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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증세가 답 인데 건드리기 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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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민주, 대선 앞두고 ‘법인세 인상’ 고민…재계 역풍 우려 대안 모델로 인상 효과 노려

“(기업들이) 다른 나라와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법인세를 낮게 유지해야 한다.”

7월 1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이 법인세에 대한 의견을 이같이 밝혔다. 박 전 비대위원장의 캠프에는 기자들의 문의전화가 쏟아졌다. “법인세를 인하한다는 얘기냐”는 물음이었다. 6일 전인 7월 10일 박 전 비대위원장은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적정한 복지수준과 조세부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증세를 거론한 것으로 해석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은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법인세를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 이상훈 선임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은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법인세를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 이상훈 선임기자

박 전 위원장뿐 아니었다. 박 전 위원장 출마 선언 다음날인 7월 11일에는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라디오에서 “지금은 복지 재원 때문에 일부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하며 당 차원에서도 힘을 보탰다. 이 원내대표는 “일반인 증세가 아니고 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증세”라며 구체적인 증세방법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박 전 비대위원장이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내걸었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세우자)에 대해 “줄푸세 정책이 만고불변이 될 수 없다. 세금을 줄이자는 부분은 확실히 방향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증세는 박 전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면서 예상이 됐던 일이다. 정부가 나서서 소득분배와 공정경쟁 질서를 만들어주는 내용의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려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복지재원은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수를 통해 확보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증세가 거론된 것은 이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박 전 비대위원장 캠프의 정책메시지본부장인 안종범 의원이 진화에 나섰다. 그는 “법인세를 추가로 인하한다기보다는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박근혜 캠프’의 7인 정책위원회 소속인 강석훈 의원도 “법인세 인하를 의미한다기보다 법인세 증세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인세는 이명박 정부 ‘부자감세’의 핵심이었다. 2008년 법인세는 과표기준 2억원 이하 11%, 2억원 초과에 대해 25%를 일률 적용했다. 2009년 고소득 법인에 대한 법인세 감세가 이뤄졌다. 과표기준 2억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율을 3%포인트 떨어뜨려 22%로 낮췄다. 2억원 이하 기업 법인세율은 2010년에 가서야 기존보다 1%포인트 떨어뜨려 10%가 됐다. 2011년에는 2억~200억원 구간을 신설해 기존보다 2%포인트 낮은 20%포인트까지 법인세율을 낮췄다. 다만 부자감세 논란을 의식해 200억원 초과 기업은 22%를 그대로 유지했다. 2012년 현재 법인세율은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 22% 등 3개 구간이다.

이명박 정부의 이런 정책은 큰 폭의 세수 감소를 가져왔다. 2008년 이후 2012년까지 5년간 감면해준 세액은 3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통합진보당 노회찬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법인세 감면액은 2008년 1270억원, 2009년 4조4954억원, 2010년 10조7198억원, 2011년 9조2658억원, 2012년 10조4652억원 등 35조732억원이었다. 5년간 각종 감세를 통해 감면시켜준 세액 82조2693억원의 42.6%나 된다. 법인세 감면이 사실상 이명박 정부 감세의 핵심이었다는 얘기다. 법인세에 이어 소득세가 25조8893억원, 종합부동산세가 10조2925억원씩 각각 감면된 걸로 추정됐다.

노 의원은 “감면된 82조2693억원 중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부자감세가 71조2000억원”이라며 “중앙정부 세수감소는 16개 광역시·도의 세수감소로 이어져 같은 기간 29조1000억원의 지방세입도 줄었다”고 말했다.
야권과 야권 대선 경선주자들이 일제히 ‘부자증세’를 들고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 필요 없이 부자감세만 되돌려놓아도 복지 확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자증세의 핵심은 역시 법인세다.

법인세 인상에 대한 국민 여론은 호의적이다. 참여연대 조사를 보면 대기업의 법인세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가 54.6%나 됐다. ‘공감한다’도 27.7%였다. 적극 공감과 공감을 합치면 82.2%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당시 초고소득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과표 500억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율을 25%로 올려 사실상 참여정부 당시로 환원시킨다는 구상이다.

[정치]기업 증세가 답 인데 건드리기 겁나네

하지만 실제로 법인세율을 올리는 데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증세를 거론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당장 법인세율을 올리기보다는 감면·공제를 없애 실효세율부터 올리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과표 기준 200억원 초과 기업은 법인세율이 22%지만 실제 22%의 법인세를 내는 기업은 없다. 투자세액공제, R&D세액공제 등 각종 공제를 통해 세액감면을 받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7월 9일 당론을 제출한 경제민주화 9개 법안에도 이런 내용으로 법인세를 사실상 인상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야권 잠재주자로 거론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우선 각종 감면을 통해 떨어지는 실효세율을 높인 뒤 법인세 증액을 위해 구간 조정을 검토하자는 의견이다.
새누리당도 최저한세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사실상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최저한세율이란 기업들이 내야 하는 최소한의 법인세다. 아무리 감면을 많이 받더라도 그 이상으로는 내야 한다는 의미다.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은 7월 26일 현행 과표 1000억원 초과기업에 대해 14%로 돼 있는 최저한세율을 15%로 높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2013~2017년 5년간 7756억원의 세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국회 예산처는 추정했다.

문제는 이런 식의 법인세 인상으로는 부족한 재원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인세율을 직접 인상하지 않고 감면·감세만을 제한해서는 75조원 이상 더 든다는 복지를 지탱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대안으로 고소득자의 소득세를 증세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소득세법 최고세율인 38%가 적용되는 과표구간인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낮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안대로 법이 개정되면 38%의 소득세를 내는 소득자가 3만1000명에서 13만9000명으로 대폭 늘어난다. 세수도 연간 1조150억원 이상 늘어난다.

반면 새누리당은 ‘부자증세’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소득세율을 건드리거나 과표구간을 낮추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소득세 체계를 전면개편해 간접적으로 소득세 부담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소득세 체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세금도 인상될 것으로 보여 또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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