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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 미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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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랐다. 개인적으로 환경운동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 낙동강 페놀사건, 위천공단 반대운동, 낙동강 벤젠 유출사고, 암모니아 발암물질 검사… 다 겪어봤다. 그런데 강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임희자 마산창원진해(마창진) 환경연합 사무국장의 말이다. 지난 6월 말, 본포취수장을 방문한 마창진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은 낙동강 물 가득히 출렁거리는 녹조에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증거사진’을 채록했다. 채록작업은 7월에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다리 위에서 보면 안 보인다. 4대강 사업으로 물이 많아졌고 표가 안 나니까 ‘좋아졌나보다’ 하고 지나칠 수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한다. 대개 ‘비릿한 냄새’로 알아차릴 수 있다. 강바람이 불 때마다 진동하는데, 전공교수에게 물어보니 그게 녹조가 죽으면서 사체가 내보내는 가스 냄새라고 하더라.”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에 대해 시민사회와 학계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사업 방식의 문제가 제일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5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제17차 녹색성장위원회 및 제8차 이행점검 결과 보고대회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에 대해 시민사회와 학계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사업 방식의 문제가 제일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5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제17차 녹색성장위원회 및 제8차 이행점검 결과 보고대회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감시활동은 쉽지 않다. 녹조현상의 지속시간은 1~2시간. “녹조가 갈색으로 죽으면서 바닥으로 가라앉으면 또 별로 표가 나지 않는다”고 임 사무국장은 덧붙인다. “정부에서는 갈수기 때 낙동강에서 녹조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는데, 수량이 풍부해지는 여름에는 녹조가 끼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취수구 쪽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말을 들어봐도 이전엔 진한 간장색의 조류를 본 적은 있어도 녹조는 이번에 처음 봤다고 한다.” 마창진 환경연합 측은 사진을 단체 공식 블로그에 게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글을 덧붙였다. “어느 높으신 분의 말씀처럼 녹색성장으로 강이 뒤덮여 버렸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미래예측 능력입니다.” 이 게시글의 제목은 ‘이것이 녹색성장이라면 관둬라’다.

‘녹색성장’ 전성시대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내놓으면서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를 대표하는 구호가 되었다. 녹색성장은 매년 행정안전부의 지자체·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의 중심 카테고리로 등장한다. 완공이 된 지금까지 논란을 빚고 있는 ‘4대강 사업’도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저탄소 녹색성장의 일환인 ‘기후변화 적응역량 강화사업’이다. 정부가 2009년 5월 내놓은 ‘녹색성장 5개년계획’에 따르면 ‘원자력 신뢰성 제고 및 원자력 비중 확대’ 정책도 10대 전략 중 하나인 ‘탈석유·에너지 자립 강화’의 핵심 방책이다. 5년간 107조원이 투입되는 전체 재정계획 중 두 사업(기후변화·에너지자립)과 관련된 예산은 56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포털뉴스에서 검색하면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 기초단체에서도 녹색성장은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구호가 됐다.

이른바 ‘녹색성장 끼워팔기’에 대한 지적은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차인 2008년부터 제기되었다. 명확한 개념이나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관 주도 녹색성장 사업은 더 늘어나는 중이다. 행안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지역 녹색성장 활성화 사업’ 30개를 선정해 총사업비 15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녹색성장’ 전성시대는 내년, 차기 정권에서도 지속될까.

지난 6월 5일 프레스센터. 양수길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주최한 ‘저탄소 녹색성장 4년-평가와 대안’ 세미나 자리였다. 양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했다.

“녹색성장이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될 것인가. 그렇다.” 양 위원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녹색성장법이나 온실가스 감축법, 배출권 거래제 등 주요한 입법조치가 만들어졌다는 것. 둘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와 같이 녹색성장을 주제로 하는 국제기구들이 기후변화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녹색성장에 대한 논의구조가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양 위원장의 발언에서는 묘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녹색성장은 여야 모두 지지했고, 정권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하지만, 방법론적으로는 수정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니까 추진 방법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추진 방법에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양 위원장이 이날 내놓은 답은 다음과 같다. “녹색성장이 기존 환경운동과 달리 기후변화 대응을 목표로 하다 보니 갈등이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4대강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에 대한 시각차가 있었다.”

지난 6월 하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지속가능발전회의(리우+20)에서 한국 정부는 “정상회의에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의 국제기구 전환을 위한 설립 협정을 16개국과 맺었다”는 것을 성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위원회의 결론은 달랐다. 리우+20 한국 민간위원회는 6월 18일 녹색성장을 비판하는 공식 부대행사를 현지에서 열었다.
 
이날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 녹색성장의 경험’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한 박숙현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 쪽에서 나오는 ‘녹색성장’에 대한 보고서는 많으니, 민간에서 보는 시각도 공유하자는 취지로 발제를 한 것”이라며 “소위 ‘녹색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4대강에 대한 사례 연구의 형식으로 발제를 했다”고 말했다. 민간위원회는 6월 20일 열린 거리행진에 참가했다. 이들이 내건 구호는 이랬다. “STOP The Green Lie For 1%(1%를 위한 녹색 거짓말을 멈춰라)”, “Green Growth? Grey Growth!(녹색성장 아닌 회색성장이다!)”

“녹색성장은 회색성장인가”
녹색성장에 대한 시민사회와 정부 측 인식 차와 골은 크고 깊다. 핵심은 4대강 사업과 원전 문제다. 앞의 낙동강 본포취수장 녹조문제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을 비롯해 여러 언론이 낙동강 녹조를 보도하자 환경부와 국토해양부는 해명자료를 내고 언론중재위를 통해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정부의 주장은 낙동강의 녹조현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는 chl-a(클로로필a)인데, 수질국가운영 측정망상 수치는 4대강 사업 공사 전인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의 평균보다 개선되었다는 것이다.“4대강 사업으로 본류가 막히면서 흐르는 속도가 느려져 녹조현상이 나타났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 수생태관리과 안정훈 팀장은 “일부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너무 부풀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9일, 마창진 환경연합이 본포취수장 인근에서 찍은 녹조 사진. 마창진 환경연합은 4대강 보 때문에 물 흐름이 늦춰져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환경부 등은 4대강 공사 이전에 비해 수질 오염원은 줄어들었기 때문에 녹조의 원인이 4대강 사업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마창진환경연합 제공

지난 6월 29일, 마창진 환경연합이 본포취수장 인근에서 찍은 녹조 사진. 마창진 환경연합은 4대강 보 때문에 물 흐름이 늦춰져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환경부 등은 4대강 공사 이전에 비해 수질 오염원은 줄어들었기 때문에 녹조의 원인이 4대강 사업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마창진환경연합 제공

녹조가 발생했더라도 상류에서 물을 방류하는 조치를 취하고 또 약품을 사용하거나 필터를 통해서 다 제거가 가능한데도 ‘수돗물 비상’과 같은 선정적인 주장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평균수질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녹조가 집중되는 가장자리에 취수구가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오염된 물을 먹을 가능성이 높으며, 4대강 사업으로 물이 고이기 때문에 강에 유입된 ‘점오염원’인 질소와 인의 영향으로 녹조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며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립과 반목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녹색성장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시민사회나 환경단체들은 “녹색과 성장은 일종의 형용모순 개념인데, 두 개념 사이의 연관관계를 이명박 정부는 아직 설득력 있게 제시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소장은 “녹색성장은 성장에 초점을 맞춰서 녹색을 들러리 세운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성장중심적인 담론이고 정책이며, 실제 행태에서도 원자력이나 4대강을 녹색성장으로 포장했기 때문에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상헌 한신대 교양학부 교수는 “개발도상국에서 녹색성장은 의미있는 개념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일반화시켜 녹색경제 말고 녹색성장을 하자는 것은 통하기 어렵다”며 “특히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은 원자력에다가 녹색기술 개발 위주인데, 고용창출과도 관련 없고 경제를 운용하는 데도 큰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실증연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녹색성장이 원래부터 있었던 개념이긴 한데 원자력과 4대강을 중심으로 한 녹색성장 개념은 이명박 정부가 만든 것이니 소유권을 주장할 만도 하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민간과 협의방식이 아닌 ‘톱다운’ 방식 즉,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의 경우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강을 서로 연결하는 ‘한반도 대운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4대강에서 대통령의 임기 내에 반드시,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종교계와 보수매체를 중심으로 “한 개의 강에서 시범사업을 한 뒤 나머지로 확대”하는 절충안이 제시되었지만 묵살되었다. 구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를 분석해보면 녹색성장의 핵심 관심은 기후변화 문제와 에너지 자원 위기인데, 기후변화를 이유로 해서 생태권위주의적 담론을 확산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녹색위, 시민사회와 화해 시도?
‘톱다운’ 추진방식은 종전에 국가기구로 있었던 지속가능발전위원회(지속위)를 축소시키고, 녹색성장위원회를 대체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저탄소 녹색성장’ 선언이 나온 후 이명박 정부 초대 지속위 위원장이었던 김형국 전 서울대 교수는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으로 옮겼다. 하지만 지속위는 방치되다가 2009년 9월에 환경부 소속으로 옮겨 다시 구성된다. 지속위 5기 사회통합위원이었던 정화선 푸른광주21협의회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 초반에 벌어진 ‘사태’에 대해 불쾌한 기억을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6월 20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GGI) 설립 협정 서명식’을 마친 뒤 유영숙 환경부 장관 등 한국 대표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환경부 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6월 20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GGI) 설립 협정 서명식’을 마친 뒤 유영숙 환경부 장관 등 한국 대표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환경부 제공

“기존 위원들을 잘랐으면 정식으로 ‘해촉장’을 주든가 했어야 하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얼마 안 있어 다시 꾸린다는 보도를 봤는데 없애지는 못하고 환경부 산하로 옮겨서 거의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는 인상이 강했다.” 이상헌 교수는 “사실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은 사회·환경·경제를 포괄하는 지속가능발전보다 포괄 범위가 작은 개념인데, 이명박 정부는 종전의 국가위원회였던 지속위를 부처 산하 위원회로 축소시킨 반면, 녹색성장을 기본법으로 삼아 도치시켜버렸다”며 “차기 정부에선 원래 지속위가 하던 역할을 복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전 사례를 보면 새로 만들어진 정부가 전 정부의 주요 국책기관이나 사업에 대한 ‘네이밍’에 부담을 안고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 통례다. 이후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녹색성장 대신 지속가능발전을 살리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녹색성장이 이미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개념이기 때문에 살아남을 것이라는 주장도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다. 정권이 바뀐 뒤 ‘4대강’ 등 정권 차원의 스캔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 GGGI 등도 같이 거론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당장 국회에서 협정 비준 과정에서 문제제기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녹색성장위원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시민사회에서는 4대강과 원전을 녹색성장의 핵심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전체 녹색성장 의제 중 두 사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며 “이후 차기 정권이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재조정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위로부터 밀어붙이는 식으로 진행했다고 하지만 앞으로 60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운다면 초기 세팅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벌어진 시행착오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며 “남은 기간 동안 시민사회와 관계회복을 위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를 많이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녹색성장위원회의 대외 협력업무를 맡고 있는 관계자는 “학계나 시민사회도 정권과 연계시켜 무조건 녹색성장을 버려야 할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한다”며 “지금까지의 녹색성장을 녹색성장 1.0이라고 한다면, 이후 사회적 형평성을 보완한 녹색성장 2.0의 상을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녹색성장위의 ‘제안’이 차기 정권이나 시민사회에서 받아들여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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