편성·부동산 규제 풀기 ‘맞장구’…“가계 부채 더 부추길 수도”

정부와 새누리당이 대선을 앞두고 작정하고 경기부양에 나섰다. “포퓰리즘적 성향이 있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없다”던 당정이었다. “2013년 균형재정을 이루겠다”며 대국민 약속도 했다. 하지만 대선 앞에서는 장사(壯士)가 없었다.

새누리당은 10조원 이상의 추경을 정부에 요구했다. 내수경기를 활성화하겠다며 부동산 규제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도, 내년도 재정부담에 대한 우려도 벗어던졌다. 어쨌든 정권부터 잡고 보자는 얘기로 들린다. 정권 말기 경기침체가 부담스러운 정부도 맞장구를 치고 있다. 얼마나 돈이 풀릴지, 어느 정도의 부동산 부양책이 나올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8월 20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하우스푸어 대책팀장인 여상규 당 정책위 부의장(가운데)이 하우스푸어 대책 당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8월 20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하우스푸어 대책팀장인 여상규 당 정책위 부의장(가운데)이 하우스푸어 대책 당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여가지 부동산활성화 대책 요구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리던 8월 20일. 많은 사람들의 눈이 18대 대선후보 선출에 눈이 쏠린 사이 새누리당과 당정은 국회에서 ‘조용한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이날 새누리당 ‘하우스푸어 대책팀’은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등과 당정 실무회의를 갖고 부동산 활성화를 위한 조치를 정부측에 제안했다. 새누리당이 이날 제안한 부동산 활성화 대책은 10여 가지가 넘는다. 모양새는 ‘하우스푸어 대책’이지만 내용은 전형적인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었다.

앞서 이한구 원내대표는 양도소득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감면하고 취득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운을 뗀 상태였다. 여기에다 당은 부동산 관련 금융규제도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집값이 떨어져 대출액이 담보인정비율(LTV) 60%를 초과하더라도 금융권이 상환요구하는 것을 자제토록 하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도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대출을 늘려주고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저금리로 바꿔 갚도록 하는 캠코의 바꿔드림론도 확대하자고 했다.

특히 금융권이 공동출자해 배드뱅크를 설립한 뒤 이 배드뱅크가 대출을 갚지 못하는 하우스푸어의 집을 매입해서 일반인에게 임대해주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신규주택 짓는 것을 중단하고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줄여 집값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자는 제안도 했다. 세제지원, 금융지원, 거래활성화, 주택공급 제한, 공공기관의 한계주택 매입 등 쓸 수 있는 대책은 다 동원해 집값을 끌어올리자는 애기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요구는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에 뒤어어 나온 것이라는 데서 주목을 끈다. 금융위원회는 8월 17일 ‘DTI 규제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40세 미만 무주택 직장인들이 돈을 빌릴 때 현 소득에다 10년간 예상소득을 추가로 반영해 DTI를 적용해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현 소득보다 최대 25%까지 더 대출받을 수 있게 된다. 6억원 이상의 집을 살 때는 현 DTI 규제(40세 서울 50%, 수도권 60%)에 최대 15%포인트를 더 올려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가상소득을 대출기준으로 삼는 것은 다소 황당한 발상”이라며 “대기업, 공공기관 등 안정적 직장의 임직원들이 유리해 대출 차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우스 푸어’ 대책의 또다른 줄기는 추가경정예산이다. 시중에 돈을 풀어 돈 갚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의미다. 1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은 8월 17일 2013년 예산 편성을 위한 2차 당정협의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하우스푸어 대책 등을 위해 정부측에 추경을 편성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며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10조원보다 추경을 더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일단 지난 6월 정부가 경기침체 악화를 막기 위해 투입하기로 약속한 8조5000억원과 지난해 부채 등을 갚고 남은 잉여금 1조5000억원 등을 합치면 최소 10조원은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추경은 9월 3차 당정에서 결정된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인천의 한 아파 트 단지 모습. | 홍도은 기자

정부와 새누리당이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인천의 한 아파 트 단지 모습. | 홍도은 기자

기획재정부는 “아직 추경은 때가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추경을 위한 립서비스’ 정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8월 20일 박재완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면 추경을 검토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국가재정법 89조의 추경 편성 요건 중에는 ‘경기침체’가 있다. 누구나 봐도 경기침체로 볼 만큼 성장률이 급락한 경우인데 ‘2%대 성장’을 침체로 인정하게 되면 추경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돈풀기’가 가뜩이나 불안한 가계부채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월 22일 “한국의 가계부채가 위험수준에 도달했다”며 “지난해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4%로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초기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재정부 “아직 추경은 때가 아니다” 입장
정부가 가계부채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들고 나온 유일한 대책이 저금리 대책이다. 빚이 많이 늘어나더라도 금리를 낮추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어질 것이 아니냐는 논리다. 은행은 변동금리 대신 고정금리 대출을 늘려주고 캠코의 바꿔드림론을 이용해 30%대의 부채를 10%로 낮춰주겠다는 것이 골격이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관련 대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권과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올 3월부터 8월 14일까지 시중은행이 공급한 적격대출(장기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은 약 4조748억원에 달했다. 3월 1336억원이던 공급액이 6월에는 1조1390억원으로 증가했다.

7월 말 현재 캠코의 바꿔드림론은 11만4000명에 1조1795억원이 지급됐다. 올 들어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0%가량 대출이 늘어났다. 대출 대상을 크게 완화하며 금융위가 대출 확대를 유도한 데다 캠코도 대출광고를 소주병에 싣는 등 파격적으로 대출 유치에 나섰다. 경기가 위축되면서 대출 희망자가 급증한 것도 또다른 이유다.

하지만 금융 특성상 단기간 대출이 급격히 느는 것은 결국 기관의 리스크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대출 확대를 인위적으로 유도하다 보면 대출자격이 완화돼 부실이 증가한다는 얘기다. 이미 또다른 서민금융인 햇살론은 연체율이 지난해 대비 2배 급증했다. 캠코는 바꿔드림론 연체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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